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자주성·민주성 복원하겠다
노동조합 자주성·민주성 복원하겠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3.12.0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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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장에선 자유로운 의사표현도 어려워
노사협조 필요하지만 종속적 노사관계는 끝
[기획인터뷰1]정병모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위원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10월 18일 새벽,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정병모 후보가 제20대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제19대 위원장이기도 한 김진필 후보와의 맞대결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이른바 민주파와 실리주의 세력의 정면승부였다.

지난 2002년 제14대 임원선거에서 이른바 실리주의를 내세운 ‘노동자민주혁신투쟁위원회(노민투)’ 후보가 당선된 이후, 노민투는 올해까지 12년 동안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위원장 자리를 지켜 왔다. 노민투 집행부가 집행하는 12년 동안, 이른바 민주파를 자처하는 현장조직들은 겨우 명맥만을 유지해 왔고, 2년마다 치러진 임원선거에 후보를 냈지만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번 제20대 임원선거에서도 지난 12년 동안의 과정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동안 약화된 민주파 현장조직들이 연대했다고는 하지만 조직력에 있어서는 노민투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 후보인 김진필 후보는 ‘현직 프리미엄’까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었더니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정병모 후보가 당선자로 결정됐다. 18,048명의 조합원 가운데 16,864명이 참가한 투표(투표율 93.4%)에서 정병모 후보는 8,882표(52.7%)를 얻어 7,678표(45.5%)를 얻는 데 그친 김진필 후보를 1,200여 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임기는 12월 2일부터 시작된다.

요즘 정병모 위원장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 정병모 위원장을 웃음 짓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민주노조운동에 새 기운 될 것

12년 만에 ‘민주파’가 당선됐다. 조합원들이 왜 선택했다고 보는가?

“2002년에 실리를 주장하는 집행부가 들어서고 나서 실리를 조금 주기는 했지만, 그 대신 노동조합의 자주성, 민주성이 훼손됐고, 현장에서는 자유로운 의사표현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이번에까지 노민투가 집행하면 정말 끝장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현장에서 느꼈던 것 아닌가 싶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연임했던 노민투 집행부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린다.

“노민투 집행부가 여러 가지 실책을 저질렀는데, 대표적으로 오종쇄 집행부는 교섭권을 위임한 적이 있다. 노동3권으로 보장된 노동자들의 권리를 회사에 위임하면서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폐해를 끼치고, 패악을 저질렀다. 올해 김진필 집행부도 조합원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인상률에 잠정합의 했다.

그리고 현장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현장 분위기가 경직돼 가고 있는데 그걸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지금 현장에서는 자유로운 투표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에게 자유로운 투표를 보장하라고 요구해도 묵살했을 뿐만 아니라, 한 편으로는 그것을 즐기기까지 했던 것이 노민투 집행부다.”

이번 선거 결과가 전체 노동조합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선거 결과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만큼 현대중공업의 노동조합 활동이 외부에서 보기에는 위축돼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선된 만큼 이번 승리가 민주노조운동진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조운동이 사실상 침체기에 있는데, 현대중공업에서 민주노조를 지향하는 지도부가 탄생함으로써 새로운 기운이 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는 것 같다. 현대중공업노조가 당장 민주노총에 가입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내실 있는, 정말 민주노조운동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줌으로써 조합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역주민과 더 나아가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을 만들어 나가려고 한다.”

안정적인 삶 위해 기본급 비중 높여야

조합원들이 바라는 바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런 조합원들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부분에 주력할 것인가?

“임금이나 후생복지 문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지켜주기를 바란다.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조합원들은 금전보다는 실제로 그런 요구를 많이 하고 있다. 비록 선거가 우리들의 승리로 끝났지만 현장에서 자유로운 투표를 못했다. 그만큼 어려웠다. 조합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이런 것을 해소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그런 부분을 우선사업으로 삼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기본급 중심의 임금인상과 호봉승급분 인상을 공약했다.

“실리 집행부는 재작년과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인상안을 만들었다. 그것을 상쇄시키기 위해 일시금 얼마, 격려금 얼마 하는 식의 일시적인 목돈으로 조합원들의 눈을 현혹했다.
그러다 보니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이 굉장히 낮고, 잔업과 특근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다. 나이 든 노동자들의 경우 임금이 어느 정도 된다고는 하지만 장기근속 한 것 치고는 기본급 비중이 굉장히 낮다. 94년 이후 입사한 신규 조합원들은 최저임금을 약간 넘는 기본급을 받고 있다.

이렇게 낮은 기본급으로는 일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다. 한꺼번에 목돈으로 주는 일시금이나 격려금보다는 기본급을 탄탄히 해서 조합원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잔업이나 휴일근무를 통해서 많이 벌 수도 있지만, 그것에 의존해 살면 노동자들의 삶은 허덕일 수밖에 없고 안정될 수 없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본급 중심으로 임금정책을 강화하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임금 외에도 임금삭감 없는 정년 60세, 작업환경 불량 시 작업중지권 발동, 주야 교대 근무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야간 1시간 취침시간 신설, 정규직 퇴직 시 퇴직자의 1.5배만큼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 채용 등의 공약이 눈에 띈다.

“실리 집행부는 정년을 연장한다면서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였다. 노후에 대한 대비가 없고 노후가 될수록 돈이 더 들어가는 구조에서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연장은 또 다른 고통을 주는 것이다. 그런 고통 없이 정년을 보장함으로써 노후를 준비할 수 있게 하자는 거다.

또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이 생긴다. 불가피하게 생기는 것도 있겠지만, 시설 부족이나 관리의 부실로 생기는 것이 굉장히 많다. 예전에 노동조합이 힘을 가지고 있었던 때에는 현장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작업을 중지시키고 그 원인을 해소한 다음에 작업을 할 수 있게 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 잘 검토하고 조율해서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노조의 할 일이다.

컨베이어가 돌아가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조선에도 불가피하게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생체리듬과 생활리듬이 바뀌면서 노동자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자동차에서는 어렵게 주간연속2교대제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중공업은 그러지 못하다. 그렇다면 최소한 야간 취침시간을 늘려서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장하는 차선책이라도 필요하다.

지금 현재 현대중공업 안에는 정규직보다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그것을 한꺼번에 해소하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론 어렵다. 그렇다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숫자를 줄여야 하는데, 정규직 퇴직 노동자들의 1.5배 이상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중이 역전되고 현대중공업 안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줄어들지 않겠느냐 생각한다. 비정규직 해소 방안의 일환이다.”

일방적인 민주노총 재가입 않는다

민주노총과 등을 돌린 지 9년이 지났다. 일각에서는 민주노총 재가입을 예상하기도 한다.

“민주노조는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를 말하는 거다.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이 담보되는 것이 민주노조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조를 지향한다는 것이 민주노총에 바로 가입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개선한다거나 하는 것을 생각할 순 있겠으나, 민주노총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의 이해와 협력이 필요하다. 집행부가 바뀌었다고 일방적으로 집행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조합원들과 충분히 이야기하고 소통하면서 협력해서 풀어갈 생각이다. 단기간 안에 무리하게 (민주노총 재가입을) 추진할 생각은 없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집행부는 바뀌었지만 대의원의 구성은 바뀌지 않았다. 대의원들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의원들도 조합원이고 조합원들의 민심을 대의원들이 읽고 있다. 집행부의 일정과 정책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대의원들이 충분히 이해할 것이고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대의원들을 만나 이야기하면 다들 잘해보자,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일부에서 그런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나 대의원들이 발목을 잡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최대한 협조할 자세도 되어 있는 것 같다.”

공약에서도 일부 언급되긴 했는데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자 하는가?

“공약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관련된 문제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문제는 스스로 풀어야 한다.

지금 현대중공업 안에는 조합원 가입이 저조하고 힘을 갖지 못해 한계가 있긴 하지만 금속노조 소속의 사내하청지회가 있다. 사내하청지회가 어떻게 하면 현장에서 현실적인 힘을 가질 수 있는지 사내하청지회장과 만나 이야기하려고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개별기업에서 해결할 수 없는 숙제가 아닌가 싶다.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을 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서 이 문제를 원천봉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문제는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숙제이고 사회제도를 바꾸는 것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현대중공업 노사관계는 협조적이었다. 향후 이 부분에 변화가 있을지 궁금하다.

“기업별 노동조합 체계에서 노사가 협조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조합원들의 권익과 복지를 이야기하려면 노사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것을 통틀어서 노사협조라고 보면, 그런 노사협조는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지 않는, 예속적이고 종속적인 노사관계는 끝장내야 한다. 그간 실리 집행부가 가져왔던 예속적이고 종속적인 노사관계에서 벗어나,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그것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살리는 길이고 현장 노동자의 자신감을 살리고 노동조합에 대한 애착심을 갖게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