영원히 죽지 않는 삶, ‘헨리에타 랙스’ 이야기
영원히 죽지 않는 삶, ‘헨리에타 랙스’ 이야기
  • 참여와혁신
  • 승인 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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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전 숨졌지만 ‘헬라세포’ 남겨
소아마비 백신 등 의료생명분야 큰 기여

과학칼럼니스트
제 이름은 ‘헬라(HeLa)’입니다. 62년 전 ‘헨리에타 랙스’라는 흑인 여성을 죽게 만든 자궁경부암세포에서 시작된 세포죠. 당시까지만 해도 세포를 배양하는 방법을 몰랐던 연구자에게 저는 기적 같은 존재였습니다. 쉽게 죽어나가던 다른 세포와 달리 놀라운 속도로 자라나 24시간마다 세포 수를 두 배로 불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죽지 않는 인간세포’가 바로 저 ‘헬라세포’입니다. 다른 인간의 정상세포라면 50회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수명도 최대 몇 년 정도겠지만, 저는 60년 넘게 계속 증식하며 생명과학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동물 대신 인간세포로 실험할 수 있게 되자 눈부신 성과들이 나타났습니다. 소아마비 백신 개발도, 2008년과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도 저를 통해 이뤄진 연구결과입니다. 그런 제가 지난 3월부터 구설수에 휘말리게 됐는데요. 최근 이 문제가 해결돼서 앞으로도 계속 인류를 위한 연구에 힘쓰게 됐습니다. 이제 헬라세포의 제대로 된 연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62년 전 헬라세포 연구의 시작

“헬라 유전체는 할머니의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새롭게 시작되는 장입니다. 세상 모든 이를 이롭게 할 중요한 결정을 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1951년 헨리에타 랙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62년. 긴 세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녀와 가족들의 권리가 드디어 인정됐다. 그녀의 손녀딸 제리 랙스 와이가 말한 것처럼 랙스 가족이 직접 헬라세포 연구에 대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헬라세포 유전체 정보를 활용하는 걸 조건부로 허락했다. 가족이 내건 조건은 제한된 미국 국립보건원(NIH) 데이터베이스에 유전체 정보를 저장하고, 가족 대표 두 명이 포함된 패널이 연구에 대해 사전승인을 하는 것이다.

생체조직에 대한 연구라면 당연히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헬라세포의 주인이었던 헨리에타 랙스는 자신의 몸에서 나온 세포가 연구에 쓰이는 줄 까맣게 몰랐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 기막힌 사연은 헬라세포의 뿌리인 헨리에타 랙스의 생전부터 시작된다.

당시 자궁에 혹이 난 것을 느낀 랙스는 흑인을 치료해주던 유일한 대형병원인 존스홉킨스병원을 찾았다.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여러 치료를 시도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고, 결국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묘비도 없이 가족 묘지에 랙스의 시신을 묻은 가족들은 그녀와 영원히 이별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여 년 뒤 가족들은 ‘랙스의 세포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랙스가 병원을 찾은 날, 담당의사 리처드 웨슬리 테린드가 연구할 목적으로 그녀의 자궁경부에서 작은 동전만한 크기의 조직 두 개를 떼어내 조직배양실로 보낸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물론 누구도 랙스의 허락이나 동의를 받지 않은 채였다. 이 조직은 조직배양을 담당하던 조지 가이 박사의 연구실에 보내져 ‘불멸의 세포’로 재탄생했다. 연구자들은 이 세포에 헨리에타 랙스의 앞 글자를 따 이름을 붙이고 연구용으로 무료 배포했다.

▲ 헨리에타 랙스와 남편의 생전 모습(왼쪽)과 헬라 세포의 염색사진. ⓒ 박태진
뒤늦게 되찾은 헨리에타 랙스의 존엄성

전 세계로 퍼진 헬라세포는 의학계에 혁명을 가져왔다. 과학자들은 이 세포를 소아마비 백신 개발, 항암제와 에이즈 치료제 연구, 시험관 아기의 탄생, 유전자 지도 구축 등에 활용했다. 헬라세포는 지금껏 5,000만 톤 넘게 배양됐고, 관련 논문만 7만 건 이상 나왔다. 심지어 원자폭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헬라세포를 핵폭탄과 함께 터뜨리기도 하고, 우주에서 세포 반응을 살펴보려고 우주선에 싣기도 했다. 
그러나 ‘죽은 엄마의 세포가 살아있다’는 난데없는 소식을 들은 가족에게 친절한 연구자는 드물었다. 오히려 어려운 용어를 늘어놓으며 추가 연구를 한다는 명목으로 피를 뽑아가는 연구자가 등장했다. 연구자들과 제약회사 등이 헬라세포로 많은 돈을 벌 때도 가족들은 철저하게 소외됐고, 가난하고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랙스의 큰 딸은 정신병원에서 죽었고, 막내아들은 돈을 벌기 위해 말라리아 인체실험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가족들의 사연은 2010년 작가 레베카 스클루트가 쓴 책,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을 통해 알려지면서 미국 사회에 큰 논란을 가져왔다. 과학의 진보라는 측면과 연구 참여자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가 충돌한 것이다. 그런데 올해 3월 독일 유럽분자생물실험실(EMB) 연구팀이 헬라세포의 유전자 염기서열(유전체 정보)을 완전히 분석해 공개하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유전체 정보를 공개하면 랙스 가족이 물려받았을 유전적인 특성이 노출될 수 있는데,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시 연구진은 “헬라세포의 비정상적인 특성을 밝혀서 인간의 생물학적 모델 연구에 이용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헬라세포가 어디서 왔는지 모두 아는 상태에서 유전정보를 공개한 건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연구진은 논문에 있는 유전체 정보를 공개 데이터베이스에서 내렸다. 이후 NIH는 랙스 가족에게 향후 헬라세포 연구에 대한 결정권을 맡겼다. 지금처럼 연구를 무제한으로 허용하거나, 사전승인을 받는 조건으로 허용하거나, 무조건 이용을 금지하는 것 셋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것이었다.

프랜시스 콜린스 NIH 원장은 결정을 내리기 전 4개월 동안 가족들에게 예의를 다했다. 가족을 방문해 헬라세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현재 연구 중인 프로젝트도 보여줬다. 어떤 것을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그동안 가족들이 듣지 못했던 친절한 설명을 하는 게 목적이었다. 결국 가족들은 사전에 승인을 받는 조건으로 헬라세포 연구에 대해 허락했고, 이 내용은 8월 7일자 ‘네이처’ 저널을 통해 알려졌다.

콜린스 원장은 “우리는 너그러운 랙스 가족에게 큰 빚을 졌다”고 표현하면서 앞으로 NIH가 지원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랙스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로 했다. 60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헬라세포에 대한 규칙이 겨우 바로 섰다. 앞으로 헬라세포로 밝혀낼 지식들은 이전보다 훨씬 아름답게 세상을 이롭게 할 것으로 보인다. 

헬라세포로 얻은 연구 성과

1951년  헨리에타 랙스 사망. 추출한 암 조직에서 헬라세포 배양
1952년  소아마비 백신 개발
1984년  자궁경부암과 유두종바이러스(HPV)의 관계 규명
2008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1986년  인간면적결핍 바이러스(HIV) 발견
1989년  텔로머라제(텔로미어 합성 효소) 활성 규명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2013년  헬라세포의 유전자 염기서열 해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