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지 않으려면 알아서 조심해라?
다치지 않으려면 알아서 조심해라?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3.12.0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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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선 기업살인법 제정해 엄격한 산재 관리
기업·정부, 산재 대하는 기본 인식부터 바꿔야
[특집] 노동자 건강권 2013 ③ 건강하게 일할 권리? 없다!

어느 누구도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들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산재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 다치거나 병드는 노동자도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전체 재해자 수는 45,231명으로 그중 사고재해자 수는 41,495명이고, 질병재해자 수는 3,736명이다. 사망자는 모두 941명인데 523명이 사고로 사망했고 418명은 질병으로 사망했다. 하루 평균 5명 이상이 산재로 사망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가?

ⓒ 참여와혁신 포토DB
노동자 편은 없다

앞에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희귀질환 문제와 근골격계 재해조사 시트 개정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이는 산재와 관련된 문제 중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두 사례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듯이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와 관련해 재해를 당한 노동자의 편에 서기보다는 기업의 편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사례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근로복지공단은 ‘질병과 업무의 상당인과관계’라는 문구에 집착해, 질병의 발병경로가 의학적으로 밝혀져야 산재로 승인하겠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나아가 법원에서 산재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와도, 그 판결이 추정에 근거를 둔 것이라며 항소해 재해노동자와 유족을 길고 긴 법정싸움으로 내몰고 있다. 산재가 발생했을 때 공정하고 신속한 보상에 앞장서야 할 근로복지공단이 오히려 이중 삼중의 고통을 재해노동자에게 안기고 있는 꼴이다.

고용노동부 역시 재해조사 시트 개정과 관련해 현장 재해조사의 ‘객관성’을 확보하자는 주장에 대해, “노사 합의가 우선”이라며 발을 빼고 있다. 노동자를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최소한의 객관성을 확보하자는 주장에도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태가 이러니 ‘고용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근로복지공단이 아니라 삼성복지공단’ ‘노동부가 아니라 경영부’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산재심사 시스템 역시 재해노동자에겐 불리하다. 재해가 발생했을 때 주어진 작업환경에서 일만 하던 노동자가 재해와 업무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은 사고재해가 아니라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마치 의료사고가 났을 때 비전문가인 환자에게 전문가인 의사를 상대로 의료사고를 입증하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재해노동자가 기업의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 만한 자료를 준비해도, 10분에 1명꼴로 심사하는 질병판정위원회는 자료를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는다. 현장에서 제대로 재해조사마저 이뤄지지 않아 재해노동자가 산재로 인정받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노동자 스스로가 알아서 조심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대안이다.

보험료는 깎아주고 사고엔 솜방망이 처벌

OECD 국가들 중에서 산재발생률 1위를 다투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에게는 ‘규제 완화’라는 이름으로 온갖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산재보험료 감면이다.

2013년 국정감사에 제출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업은 모두 1조1,376억 원의 산재보험료 감면 혜택을 받았다. 한 해 산재보험 재정이 6조 원 남짓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에 가까운 산재보험료를 감면받고 있는 셈이다. 그중 20대 대기업이 감면받은 액수는 3,461억 원에 이른다.

산재사고가 발생해도 기업이 지는 책임은 솜털처럼 가볍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8월 LG화학 청주공장에서 다이옥신이 폭발해 8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LG화학에 대한 처벌은 재료팀장 1명에 대한 구속이 전부였다. 1년 6개월 만에 15명이 사망한 한국타이어의 경우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183건의 산재은폐와 1,39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적발했지만, 법원은 지난해 한국타이어에 무죄를 선고했다. 올해 여수산업단지에서 발생한 대림산업 폭발사고로 모두 1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대림산업 대표이사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관리책임자에게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이에 비해 외국의 경우에는 산재사고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하고 있다. 특히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이를 ‘기업살인’으로 간주해 중형으로 처벌하고 있다. 평면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천에서 발생한 냉동창고 화재사고 당시 기업에 부과된 벌금은 사망 노동자 1명당 50만 원꼴이다. 반면 민주노총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건설노동자의 산재사망에 6억9,000만 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아울러 민주노총은 영국에서는 지난 2007년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해당 기업의 1년 매출액의 10%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주에서도 건설노조가 앞장서서 2003년 ‘산업살인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광산노동자 26명이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2003년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고 민주노총은 덧붙였다. 미국의 경우에도 산재에 대한 고액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은 산재사망 시 징역 10년, 반복될 경우 징역 20년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노동자 보호법안’을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자가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조차 규제로 인식하는 기업이 존재하는 한, 노동자의 생명보다 기업의 이윤이 우선시되는 한, 더구나 정부나 근로복지공단이 기업의 눈치 보기에 급급해 노동자에게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기업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한, 우리나라는 산재에 관한 한 후진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일하다 골병들고 사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20조 원에 육박한다. 기업이 안전에 대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정부가 이를 엄격하게 관리·감독하며, 노동자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작업에 임할 때, 비로소 산재발생 1위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