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 인정받고 가난의 굴레 벗어 나겠다
‘노동의 가치’ 인정받고 가난의 굴레 벗어 나겠다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3.09.0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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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 체계, 봉건주의와 다를 바 없어
조합원들과 아픔을 나누며 싸워나갈 것
[인터뷰 1]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

일반인들이 삼성전자 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로 흔히 드는 것이 A/S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보통 일반인들은 A/S를 위해 방문한 엔지니어 기사를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직원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가 본사 직원인지 협력업체 직원인지 구별할 수 있는 복장이나 멘트 상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협력업체라면 그들만의 경영권이 있어야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따르면 그렇지 못하다.

삼성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으면서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협력업체 A/S 엔지니어 기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들은 지난 7월 14일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을 만나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조합원 가입 대상은 A/S 엔지니어 기사들로만 한정되어 있나

“엔지니어들이 주축이지만 가입대상이 한정된 건 아니다. 삼성전자서비스에 종사하는 노동자면 누구나 다 가입대상이다. 현재는 직접 대민 서비스를 하고 수리 업무에 종사하는 엔지니어들을 대상으로 확대하고 있다. 나중에는 간접 업무인 접수상담이나 자재 부분까지 넓힐 것이다. 그렇지만 꼭 우선순위가 있는 건 아니다. 노조가입을 두려워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또 GPA(Great Partnership Agency, 협력업체) 소속이 아닌 별도의 회사인 경우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불법파견·위장도급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도급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삼성전자서비스 측에서 일체 경영 간섭이나 직원 관리를 해서는 안 된다. 혼재근무도 안 된다. 우리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이라고 판결이 내려진 현대자동차보다 한 수 위다. 실체가 없다. 업체 사장은 바지사장의 형태이다. 업체 직원들의 임금, 급여, 인사관리, 채용, 교육을 포함해 모든 부분에 삼성이 관여하고 있다. 이것을 민변에서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라는 용어를 써서 설명한다.”

협력업체 사장이 삼성전자서비스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급 계약서에 삼성전자 제품 이외의 다른 제품을 수리할 수 없게끔 해놓았다. 만약 정상적인 도급업체라면 삼성전자 제품 수리하다가 안 맞으면 그만두고 다른 회사와 계약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장이 다른 기업과 계약하겠다고 하면 그 순간 삼성전자서비스와의 계약은 해지된다. 그러면 사장은 그대로 회사를 잃어버리고 우리 직원들은 다른 바지사장이 만들어낸 업체에 다시 흡수 고용되는 거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사장이 아무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조사를 해봤는데 현재 협력사 사장의 90% 이상이 전직 본사 부장이나 차장으로 근무했던 이들이다. 엔지니어 출신이나 일반 외부 사장들은 몇 명 없다.”

엔지니어의 경우 본사 직원과 업무나 처우에 어떤 차이가 있나

“지금은 사무실이 다르지만 과거 2~3년 전까지만 해도 본사 직원과 하청업체 직원들이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다. 산행도 가고 체육대회도 열어서 우리는 삼성 가족이라고 해왔다. 그런데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이 핸드폰을 본사 직원이 옮기면 ‘만 원’, 내가 옮기면 ‘3천 원’이다.

그 이유로 본사에서는 학벌을 운운한다. 좋은 대학 나온 고학력자의 노동의 가치는 인정해야 한다. 고학력자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정신적인 노동의 산물로써 고부가가치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인권침해다. 가령 본사 직원이 염력을 써서 이걸 움직였다면 대단한 것이므로 인정해줘야 한다. 그런데 똑같이 움직였는데도 금액에 차이를 두는 건, 결국 회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상당 부분 하도급 체계가 가지고 있는 불합리한 요소가 있다. 봉건주의에는 지주와 마름이 있고 농노가 있는데, 이러한 형식으로 착취 구조가 형성되고 연결돼 있는 거다. 그러다 보니까 엔지니어들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저축도 할 수 없다. 비수기의 평균 월급이 150만 원에서 200만 원인데 사실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내 차를 직접 몰아야 해서 차량유지비가 든다. 통신비나 식대 등도 포함하면 50만 원에서 60만 원이 들어간다. 이것을 감안하면 최저임금도 안 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교섭을 하라는 시정명령이 나왔는데 아직까지 삼성전자서비스나 협력업체들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듯하다.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예정인가

“변화는 여전히 없다. 하지만 시정명령이 들어가 사측에서 뭔가 반응이 나올 테니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의 주요 과제는 조합원을 계속 확보하는 것이다. 그동안 억눌려왔던 것들을 직원들과 함께 서로 다독거리면서 위로하려고 한다.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삼성지회나 삼성 내 하청업체 직원들과는 동병상련의 입장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서로의 아픔 잘 알고 있다. 이들과도 교류를 해나갈 것이다. 또한 삼성만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비정규직 문제가 반드시 개선돼야만 한다. 박근혜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했다. 이 비정규직 문제를 꼭 해결해야만 경제민주화라는 게 바로 서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당분간은 이러한 생각과 뜻을 동료들과 나누면서 싸워나갈 예정이다. 사측에는 우리가 빼앗겼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야 할 노동권, 인권을 요구해 반드시 되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