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 가격’ 아닌 ‘사회적 가치’를 보라
‘최저 가격’ 아닌 ‘사회적 가치’를 보라
  • 김현정 기자
  • 승인 2013.11.1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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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협상안 부결…재신임…타결까지
“기계적으로 최저가입찰 강요하는 정부정책 개선해야”
[인터뷰1] 김보현 대보정보통신노동조합 위원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대보정보통신은 지능형 교통 시스템(ITS : Intelligent Transportation Systems)의 설비 관리를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쉽게 말하면 고속도로에 설치된 통신, 촬영 장비 등을 유지 관리하고 교통정보를 관리하는 일이다.

고속도로에 설치된 장비들을 관리하는 것은 한국도로공사의 업무로 보기 쉽다. 그러나 현재 한국도로공사는 발주처일 뿐이고, 계약을 따낸 업체가 교통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한국도로공사의 100% 출자로 설립됐던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은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따라 민영화되어 민간에 매각됐고, 지금은 대보정보통신이라는 이름으로 고속도로 유지 보수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엄밀히 말하자면 공기업이 아닌데, 노조는 공공노련 소속이다.

“출발은 공기업이었고, 지금도 도로공사에서 회사 지분 19%를 갖고 있다. 우리의 첫 단추는 공공부문에서 시작했고, 지금은 민영화됐지만 공공시설 유지보수라는 일은 똑같이 하고 있다. 법적 테두리에서는 공기업이 아니지만 크게 무리는 없을 거라고 본다. 공공노련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우리 입장에서 발주처들이 다 공공노련 소속이다. 우리 조합원들의 이해와 직결되는 부분이라 공공노련 소속으로 계속 가는 부분도 있다. 물론 같은 연맹이라고 무조건 우리 편을 들어주는 건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그렇지만 연맹에서도 유관기관들을 예전보다 배려해주고 신경써줘서 소외감을 덜 느끼고 활동하기도 좋아졌다.”

그럼 공공노련 활동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공공노련에 발주처 노조들도 있지만, 우리 이해관계를 어떻게 해결해줄 거냐 이게 난감한 문제다. 거기가 정부도 아니고. 연맹 주요 기관들도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건데 일방적으로 우리 편 들어줄 수는 없고.

정부의 발주방식이 제일 문제다. 건설이든 유지관리든 아웃소싱은 무조건 최저가입찰을 받는다. 건설 부문의 담합을 막는다든지 하는 순기능도 있겠지만 모든 외주사업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결국 책임과 부담은 다 노동자들한테 돌아온다. 이런 문제로 이번에 우리가 임단협 통과시키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비정규직 문제는 어느 정도 이슈화가 됐는데 아웃소싱의 문제는 주목받지도 못하고 있다.

연맹에서도 연구용역 착수해서 민영화 공기업들에 대해 연구하고,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 분석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용역 직원들, 그들의 고용보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데 정부가 가장 무책임하게 문제를 떠넘기고 있다. 모든 정부기관이 그러고 있고, 중앙부처가 더 문제다. 인건비 절감부터 하겠다고 중앙부처의 외주 용역을 가장 싼 인건비로 처리한다. 이 부분에 대한 개선책을 어떻게 제도화시키고 입법화시킬지가 가장 큰 문제다.”

방금 말한 것처럼 임단협 체결 과정에도 난항이 있었다고 들었다.

“복잡했다. 올해 5월부터 회사는 임금삭감을 요청했다. 적자가 날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우리는 기존에 상여금 500%, 성과급 100%였는데 그걸 상여금 200%, 성과급 400%로 조정하자는 안이 나왔다. 처음에 이게 부결됐다. ‘부결되면 그만두겠다, 노조 집행부 전원 총사퇴하겠다’고 이야기까지 했고 정말로 집에 며칠 틀어박혀 있었다. 집에서는 오히려 잘됐다고 그만두라고 하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무리를 하라는 조합원들의 얘기가 있어서 대의원대회를 통해서 재신임 받고 임금협상을 다시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올해는 동결하고, 회사가 적자를 감수하는 대신 상여금과 성과급 비율은 조정됐다. 대신 고용을 100% 보장하는 것으로 가결됐다.

처음 부결 나왔을 때는 답답했지만 모여서 회의하고 지방 사업장 돌면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도 받아들여줬다. 가결 때는 찬성이 88% 나왔으니까. 사측은 임금삭감 또는 구조조정을 받아달라고 요구했다. 처음에는 조합원들도 그걸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부결 이후 사측이 긴박하게 움직이고 구조조정 리스트가 돌고 하니까 조합원들도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본다. 집행부도 줄곧 구조조정만은 안 된다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고, 지금 생각도 그렇다. 누구도 강제로 임의로 나가지는 않게 해야 하지 않겠나.”

작년에는 삭발투쟁까지 하면서 고용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고, 임단협 결과를 보면 그 부분은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남은 임기동안 다른 목표가 있다면?

“우리 단사의 문제를 넘어 좀 더 크게 보고 싶다. 결국 아까 이야기한 정부의 입찰제도, 아웃소싱 노동자의 생존권 문제다. EU는 ‘사회적으로 책임지는 공공조달’을 권고하고 있다. 낮은 가격이 전부가 아니라 고용기회, 기회균등,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책임공공조달’(SRPP) 모델을 한국에도 적용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민영화가 뭘 가져왔나. 이번 국감 보니까 도로공사 부채의 하루 이자가 32억이라고 하던데, 참 그거 보고 헛웃음이 나더라. 정부가 우리 사업과 관련된 예산을 줄인 게 30~40억이다. 우리 조합원들 그렇게 쥐어짜고, 회사는 적자보고, 말도 안 되는 최저가입찰하게 만든 결과가 하루 이자라니. 그렇다고 민영화를 통해 실질적으로 좋아진 무언가가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구직난과 비정규직 문제도 결국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건데 이런 합의와 제도 개선을 통해서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우리만 해도 임단협 부결되고 여기까지 온 게 상시적인 고용불안의 문제를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임금도 깎이고 노동강도는 높아지는데 고용불안까지 겹치면 자괴감도 들고. 집행부도 조합원에게 미안하고, 그렇다고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답답하다. 다만 조직이 우선이라는 생각은 공유하고 있다고 보고, 반드시 좋은 때가 오도록 만들어서 조합원들이 보상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