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이라고 지역 무시하면 되니?
글로벌 기업이라고 지역 무시하면 되니?
  • 참여와혁신
  • 승인 2006.04.3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멕시코 이어 한국에서도 짐 싸는 까르푸

현지 소비자 외면하면 ‘글로벌’ 문패 소용없어

안 승 호[숭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최근 국내 유통업계에서 가장 주목을 끌고 있는 소식은 까르푸의 국내 철수에 관한 내용이다. 이미 우선협상대상이 선정되었다고 하니 까르푸의 한국 철수는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까르푸는 월마트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규모의 유통업체로써 프랑스에 본부를 두고 약 30개국에 걸쳐 1만10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04년에 약 18억 달러의 이익을 기록하였으며 하이퍼마켓뿐만 아니라 드럭 스토어, 슈퍼마켓 등 다양한 업태를 운영하고 있는 유통업체다.


까르푸의 철수는 세계 3위 업체인 테스코와 MWC(회원제 도매클럽)업계에서 세계적인 유통업체인 코스트코를 포함한 다국적 기업 중  국내 대형할인점 경쟁에서 밀려난 최초의 사례로 기억될 만한 사건이다.


‘대형할인점의 정수’ 보여주며 순탄한 출발
까르푸의 한국시장 철수는 일차적으로 전략적인 고려에 따른 것이다.
한국 시장 철수에 앞서 결정된 일본 시장에서의 철수는 까르푸 경영전반에 걸쳐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보이며 새로이 등장한 동유럽 및 중국시장에 집중하려는 전략 수정을 엿볼 수 있다. 까르푸 경영진들은 새로운 경영방침도 구상하고 있는데 진출한 국가에서 세 번째 내에 속하는 유통업체가 되지 못한다면 철수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고 한국시장에서 그 같은 위치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까르푸 철수는 유통업계는 물론 국내 경제주체들에게 다양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사실 까르푸는 대형할인점의 정수를 국내 소비자와 공급업체에게 제대로 보여준 최초의 업체이다.


이마트가 최초의 대형할인점포를 개설하였으나 대형할인점 경영의 체계성이나 완성도로 보았을 때 까르푸가 그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를 계기로 많은 다국적 유통 기업이 국내에 진입하였으며 국내 20대 대기업 모두가 유통업 특히 소매업에 관심을 보일 정도로 까르푸의 국내시장 진입의 파장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 전까지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첨단 유통관리기법과 유통정보화 기술을 선보였으며 이에 따라 국내 공급업체의 유통관리 능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그 결과 국내 유통업은 물론 국내 경제 전반에 걸친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소비자들도 까르푸가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에 소개한 프랑스산 포도주, 롤러블레이드 등 새로운 상품에 대해 열광하였으며 이제 이들 상품들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찾아보기 쉬운 친숙한 상품이 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엄청난 규모의 매장은 방문 고객들을 놀라게 하였으며 편리한 주차시설, 깨끗하게 정리된 매장,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다양한 취급 상품과 브랜드 등은 대형할인점이 시장경제체제의 중심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실패의 씨앗, 지역화에 대한 무관심
이러한 긍정적인 기여에도 불구하고 최근 까르푸의 부침은 경쟁에서는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진리를 깨우치기에 충분한 교훈이 되고 있다.
초기의 성공에서도 까르푸의 취약점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우선 지역화에 대한 까르푸의 무관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한국시장을 무시한 결과라기보다는 까르푸 전략상의 결점인 것으로 보인다.


즉 30여개 국가에서 성공한 모델을 도입하여 한국시장에서도 유사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너무 앞선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황과 유사하게 최근 까르푸는 일본과 멕시코에서도 실패를 맛보았으며 이 같은 사례들의 공통점은 지역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경영정책에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까르푸의 전략적 결함이 시장에 알려짐으로써 2005년 까르푸의 주식은 테스코에 비해 30%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지역화의 의미는 지역 고객의 취향, 욕구, 정서, 그리고 진출국가의 유통구조에 어울리게 경영전략을 변화시킴을 말하는데 까르푸의 전반적인 경영방식은 이와 거리가 있다. 특히 국내 소비자는 재래시장, 백화점을 막론하고 상당수준의 인간적 서비스에 친숙해져 있는 반면에 철저하게 인간적 서비스를 배제한 까르푸의 서구식 할인점에 대해서는 낯설게 느껴진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특히 서구식 할인점 운영방식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전략수정을 했던 다른 다국적 업체와 달리 지속적으로 초기의 방식을 고집한 것은 까르푸 경영진의 실수라고 본다. 물론 까르푸도 지역화에 대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지만 국내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기에는 부족했던 것이다. 

 

지역 소비자는 제품 이상을 원한다
일본 시장에서의 철수도 일본의 전통적 유통구조를 무시한 결과인데 전통적으로 유통경로의 중심에 있었던 도매상의 역할을 무시하고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일방적으로 구축하려다가 실패한 결과이다. 즉 제조업체와의 직접적인 거래를 시도하다가 지역 도매상의 반발과 제조업체의 거절로 제대로 된 소싱(saucing)체제를 구축하지 못함으로써 힘 한번 못 써보고 시장에서 철수하게 된 것이다. 


유통업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사업이다. 지역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경우 어떠한 유통업체도 성공하기 어렵다. 까르푸의 한국시장에서의 전략은 로우 프로파일(low profile), 즉 철저하게 ‘티 나지 않는’ 경영방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조용히’ 시장을 장악함으로써 불필요한 잡음이나 반발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인데 자칫 시장과 고객을 무시하는 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 업계에서 까르푸가 ‘죽의 장막’이니 ‘크렘린’이라고 일컬어진 것이 바로 로우 프로파일 전략의 부정적 측면이다.


특히 해당 기업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되는 경우 각종 루머에 시달리게 되는데 가뜩이나 대형할인점은 지역시장 구도를 크게 흔드는 업태이고 그만큼 다양한 이해집단의 주의를 끌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사회와 공급업체와의 갈등 상황은 까르푸의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켰다. 전반적으로 지역사회는 까르푸를 단지 물건을 사는 장소로 이해할 뿐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인식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글로벌 기업일수록 도덕성 갖춰야
노사간의 심각한 갈등, 공급업체에 대한 공정거래 위반 사항들은 고객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시민들에게 까르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사건이었다.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도덕성에 대한 국내 시민들의 기대는 국내 기업에 대한 것과는 사뭇 달랐고 그 만큼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지만 이를 간과한 것이다.

 
다른 대형할인점 업체와 같이 적발되었어도 유독 까르푸의 이름이 신문지상에 크게 올랐으며 이에 따라 까르푸에 대한 공급업체, 그리고 소비자의 반감은 정상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또 이를 개선하기 위한 까르푸의 노력은 일반 시민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간간히 터져 나오는 부정적 소식은 까르푸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악화시켰으며 현재 까르푸의 상황이 이를 반영한다고 본다.  


한국의 기업들도 이제 세계 곳곳에 진출하고 있으며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초과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까르푸 부침의 교훈은 글로벌 기업일수록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지역고객과 이해집단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까르푸의 사례는 도덕경영, 투명경영이 기업의 중요한 경쟁우위요소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