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싸우는가 ‘어떻게’ 싸울 것인가
‘어떻게’ 싸우는가 ‘어떻게’ 싸울 것인가
  • 김현정 기자
  • 승인 2013.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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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해도 지루해도 “이 방법뿐인데”
‘이해’를 뛰어넘어 ‘연대’로 싸워야
[기획] 싸움의 기술

싸우는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싸우는 이유는 수백 수천 가지다. 싸우는 방식도 끝없이 달라져왔다. 바로 그 싸우는 방식, ‘어떻게’ 싸우는지에 집중해보자. 사람들은 모이고 흩어지고 다시 모이며 가냘픈 목소리를 크게 키웠다.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왜 싸우는지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싸움의 기술도 중요하다. 투쟁의 방법들을 새롭게 추가하는 것도 결국 더 효과적인 전달방식을 고민한 결과다. 그렇다면 싸움의 기술은 진화하고 있는 걸까? 벼랑 끝으로 내몰려 어쩔 수 없는 방식을 강요받는 것은 아닐까.

싸움의 현장들

#1. 2013년 9월 3일, 청와대 앞 사랑채
박미향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장이 청와대 사랑채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얄팍한 보드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학교비정규직문제 해결하라’라는 문구가 씌어 있다. 선전 문구 못지않게 표정도 비장하다. 시위를 벌이는 장소가 청와대 앞이라는 사실 역시 비장함을 더한다.

“우리가 총파업도 선언하고 단식도 했지만 어떻게든 대통령의 귀에 들어가게 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서 여기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기로 했어요. 우리가 언제까지 학교안의 그림자로 살 수는 없잖아요.”

지난 8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살로 인해 구조적 문제점들이 많이 드러났으니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 기필코 무언가 바꿔내겠다는 각오였다. 이날 1인 시위에 나선 박 지부장은 단식도 삭발도 이미 경험한 이후였다.

#2. 2013년 9월 10일, 서울 대한문 앞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무기한 집단 단식이 시작됐다.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는 공정한 국정조사와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12명의 단식 투쟁을 선언했다. 김득중 쌍용자동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을 비롯한 12명의 단식 참가자들은 “3,000명의 정리해고, 5년간의 투쟁, 24명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자본은 쌍용자동차 사태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이전에 한 약속을 지켜 국정조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단식선언 기자회견을 보면서 잠시 멈춰선 한 시민은 “저렇게 굶어가면서 싸우는 게 자기들 생명 깎아먹으면서 싸우는 건데…. 그렇게까지 하게 만들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말과 함께 혀를 찼다.

쌍용자동차 문제해결을 위한 단식투쟁은 처음이 아니다. 2012년에도 김정우 지부장이 41일간의 단식투쟁을 진행한 바 있다. 그뿐만 아니라 171일간 고공농성까지 진행했다.

#3. 2013년 9월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백화점 앞에 차례 상이 펼쳐졌다. 추석연휴에 제대로 쉴 수 없고 고향에도 가기 힘든 유통노동자들이 조상님께 미리 올리는 추석 차례 상이다. 상에는 송편과 과일, 지방까지 올라가 있다. 유통노동자 조상님 앞에 바치는 축문도 있다. ‘고향에 가지 못해 송구스럽다’는 말로 시작하는 축문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유통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일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끝을 맺는다. 퍼포먼스의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외국 관광객들은 한복과 차례 상을 보고 연신 사진을 찍는다.

유통노동자들의 ‘차례 퍼포먼스’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설에도 차례 퍼포먼스를 진행했으며, 그 외에도 기자회견과 선전전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싸움의 기술들

얼른 꼽아보기에도, 생각할 수 있는 싸움의 기술은 꽤 여러 가지다. 자주 접하게 되는 기자회견이나 집회는 물론이고 1인 시위, 삭발 투쟁 등 꽤 힘겨울 법한 방법들도 있다. 단식이나 고공농성처럼 건강에 위협이 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방식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다. 집회를 열고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삭발과 단식으로 투쟁해도 싸움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두 가지 방식으로는 싸울 수가 없는 이유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투쟁의 시작과 끝 : 집회
집회는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투쟁의 방식이다. 같은 목적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모인다는 뜻풀이처럼, 집회는 비단 노동계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경찰청이 2012년에 발간한 「경찰백서」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발생한 전체 집회 건수는 8,328건이다. 단순히 계산해 봐도 하루 평균 22건 이상의 집회가 열린 셈이다. 그나마 2010년 이후로 집회 건수가 줄어들어 7~8천 건 수준이지만 2009년까지는 집회 건수가 매년 1만 건을 넘어섰다.

집회 발생 건수의 압도적인 숫자만큼, 집회는 고전적인 싸움의 수단이다. 피켓과 머리띠, 같은 색의 조끼를 갖춰 입고서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집회는, 외부에 의견을 피력하는 방법으로도 활용되지만 내부 결속력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장기화되는 투쟁에서 자본과 정권의 반(反)노동 행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내부 결속력 강화야말로 필수적이다. 따라서 집회는 여전히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싸움의 기술이다.

노래와 춤과 투쟁 : 퍼포먼스
집회가 직유라면 퍼포먼스는 은유다. 노래와 짧은 공연, 몇 가지의 상징적 몸짓을 통해서 긴 연설보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문화제와 노동가요를 통해서 혹은 집회와 함께 선보이는 퍼포먼스를 통해서 머리보다 가슴을 먼저 움직이는 때가 많다. 추석 연휴를 보장하라는 외침 대신 대로 한복판에 차려놓은 차례 상이 더 호소력 있고, 단결하고 투쟁하라는 구호보다 다 같이 부르는 노래 한 소절이 더 자연스럽게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노동가수 지민주 씨는 “노래를 하면서 좀 더 신나게 싸울 수 있기 때문에 투쟁이 있다고 하면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가게 된다”고 말한다. 신나는 투쟁. 싸움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퍼포먼스가 필요한 이유다.

ⓒ 김현정 기자 hjkim@laborplus.co.kr
개인을 움직이는 절박함 : 1인 시위
법의 틈새를 파고든 싸움의 기술이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제 2조에 따르면 2인 이상의 다수인이 집회를 할 때 법적용을 받기 때문에 1인 시위는 집시법에서 자유롭다.

박미향 학비노조 지부장이 1인 시위를 진행하던 청와대 사랑채 앞에는 각기 다른 내용의 피켓을 들고 나온 시위자가 세 명 더 있었다. 그들 역시 청와대가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하루 종일 청와대 앞을 지키고 있었다.

2000년 12월 참여연대가 삼성의 변칙 증여를 비판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1인 시위는 현재까지 집단의 문제는 물론이고 개인의 문제를 알리는 수단으로도 폭넓게 쓰이고 있다. 여론과 언론의 반향을 일으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낸 사례도 있고,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1인 시위는 많은 가능성을 가진 투쟁 방식이다. 다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한 사람의 힘밖에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절박함이 1인 시위에는 내포되어 있다.

머리를 깎고 위를 비운다 : 단식과 삭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분의 공급을 스스로 중단하는 행위를 단식이라고 부른다. 간헐적 단식은 건강에 좋을 수도 있다지만, 투쟁을 위한 단식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항의해 단식 투쟁을 벌였던 김진숙 지도위원은 20일이 넘는 단식의 후유증으로 여전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식을 통해 싸우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머리카락을 깎아내는 삭발 투쟁도 신체 일부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강한 저항의 의지 표명이 된다. 지난해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위원장은 영리병원 도입을 막기 위해 삭발을 했다. 지난 2월, 전국공무원노조는 해고자의 원직복직과 노조 설립신고 쟁취를 위해 간부 100여 명의 집단삭발을 단행했다. 굳이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유교적 어구를 들먹이지 않아도 삭발의 의미는 강하다.

최후의 선택 : 고공농성
202일에 걸친 재능의 고공농성이 끝났다. 그 이전에는 현대차비정규직지회의 고공농성이 있었고. 한진중공업 사태 때도 85호 크레인 위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있었다.

고공농성은 말 그대로 공중에서 생명을 담보로 하는 투쟁 방식이다.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다. 지난 8월, 296일간 이어졌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고공농성의 해제 사유는 농성 참가자의 건강 문제였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곳에서 오랫동안 상당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까닭에 건강 악화는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의 위험도에 비례하는 사회적 관심의 증가 때문에 노동자들은 고공농성을 선택하게 된다. 평원고무공장의 여성노동자였던 강주룡이 을밀대에 올라가 벌였던 1935년 최초의 고공농성부터, 2013년까지 허공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싸우는 방식을 ‘기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기술의 발전은 절박함을 배경으로 한다. 집회에 참여하고, 1인 시위를 하고, 단식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것 말고 무슨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야 하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점을 알려야 하는데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여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투쟁 방식은 벼랑 끝에서 찾은 궁여지책인가? 아주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서 더 큰 힘을 가진 쪽은 대부분 자본이기 때문에. 손종표 민주노총 조직국장은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자본은 허울 좋은 경제위기설을 앞세워 노동운동을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때문에 노동자는 일방적인 고통분담을 강요받고, 먹고 살기 위해 적극적 투쟁을 하기 힘들어진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집회와 단식 또는 1인 시위 같은 투쟁 양상들이다. 어쩌면, ‘기술’이라기보다 ‘몸부림’이다. 지금 노동계가 선택한 방법들에는 효율성의 문제와 위험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촛불과 희망

‘촛불 집회’는 우리의 시위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비단 노동문제뿐 아니라 한미 FTA 체결 반대 집회와 최근 계속되고 있는 국정원 규탄 집회까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촛불들이 켜지고 있다.

2011년의 ‘희망버스’ 역시 촛불과 통하는 점이 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의 문제점에 공감하는 일반 시민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보통 투쟁이라고 하면, 이해당사자끼리의 문제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 촛불 집회와 희망버스가 특별한 것은 이해관계를 넘어서 보통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은 ‘노동운동이 희망버스에서 배워야 할 것’이라는 글을 통해 타성에 젖은 노동운동을 비판하고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희망버스는 연설, 공연, 전시, 식사 등 모든 공간이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집회는 어떻게 시작되고 누가 연설하고 어떻게 끝날지 다 안다. 열기도, 열정도, 분노도 없다”는 표현을 통해 현재의 노동운동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촛불집회도 희망버스도 사람들의 자발적인 연대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촛불과 희망은 ‘이기는 싸움’을 위한 소중한 ‘열쇠 말’이다. 결국 싸움의 기술이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