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공공부문 발목이나 붙잡지 말라
정부 정책 공공부문 발목이나 붙잡지 말라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3.12.0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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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만경영 꼬리표로 정권마다 공기업에 책임 전가
국가 전략인 자원 확보, 민간기업 투자 기대는 어려워
[인터뷰 1] 김병수 한국석유공사노조 위원장

에너지 공기업들의 ‘임금 반납’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지역난방공사에 이어서 한국전력도 이와 같은 자구책을 내놨다. 3급 이상 임직원들은 올해 임금 인상분 전액을 반납하고, 1급 이상의 임직원은 경영평가 성과급 역시 반납하기로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뭇매를 맞던 공기업들이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방만경영의 딱지가 붙었다. 공기업 안에서 유일하게 이와 같은 조치에 반발하며 ‘방만경영’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조직은 노동조합이다.
 

ⓒ 한국석유공사노동조합
조합원이 아닌 임직원들의 문제에 노동조합이 전면에 나서는 이유는?

“임금을 반납시키는 행위가 정부의 시나리오에 의해서 강제로 진행됐다고 보는 것이다. 현오석 부총리의 발언이라든지, 국정감사 시기에 맞춰서 일련의 과정이 진행 중이다. 정권 초만 되면 위기가 닥칠 때마다 꺼내든 카드가 공공기관 방만경영이라는 꼬리표다. 공기업 부채 문제만 해도, 정부가 특단의 조치 없이 495조 원에 달하는 공공부문 부채를 해결할 능력이 없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공기업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면서 들이대는 핑계가 방만경영이다. 거기에 부화뇌동하지 않도록 공사에 경고를 하는 게 필요하다.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의 귀속력이 꼭 조합원들에게만 있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합원이 아니라고 해도 이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은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직 내부에서도 공감대를 갖고 있다. 오히려 상황이 전개되면서 기존에는 노조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던 간부급 직원들이 친밀함을 느끼게 됐다.”

부채 규모를 포함해 현재 공사의 경영은 어떤 상황인가?

“2008년만 하더라도 5.5조 원 수준이던 부채가 지금은 19조 원에 달한다. 해외에서 석유개발을 해서 벌어들이는 이익으로는 이자도 못 갚는 실정에 이른 것이다. 이런 부채가 왜 발생했는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무리한 해외자원 개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는 논리를 준비해야 한다.

석유공사는 지난 2003년 즈음부터 네 배 이상 급속히 덩치가 커졌다. 해외자원 개발 부문은 거점화된 시장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마케팅 파워를 갖고 있지 않으면 실제로 광구를 취득한다든지, 사업을 추진하는 데 애로가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북미와 유럽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어느 정도 덩치가 있는 회사를 사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보통 기업이 M&A를 추진하고 나면 부채 비율이 서너 배까지 올라간다. 단기차입을 해서 회사를 살 수밖에 없으니까. 그 늘어난 부채를 포함해서 덩치가 커진 조직을 어떻게 상황에 맞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한 부분이다.

지난해 공사는 경영평가 최하위 등급인 E등급을 받았고, 그 전해에는 D등급이었다. A등급을 두 번 받은 이후 갑자기 곤두박질 친 것이다. 인수합병으로 인해 부채가 늘어나고 영업실적이 다소 악화됐다고 해서 매년 실시하는 경평에서 무조건 등급을 낮추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보통 사람들도 하다못해 내 집 장만을 하려면 대출을 끼고 집을 사지 않나.

선진국의 경우 70~80년대에 이미 이러한 전철을 밟아 왔으며, 가까이는 최근 중국의 경우만 보아도 자원의 확보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선택이다. 세계에서 2위, 5위 규모의 석유회사들이 중국의 기업인데, 이들은 다 10년 사이에 정부의 지원 아래 덩치가 커진 것이다. 중국은 그야말로 자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안정적인 석유의 공급이 없이는 도저히 경제성장률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우리나라는 오히려 정부가 공사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민간기업은 단기이익이 날 수 있어야 사업에 뛰어든다. 삼성이나 SK와 같은 대기업들도 해외자원 개발 사업에서 지금은 대부분 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기업이기 때문에 부채를 감당하면서도 장기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할은 부여해 놓고 조직의 운영이나 예산, 경영의 자율성은 전혀 보장하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알려내는 것이다. 사회공공성 강화라는 구호 한 마디로는 너무 추상적이다.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산업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이 어떤 동력이 될 것인지 납득할 수 있는 논리를 펴야 한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공공부문의 상황이 꽉 막혀 있기 때문에 분배나 성장의 문제까지 진척이 없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슈화시키지 못한다면 매번 똑같은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그동안 공기업 정책연대의 활동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통해서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논의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개별 현안에 발목을 잡히다 보니 진도가 더디 나가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