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그래비티’를 찾아서
내 삶의 ‘그래비티’를 찾아서
  • 참여와혁신
  • 승인 2013.12.0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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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슬러 증후군 배경으로 우주조난 다룬 영화
옥에 티 가릴 만큼 인상적인 묘사

과학칼럼니스트

지구 상공 600km, 소리도 산소도 없는 우주에 홀로 남겨진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외롭고 두려운 이 상황을 스크린 속에 펼쳐놓은 영화가 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다. 20분 동안 한 번도 끊지 않고 롱테이크로 촬영한 첫 장면은 관객들을 우주 한가운데로 옮겨놓고, 순식간에 우주미아가 되는 주인공의 모습은 숨 막히는 공포를 자아낸다. 90분 동안 펼쳐지는 아찔한 우주드라마 속에는 과학을 담고 삶에 대한 성찰을 녹였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로 <그래비티>를 꼽고 싶은 이유다.

“Do you copy? Please copy!”

영화 <그래비티> 속에서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이 외친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냐고, 제발 들어달라고….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함께 있던 선배 우주비행사 매트 코왈스키(조지 클루니)도 온데간데없다. 광활한 우주 공간 속에 홀로 남겨진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막막하고 두렵다. 대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걸까? 

ⓒ 영화 <그래비티> 공식 사이트
위성이 연달아 파괴된다, ‘케슬러 증후군’

영화 시작 부분에서 스톤과 코왈스키는 허블우주망원경에 새 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 음악도 듣고, 농담 따먹기도 하고, 지구 풍경도 바라보는 평화로운 시간이다. 그런데 이때 러시아가 자국의 인공위성을 미사일로 쏘아 부순다. 깨진 위성의 조각들이 총알보다 10배 빠른 속도로 날아와 두 사람을 덮치면서 어마어마한 공포의 시간이 시작된다.

실제로 지구 주위에는 수많은 위성파편이 있다. ‘우주쓰레기’라 불리는 이 파편들은 대기가 없는 우주공간에서 초속 7~11㎞ 속도로 날아다니며 다른 위성과 우주정거장, 그리고 우주비행사를 위협한다. 성인 주먹만 한 파편도 우주에서는 시속 2만7,000㎞의 엄청난 속도를 가지기 때문에 충돌하면 위성 하나가 완전히 박살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파편에 맞아 파괴된 위성에서 또 다른 파편이 나오고, 이 파편에 또 다른 위성이 연달아 충돌하는 연쇄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케슬러 증후군’으로, 197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가 제시한 이론이다. 현재 지구궤도를 떠도는 지름 10㎝ 이상 파편은 2만 개가 넘는 것으로 예상되는데, 3만 개를 넘을 것으로 보이는 2020~2030년쯤에는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영화 <그래비티>는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지 모르는 ‘케슬러 증후군’의 초기 단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우주에도 중력이 있다, ‘마이크로 그래비티’

우주망원경 주위를 둥둥 떠다니는 스톤과 코왈스키는 마치 우주공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력이 없으니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우주공간이라고 해서 지구의 중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에 따라 질량을 가진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구와 우주인이 멀어지면서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줄어든 ‘미세중력(micro gravity)’ 상태가 된 것이다.

심지어 두 사람은 다른 우주 파편처럼 초속 7.65㎞의 속도로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 단지 지구 중력이 우주인을 당기는 힘과 우주인이 비행하는 궤도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면서 중력 반대 방향으로 나가려는 힘이 상쇄될 뿐이다. 어느 쪽으로도 당기는 힘이 치우치지 않아 마치 무중력 상태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아름다운 지구를 배경으로 작업하던 두 사람의 평화는 파편 충돌로 끝난다. 스톤 박사가 캄캄한 우주 한복판으로 멀어지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다. 지구가 당기는 힘은 느낄 수 없고, 함께 있던 동료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스톤 박사를 끌어당기지 않는 상황, 지독한 외로움의 공포가 스크린 너머로 전해진다.

기적적으로 다시 만난 코왈스키는 자신과 스톤 박사를 끈으로 묶는다. 그런 상태로 두 사람이 우주정거장으로 향하는 아슬아슬한 우주유영을 보면서 당연한 줄 알았던 거대한 힘이 떠올랐다. 중력뿐 아니라 부모와 친구, 그리고 나를 잡아끌어준 소중한 힘들까지도 어쩌면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그래비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해져서 잘 느끼기 못하지만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새삼 감사했다. 

ⓒ 영화 <그래비티> 공식 사이트
억세게 운 좋아야 살 수 있다, ‘옥에 티’

우주에서 조난을 당하고, 지구와 교신이 끊어지고, 우주선도 망가져버린 상황. 스톤과 코왈스키는 국제우주정거장(ISS)과 중국의 우주정거장 ‘텐궁’까지 이동해 지구로 돌아갈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스톤 박사는 천신만고 끝에 지구에 무사히 도착한다. 그녀가 대지에 “Thank you”라고 속삭인 뒤 일어서는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중 하나다.

하지만 현실에서라면 두 사람이 살아서 지구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영화 속 설정처럼 허블망원경과 국제우주정거장, 톈궁이 가까이 붙어있지 않고, 각각 궤도 차이가 있어 추진 장치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우주복에 있는 추진 장치에는 적은 양의 연료만 들어 있어 먼 거리를 이동하기는 불가능하다. NASA에서 소유스 우주선의 조종 교육만 받은 우주인이 중국의 지구 귀환용 우주선을 조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 대기로 재진입할 때도 매우 정교한 제어가 필요하다. 만약 지구의 얇은 대기권을 통과할 때 각도가 맞지 않으면 물 표면으로 돌이 튕기는 것처럼 우주공간으로 튕겨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불에 휩싸여 타버릴 수도 있다. 결국 살아서 지구를 밟은 스톤 박사는 억세게 운 좋은 과학자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옥에 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묘사하는 우주공간의 물리법칙이나 우주선, 인공위성, 캐슬러 증후군 등은 사실적이다. 또 90분 동안 펼쳐진 아찔한 우주드라마를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다한 스톤 박사가 지구 재진입을 앞두고 짓던 표정에선 최선을 다한 자의 홀가분함이 느껴진다. 어떤 일이건 끝까지 포기하지 말 것을, 그래야 후회도 없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스톤 박사처럼 스스로 다잡는 힘도 사는 데 꼭 필요한 ‘그래비티’라는 게 영화가 담은 또 하나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