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다, 혼자가 아니어서 이겼다
이겼다, 혼자가 아니어서 이겼다
  • 김현정 기자
  • 승인 2013.10.0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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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약품보다 30% 적은 급여, 이해 안됐다
4명만 남은 노조지만 역량 키워낼 것
[인터뷰4] 김은석 한국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 전 지부장

한국베링거인겔하임에서 ‘베스트 수의사 상’까지 받았던 김은석 전 지부장은 지난해 4월 30일, 해고됐다. 노동조합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1년이 넘는 투쟁이 이어졌다. 경찰에 연행된 것만 세 번이고, 제주도까지 날아가 80여 장의 플래카드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리고 1년 4개월 만에 원직 복직이 결정됐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복직 소감은?

“다시 직원들하고 일할 수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게 완벽하게 됐으면 좋을 텐데, 아쉽긴 하다.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은 인체약품하고 동물약품이 다른 법인으로 돼있다. 삼성에 전자, 건설 등의 계열사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인체약품 수준의 단협을 요구했고, 처음엔 원직 복직하면서 인체약품 수준에 맞춰진 단협에 사인하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조인식에서 징계 부분을 수정해달라고 하더라. 인체약품은 징계위원회를 9명이 들어간다. 사측 5명, 노측 4명. 그래서 2/3 이상 있어야 징계가 되는데, 그건 징계 못한다는 얘기다. 노측에서 2명 이상이 손을 들어줘야 하니까.

우리는 원래 사측 3명, 노측 2명 들어가서 2/3 이상 찬성해야 징계되는 걸로 잡았는데 조인식 직전에 과반수 찬성으로 바꿔달라고 하더라. 거기서 ‘밀리면 안 된다’, ‘복직이 우선이다’ 이렇게 의견이 갈렸는데 대부분 복직이 우선이라는 결론을 냈다.”

그간 노조를 대하는 회사의 태도는 어땠나?

“우리하고 부딪혔던 폴커 복 사장은 지금 폴란드에 가 있는데 좌천이나 마찬가지다. 작년에 세계양돈수의사대회(IPVS)를 제주도에서 했는데, 베링거도 3대 메이저 부스 안에 들어가는 중요한 행사다. 그게 6월에 있었는데 내가 해고된 게 4월 30일이다. 그때 나는 ‘사측도 참 허술하구나’ 생각했다. 나 같으면 잘라도 행사 이후에 자르겠다 싶으니까. 우리가 한 달 전에 미리 내려가서 집회신고를 했는데 사측에선 그런 준비도 안 했다. 그래서 호텔 앞부터 강정마을 옆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까지 행사장이며 길목이며 우리가 플래카드로 다 덮어버렸다. 한 80여 개 제작했다. 그때 가서 관광공사법 어쩌고 하는데, 법적으로도 안 되지. 독일 본사에서도 ‘해결하라’는 압박을 강하게 넣은 것 같고, 이래저래 폴커 복 사장은 나에 대해서 이가 갈릴 거다.”

그럼 복직 이후 동료들과의 관계는 괜찮은가.

“그건 괜찮다. 일단 회사가 인정을 했고 이기고 들어가는 거니까. 그리고 우리 조직은 사람도 30명뿐이고 거의 형, 동생으로 지낸 사람들이다. 만약 내가 이 싸움을 졌다면 다른 회사 어디든 취직할 수 없을 거다. 이쪽이 참 좁은 데라서.

우리가 집회할 때도 사무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응원해주고 그랬다. 복직해도 다른 데처럼 왕따 시키고 ‘쟤랑 얘기하면 안 돼’ 이런 분위기는 아니다. 어제도 영업회의 하고 저녁에 회식하면서 마케팅 상무가 ‘용서해 달라’고 하더라. 개인적으로 나를 싫어한 게 아니고 회사가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고. 그 사람들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금 노조 상황은 어떤가?

“처음 만들 때는 하루 이틀 만에 노조가입대상 21명 전원한테 가입신청서를 받았는데, 지금은 4명이다. 탈퇴하신 분들의 재가입은 힘들 것 같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어떻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지금까지 회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역량을 키우고 뭔가 요구해서 받아들여지는 부분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노동 쪽에 원래 관심이 있었나?

“관심보다는, 거의 몰랐다. ‘당연히 노조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닐까? 인체약품에는 있는데 왜 우린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한 거다. 영업이익은 인체약품보다 동물약품이 더 크다. 그런데 급여는 우리가 30% 적다. 복지도 적다. 급여 얘기를 하면 다른 회사 얘기를 끌어오지 말라는 식이었다.

노조를 만들 때는 상급단체를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는데, 인체약품은 한국노총 소속이고 우리는 민주노총 소속이라 그런지 교류가 없다. 처음에 노조 만들고 회사에서 문제시할 때 인체약품 위원장님이 ‘뭐 오래 끌 것 있습니까, 하루 만에 단협 똑같이 맞춰드릴 테니 저희한테 다 넘기세요.’ 그러시던데, 넘기긴 뭘 넘기나. 우리가 짐짝도 아니고.”

개인이 1년 이상 투쟁을 계속해왔는데, 여전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솔직히 쉽게 싸웠다. 운이 좋았다. 베링거인겔하임은 독일에서도 일하고 싶은 기업 3위 안에 들고, 그들은 이런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의 로펌, 이런 데가 더 나쁘다. 특히 유성기업이나 삼성, 이런 데와는 자본의 성격 자체가 다르지 않나. 무조건 버티고, 생계 곤란하게 하고, 도청 감청에…. 그분들의 싸움과 비교하는 건 부끄러울 정도다.

다만, 죽어도 혼자서는 못 싸운다. 나도 베링거인겔하임의 한 노동자일 뿐이고 동지들과 같이 싸웠기 때문에 버틴 거다. 같이 해 준 사람들 덕분에 어떻게 싸우는지 배웠고, 이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