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보고 사람을 읽을 수 있을까?
얼굴을 보고 사람을 읽을 수 있을까?
  • 참여와혁신
  • 승인 2014.01.0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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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관상학…솔깃하지만 차별·배제로 이어질 수도
선입견보단 진실한 마음이 앞서야

과학칼럼니스트

새해가 밝으면 사람들은 으레 신년운세를 점치곤 한다. 태어난 연월일시로 풀어보는 사주는 물론 손금, 얼굴 생김새 등 앞날을 내다볼 근거는 다양하다. 최근에는 관상에 대한 관심이 높다. 아무래도 2013년 추석에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관상>의 덕이 크다. 관상쟁이 김내경(송강호 역)은 관상으로 살인범을 잡아내고, 관직에 알맞은 인물을 뽑아내며, 정치에도 관여한다. 얼굴만 척 보고 사람을 읽을 수 있다니 아무래도 솔깃하다. 이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상학이 발달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꼼꼼하게 따져보면 그다지 큰 믿음이 가지 않는다.

동양, 얼굴에 자연요소 반영해 길흉화복 점쳐

관상학은 얼굴 생김새를 보고 성격이 어떠한지, 얼마나 오래 사는지, 전체적인 운은 어떠한지 등을 파악하는 학문이다. 기본적으로 ‘얼굴을 통해 사람의 운명을 읽을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천성이라는 게 얼굴에 드러나게 마련이니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분석하자는 게 이 학문의 목표다.

동양의 관상학에서는 하늘과 땅, 산, 강 등의 자연 요소가 얼굴에 반영된다고 봤다. 이를 잘 살펴보면 길흉화복과 운명이 보인다는 것이다. 머리는 하늘을 상징하니 그처럼 높고 둥글어야 한다는 식이다. 또 눈은 해와 달을 뜻하고, 입은 바다에 해당한다. 코와 광대뼈, 이마, 턱은 산악을 의미하므로 적당히 솟은 게 좋다고 본다.

물론 이런 이야기에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관상학적으로 훌륭한 얼굴을 가지면 좋은 삶을 산다는 것에 논리적인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한둘이 아닌데 얼굴만으로 운명이나 수명이 결정된다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예쁘고 잘 생긴 얼굴로 성공한 연예인들도 있겠지만, 그런 얼굴을 가졌더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순자도 관상을 비판하며 “형상을 보는 것은 마음을 논하는 것만 못하고, 마음을 논하는 것은 행동규범을 잘 가리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얼굴이 나쁘다고 해도 마음이나 행동이 훌륭하면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관상학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다. 미리 미래를 내다보고 다른 사람까지 파악하고 싶은 욕구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서양, 생리학·해부학 지식 접목 다양한 차별 요소로 작용

서양에서는 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가 관상학을 창시했다고 전해진다. ‘관상을 보다(physiognomize)’라는 동사를 처음 사용한 히포크라테스를 관상학의 창시자로 보는 주장도 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상학’이라는 책을 통해, 몸과 마음은 하나이므로 ‘외모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도 추론할 수 있다’는 논리를 세웠다. 돼지처럼 이마가 좁으면 멍청하고, 소처럼 이마가 넓으면 무기력하다고 봤다.

17~18세기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관상학은 ‘사이비과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은 욕구들은 여전했고, 의사이자 목회자였던 라바터는 1772년 ‘관상학’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비과학적 요소를 배제하고 생리학·해부학 같은 과학 분야를 접목해 관상학의 분류체계를 세운 것이다.

그런데 라바터에 따르면 얼굴이 넓적하고 코가 낮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사람은 무례하고 멍청한 반면, 코가 오뚝하고 각이 진 얼굴은 지적이고 세심하다. 전자는 황인종을, 후자는 백인종을 연상시킨다. 또 흑인에 대해서는 코가 펑퍼짐하고 눈이 튀어나왔으며 입술은 치아를 덮지 못한 채 튀어나와 둥글고 두툼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의 관상학에는 인종 간 우열의 차이는 뛰어넘을 수 없다는 주장이 담긴 것이다.

1876년 ‘범죄자론’을 쓴 정신의학자 롬브로소는 관상으로 범죄자를 알아보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선천적인 악인은 설치류처럼 송곳니가 튀어나왔고, 턱수염은 적거나 없으며, 일자눈썹이거나 눈썹 끝이 치켜 올라가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역시 외모로 성급한 판단을 내릴 우려가 다분한 이야기다.또 1791년 해부학자 프란츠 요제프 갈은 뇌와 성격 사이에 직접적 관계가 있다는 ‘골상학’을 발표했다. 두개골을 측정하면 인간의 내적 상태를 알아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에 따르면 남자보다 머리 크기가 작은 여성들이 불리했지만, 이것이 지적인 면에서 여성이 열등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얼굴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

관상학과 골상학은 ‘과학’의 이름 아래 사람들을 분류하고 구별 지으려 했다. 원래는 사람을 쉽게 파악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했지만, 그 결과는 ‘차별’로 이어졌다. 피부색이나 머리카락, 얼굴 골격 등을 근거로 독일에서는 무차별한 인종차별이 자행됐고, 외모만으로 범죄자를 가려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남다른 외모’가 ‘도덕적·지적 차이’로까지 내몰렸다. 동양의 관상학도 얼굴 생김새에 따른 편견이나 선입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타고난 상도 노력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여유를 둔 것을 빼면 말이다.

2007년 학술지 ‘영국심리저널’에 실린 영국 스텔링대 연구팀의 논문에서도 첫인상으로 평가한 사람의 성격이 그의 실제 성격과 다르다는 결과가 실렸다. 굳이 이 논문이 아니더라도 얼굴 한 번 척 보고 그 사람을 다 알 수 없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생김새를 근거로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기보다 다정한 태도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다. 새해부터는 관상 등을 운운하는 대신 진실한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자세를 가지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