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10개월만 스포츠강사?
1년에 10개월만 스포츠강사?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3.12.0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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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된 지 6년, 처우는 늘 똑같아
노조, 고용안정 대책 마련 요구
[현장3] 해고되는 스포츠강사

ⓒ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2008년부터 학교 체육 활성화 사업이 시작되면서 전국의 초등학교에 스포츠강사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나 학생들로부터 스포츠강사에 대한 만족도가 95%를 넘을 정도로 효과성은 입증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2014년 정부의 예산감축으로 인해 3,800명의 전체 스포츠강사들 중 800여 명(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추산)이 일자리를 잃게 될 상황에 놓였다. 이에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는 국가인권위에 스포츠강사 인권침해 긴급구제 신청을 했다. 스포츠강사제도가 시행된 이래 10개월의 계약기간이나 임금 등의 고용조건이 개선되지 않아 긴급구제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스포츠강사를 인터뷰해 스포츠강사의 삶을 각색하고, 스포츠강사제도의 실태를 취재했다.

어느 스포츠강사의 이야기

나는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하고 중등학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중등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2008년 국가정책으로 ‘학교 체육 활성화’ 사업이 추진되면서 스포츠강사 제도가 생겼다. 스포츠강사는 초등학교에서 정규체육수업을 보조하고 스포츠클럽을 지도하는 체육전문 강사다. 나는 이 제도가 시작되던 2008년 9월부터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올해로 6년차다.

스포츠강사는 시행 초기에 ‘체육보조강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발령을 받기 전 교육청에서 실시한 연수에서 보조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트 나르기, 뜀틀 나르기 등 매우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막상 학교 현장에 가보니 보조강사라기 보다는 체육수업을 전담하는 형식이었다. 정규 초등교사 중 체육과목만 맡는 체육전담교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스포츠강사도 체육전담교사와 같이 주간교육계획을 작성하고 체육 실기평가를 채점한다.

지난 9월 부산에서 신규 초등교사들을 체육전담교사로 배치했다. 체육전담교사들 중 상당수는 체육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따라서 이미 체육 수업을 하고 있던 스포츠강사에게 체육전담교사들이 자문을 구하면서 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정부에서 체육전담교사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갖고는 있지만 체육을 지도할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체육전담교사와 스포츠강사의 업무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임금 및 처우의 차이는 매우 크다. 이것이 우리가 싸우는 이유다. 스포츠강사 제도가 2008년 도입된 이래 임금인상을 비롯한 처우개선이 이뤄진 적이 없다. 이로 인해 ‘투잡’을 하는 스포츠강사들이 상당수 있다.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쪽잠을 자고나서 야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다른 학교 스포츠강사 동료는 문화센터 수영강사를 하고 있기도 하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이러한 상황에서도 스포츠강사들은 자체적인 연수를 통해 서로의 수업내용을 공유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스포츠강사마다 전공한 운동 분야가 다양해 서로 공유함으로써 실제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풍요로운 수업을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업무는 오전 8시부터 스포츠클럽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포츠클럽에서는 저체력이나 비만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규수업 시간 이전에 체육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시간일 갈수록 저체력인 아이들의 비율이 점차 줄어가고 아이들도 체육에 흥미를 갖고 있다. 특히 뉴스포츠라는 프로그램으로 기존의 운동종목을 아이들이 쉽게 할 수 있게 변형시켜 체육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스포츠클럽 수업은 정규수업 이외의 업무이지만 그에 대한 수당은 없다. 스포츠강사들은 주당 18~21시간만 근무하게 되어 있는데 스포츠클럽이나 방과 후 수업은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스포츠강사가 이것을 학교에 문제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고용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다음 년도에 재계약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 군말 없이 할 수밖에 없다.

이게 스포츠강사다

올해 1월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는 ‘2013년 초등(특수)학교 스포츠강사 지원 계획(스포츠강사 지원 계획)’을 발표하고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에 6,053명의 스포츠강사를 배치할 계획을 수립했다. 11월 20일 문화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2013 초등학교 스포츠강사 배치 현황’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3,800명의 스포츠강사가 배치돼 있다.

스포츠강사 제도는 “초등학교와 특수학교의 체육수업 부담 경감 및 학생들의 체육수업 흥미 유발을 통한 학교 체육 활성화 도모”와 “학생들이 체육활동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평생의 운동습관 형성에 기여”할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다. 지난 2011년 4월 문화부가 실시한 스포츠강사에 대한 만족도 조사 결과 교사 94.6%, 학생 96.4%가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러한 취지에 부합하는 듯이 보인다.

스포츠강사 지원 계획에서 문화부는 현재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 단위로 체결하고 있는 계약을 2014년부터는 1년 단위로 체결하겠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이에 대해 장동엽 문화부 체육정책과 주무관은 “아직 2014년 예산반영이 되지 않아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문화부의 스포츠강사 제도 대응투자 비율은 2013년 30%에서 2014년이 되면 20%로 축소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은 2014년에 스포츠강사 787명이 감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의 스포츠강사 제도에 따르면 스포츠강사의 선발 및 채용 주체는 각 학교장이며 시도 여건에 따라 교육청에서 선발 지원 여부를 결정하게 되어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3년부터 학교장이 스포츠강사를 선발하게 했다. 다른 시도교육청은 교육청에서 선발해 각 학교에 배치하고 있으나 2014년 선발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학비노조는 학교장이 아닌 교육청에서 선발하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학교장이 선발할 경우 스포츠강사들의 자율적인 근무가 어렵고 선발과정이 더욱 복잡하다는 것이다.

2014년에는 스포츠강사에 대한 인원감축이 예상되지만, 스포츠강사들이 이에 대비하는 것은 어렵다.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가 인원감축 대상인지 아닌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정동창 학비노조 스포츠강사분과장은 “계약 연장을 하기 위해 보여주기 식 수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단계별로 꾸준한 교육을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하는데 계약이 해지되어 다른 학교로 가면 그럴 수 없다”며 스포츠강사의 고용안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비노조, 고용안정 촉구

학비노조는 지난 11월 12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스포츠강사 800명 대량해고 사태 해결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진홍 스포츠강사는 “6년째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만 계약하면서 해고와 고용을 반복해 불안한 상황”이라면서 “현장에서 땀 흘리며 생활한 것밖에 없는데 이제 와서 해고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학비노조는 “130만 원의 저임금, 10개월 계약제로 인한 고용불안, 각종수당 미지급 등 열악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체육수업을 위해 헌신해 왔는데,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 취급하는 정부와 교육당국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대량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에 ▲ 직접고용·무기계약직으로 전환 ▲ 10개월 계약제 폐지 및 1년 단위 계약 ▲ 6년째 동결된 임금 10% 인상 ▲ 명절 상여금, 가족수당, 장기근무수당, 맞춤형 복지포인트 지급 ▲ 노동절 휴일근로수당, 연차수당, 연장근로수당,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기자회견에 이어 학비노조는 지난 11월 1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 긴급구제도 신청했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학비노조는 “2008년 9월 제도 도입 이후, 10개월 단위 계약 및 2개월간 해고 후 재계약 등의 방식으로 반복적이고 장기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바, 계속 근무한 기간이 2년 이상인 자 또는 1년 이상인 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을 해야 한다”면서, 교육부가 “2013년 12월말 집단적으로 해고위기에 처한 진정인을 포함한 약 800명의 고용안정대책을 긴급히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학비노조는 또, 정부가 국가정책조정회의를 통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계획을 갖고 있고 교육부는 2014년부터 1년 이상 지속 근무자의 무기계약 전환 계획을 수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강사들을 대량해고하여 고용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화부는 스포츠강사 지원 계획에서 ‘스포츠강사의 신분은 학교운영에 필요한 직원 등으로 보며, 2년 이상 동일한 학교에서 근무하더라도 무기계약직 전환 예외 대상’이라고 규정해 학비노조가 요구하는 무기계약직 전환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곽승룡 학비노조 정책국장은 “스포츠강사의 처우개선 없이는 모든 학교에 스포츠강사를 배치할 수는 없어 실패한 정책”이라면서 “계획과 예산을 정부가 잘못 수립했는데 현장에 불이익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스포츠강사들을 해고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부가 대책을 내놓도록 책임성을 따지겠다”고도 밝혔다.

스포츠강사들의 계약 만료 시점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정부가 학비노조의 요구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