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불통’이 부른 참사
‘자랑스러운 불통’이 부른 참사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4.01.0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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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가 설립 이래 최장기 파업을 끝내고 현장으로 복귀했습니다.하지만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인지도 모릅니다. 아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수서발 KTX 회사에는 면허가 발급됐고,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 역시 여전합니다.
국회에서 국토교통위원회 산하에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를 구성해 중장기적인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논의하기로 한 것을 빼면 달라진 건 없습니다. 오히려 코레일은 파업 참가 조합원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해놓고 있어 조합원들의 현장 복귀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철도노조의 파업 기간 내내 노와 정은 마치 평행선을 달리는 선로처럼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强 대 强’ 대립을 계속했습니다. 철도노조는 수서발 KTX 회사의 설립이 민영화로 가는 첫 걸음이라며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반대로 정부는 철도노조의 파업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명백한 불법파업’이라며 파업을 깨려고만 했습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며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철도노조가 수서발 KTX 회사에 대한 면허 발급을 중단하면 파업을 중단하겠다면서 정부에 대화를 요구했더니, 보란 듯이 면허를 발급해 주고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랍니다.
그러고선 ‘불법파업과의 타협은 없으니’ 무조건 항복하라고만 합니다.

결국 지난해 12월 22일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경찰이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체포영장 달랑 한 장 들고 민주노총 본부에 강제로 ‘난입’한 겁니다. 그것도 수배 중이던 철도노조 지도부가 민주노총 안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을 거라는 ‘추측’만으로 말입니다.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해서 파업을 빨리 끝내게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불러올 여파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었고, 한국노총까지도 정부와의 대화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고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으니, 우리나라 경찰, 크게 한 건 하기는 했습니다.

하긴 청와대 홍보수석부터 “원칙을 방해하고 비난하는 세력과 소통하지 않는 것을 불통이라고 한다면 그건 자랑스러운 불통”이라면서 “그런 저항세력에 굽히지 않는 것이 불통이라면 5년 내내 불통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하는 마당에 경찰은 더 말해 뭣하겠습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명심해야 할 겁니다. 민주주의란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하고, ‘다름’은 ‘틀림’과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독선이 싹트고, 독선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게 될 겁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도 결국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은 무조건 옳으니 어떠한 반대도 용납할 수 없고 대화도 불가능하다’는 독선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는지요?

새해 벽두부터 온 나라의 공기가 무겁기만 합니다.
그래도 새해에는 나와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