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활용하되 남용하지 말라
‘힘’을 활용하되 남용하지 말라
  • 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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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P사 노동조합은 현재 한 달째 파업 중이다. 노조는 처음에 상급단체에서 제시한 임금인상 요구율 9.6% 인상을 주장하다 지금은 전년도 수준인 5.2%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는 계속된 영업적자로 인해 노조가 임금삭감에 동의해 주지 않으면 공장을 폐쇄하고 중국으로 이전하겠다고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협상에서 ‘힘’(power)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방이 행동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 협상과정에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첫째, 협상에서 나보다 상대방의 힘이 더 강하다고 느낄 때이다. 이 경우 상대의 우위를 약화시키거나 또는 상대방과 대등한 위치에 서기 위한 수단으로 힘을 사용한다. 둘째, 상대보다 힘이 약하지 않지만 계속해서 힘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추가적인 힘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이다.


그런데 협상에서 ‘힘’이란 것은 협상자가 실제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여부가 아니라 상대방이 내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즉, 실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힘과 다른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힘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데, 중요한 것은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데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협상에서 ‘힘’은 협상자 개인의 특성에 귀속된 것이라기보다 그가 속한 집단이나 당시 협상환경과의 관계에서 결정된다. 결국 협상력이라는 것은 개별 협상자들의 협상능력과는 구별되는 협상주체(노동조합, 회사)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힘이나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협상연구자들은 협상에서 힘의 원천으로  합법적인 권위, 보상할 수 있는 능력, 자원에 대한 통제, 정보와 전문성, 조직 내의 지위, BATNA(협상안에 대한 최선의 대안 :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 인적 네트워크(social network) 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특히 노사협상에서 협상력의 우위를 결정하는 요인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협상력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BATNA’이다. 즉, ‘협상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 임금인상 합의에 실패했을 때 다른 대안, 예를 들어 시간단축이나 인력충원, 생산성 향상 등의 카드를 가지고 있다면 협상력은 훨씬 배가될 것이다.


둘째, 정보(information)의 중요성이다. 협상과정에서 정보는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 일반적인 힘의 원천이다. 정보력은 노사가 각자 자기의 주장이나 요구조건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관리하는 데서 생겨나고, 나아가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약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실질적인 정보의 교환은 노사협상에서 합의를 도출해 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상대가 사실을 왜곡해서 알고 있거나 비현실적인 협상목표를 세우고 있는 경우 특히 정보의 공유가 중요해진다.


마지막으로 시간(time)의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노사협상에서 시간의 문제는 특히 사용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노동조합은 1년 내내 협상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시간에 쫓길 이유가 없다. 임·단협 유효기간 내에 협상이 타결되지 않더라도 ‘자동연장조항’에 의해 기존 단협의 효력이 계속 유지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용자는 협상을 효율성의 관점에서 가능한 한 빨리(횟수는 적게, 기간은 짧게) 끝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만큼 상대방은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글머리의 사례에서 결국 임금협상은 5.2% 인상이 아닌 5% 삭감으로 종결되었지만 장기간 파업 등으로 인해 ‘윈-윈 협상’이 되지는 못하였다. 회사는 수년간 적자가 누적된 공장을 폐쇄하고 중국으로 이전할 수 있다는 다른 대안과 이를 근거로 노동조합을 설득할 수 있는 정보 그리고 사측에 유리한 타이밍 등 협상환경에서 노조에 비해 월등히 유리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남용함으로써, 노조로 하여금 장기간 파업을 선택하게 하고 합의에 의한 문제해결이 아닌 강요에 의한 굴복이라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했다.


평상시 힘을 키우고 이를 협상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하라. 그러나 힘을 남용하는 것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노사협상에서 신뢰를 파괴하는 잘못된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