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민영화, 착실히 진행 중!
공공부문 민영화, 착실히 진행 중!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01.0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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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물, 필수 공공재에 이윤을 남겨라
다양하게 진화 중인 민영화의 새얼굴
[특집_ ‘규제완화’ 디스토피아] ③ 공공재가 민영화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민영화’의 의미를 찾으면 ‘관에서 운영하던 기업 따위를 민간인이 경영하게 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설명은 매우 협소하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공공부문이 담당하던 기능의 일부를 민간으로 이양하는 민간자본투자나 민간위탁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법과 규제를 완화시켜서 공공부문에 수익성을 기준으로 하는 성과주의 방식이나 영리추구 방식을 도입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을 통틀어 민영화라고 부르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민영화의 이런저런 모습

이러한 다양한 양태의 민영화는 몇 가지 모습이 서로 혼합되어 추진되기도 한다. 우선 사전적 정의대로 정부의 소유권을 민간자본에 넘기는 방식의 민영화를 살펴보자. 주로 정부가 설립하고 소유권을 갖고 있던 공공기관을 주식회사로 전환시키고, 그 주식을 민간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민영화가 진행된다. 이때 기업공개 방식으로 주식을 매각할 수도 있고, 협상이나 경쟁입찰을 통한 직접매각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과거 포항제철과 한국통신이 기업공개 방식으로 민영화됐으며, 한국이동통신과 한국중공업은 직접매각 방식을 통해 민영화됐다.

도로, 항만, 철도, 학교 등 그간에는 정부가 건설해 운영하던 사회기반시설을 민간자본이 도맡는 민간투자사업의 형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수익형 민간투자사업(Build-Transfer-Operate, BTO)이나 임대형 민간투자사업(Build-Transfer-Lease, BTL)이 늘어나고 있다.

BTO의 경우 민간자본이 시설물을 건설하며 완공 후 소유권은 정부나 지자체에 양도한다. 민간자본은 일정 기간 동안 이 시설물의 운영권을 얻어서 사용자들의 이용료, 예를 들면 톨게이트 요금이나 지하철 요금 등을 받아서 수익을 낸다. 전국의 민자고속도로나 서울지하철9호선 등이 예다.

BTL은 BTO 방식과 마찬가지의 과정에서 일정 기간 보장된 관리운영권을 다시 정부나 자치단체에 임차해 약정된 임대료 수익으로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이다. 주로 교육, 문화, 복지시설 등 직접 수익을 올리는 데에는 취약한 공공부문까지 민영화가 확산되면서 활발해지는 사업이다.

쓰레기 수거, 학교 급식, 공공시설물의 청소나 경비, 요금징수 등 공공부문이 담당하던 기능을 민간에 위탁하는 방식도 늘어나고 있다. 또한 영리병원 설립의 추진이나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방식의 민영화도 추진 중이다. 그밖에도 발전 부문이나 민간 천연가스 도입 등에서 시도됐던 것처럼 정부가 독점하던 사업 영역에 민간자본의 참여를 허용하거나 공기업을 쪼개 서로 간에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의 민영화도 진행 중이다.

민영화의 방식뿐만 아니라 추진 과정도 점점 복합적으로 바뀌는 추세다. 대부분의 공공부문이 담당하는 기능이 수익성보다는 사회공공성이 중시되기 때문에 민간자본의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민영화의 폐단이 여론화되면서 정치적 부담을 덜고자 단계적 민영화를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한국전력을 3단계에 걸쳐 민영화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우선 발전부문을 6개 자회사로 나눠서 경쟁시키는 1단계 방안이 진행됐지만, 사회적 반발이 심해지면서 2단계 계획부터는 추진이 중단됐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철도를 4단계로 민영화하는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2004년에는 철도의 시설부문과 운영부문을 분리하였고 2005년에는 철도청을 철도공사로 전환했다. 이후 철도공사의 부채 해소 및 경영개선을 추진하고, 철도 운영에 민간자본을 참여시켜 경쟁을 도모하겠다는 단계적 계획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선 이와 같은 계획의 연장선상에서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에 반발해 불붙은 철도노조의 파업은 22일이라는 사상 최장기간 파업을 기록했다. 이명박 정부는 ‘물 산업 육성 전략’을 지난 2010년 발표하면서 2020년까지 3단계에 걸쳐 상수도 사업을 민영화하고 대형 물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블랙아웃’ 우려되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늦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2011년 9월, 전국적인 정전사태라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올 여름에도 역시 ‘전력대란’이란 단어가 심심치 않게 회자되면서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과 함께 절전 캠페인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전기 소비량이 늘어난 것도 문제겠지만, 지난 정전사태와 더불어 계속되고 있는 전력공급 불안정 문제는 그동안 추진돼 왔던 전력산업 민영화가 주된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발전노조에 따르면 정부의 전력산업 민영화 정책으로 민자 발전회사의 설비용량은 5개 발전 공기업과 비교해 지난 2001년 6.6% 수준에서 2012년 19.3% 수준까지 늘어난다. 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새로 건설 중인 민자 발전설비를 합하면 전체 화력발전 설비용량에서 28.7%를 민간 발전회사가 점유하게 된다. 5개 발전 공기업 설비용량의 40% 수준이다.

그런 가운데 2001년 이전에는 15% 수준을 유지하던 적정 설비예비율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추진되면서 점점 낮아진다. 정전사태가 발생한 2011년에는 4.8%까지 떨어진다. 그야말로 만성적인 전력수급난 시대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비용량뿐만 아니라 공급예비력 부문에선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이미 2007년부터 전력수급 비상단계 수준이다. 2012년에는 공급예비력이 3,985㎿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원자력발전소 한 기만 고장이 나도 바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태다.

문제는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갈수록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민자 발전회사들이 설비 건설을 포기하거나 사업 자체를 접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이다. 2012년 민자 발전회사의 사업 포기로 건설이 중단된 발전설비의 용량은 7,749㎿로 전체 발전설비 용량의 10.2%에 달한다. 설비예비율과 공급예비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원인이다. 또한 정부의 ‘수급계획’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전기의 가격과 관련된 문제도 전력산업 민영화의 추진 이후 끊임없이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은 민간 발전회사들이다. 한전이 각 발전사로부터 구매하는 전기의 가격은 ‘계통한계가격(SMP)’에 의해 결정된다. 같은 시간 대 공급되는 전기 중 발전단가가 가장 높은 발전기에 맞춰진 금액으로 구입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전력수급 비상단계에 이르러 한전이 급히 전력을 구매해야 할 경우 발전단가가 가장 높은 디젤발전기를 가동하기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값싼 유연탄으로 생산한 전기도 디젤의 단가로 가격이 책정되는 것이다. 발전 공기업의 경우, 보정계수를 적용해 이윤이 다시 한전으로 회수되는 제도가 있지만, 민간 발전회사는 차액을 고스란히 이익으로 챙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민자 발전회사는 보유 설비용량의 45.2%를 한전과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해 2021년까지 안정적으로 판로를 확보하고 있다.

전기를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부분에도 몇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전체 전기 사용량의 55.3%를 차지하는 것은 산업용 전기이다. 우리가 흔히 전기요금 하면 떠올리는 주택용 전기는 전체 소비량의 16%에 불과하다.

문제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전기 생산 원가의 90%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대규모 정전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전력을 아끼는 만큼 절전지원금을 주는 제도도 시행 중인데, 2012년 절전지원금으로 기업에 제공된 액수는 4,046억 원에 이른다.

전국전력노조는 과도하게 적용되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완화할 필요가 있고, 지나치게 저렴한 산업용 전기요금은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왜곡된 요금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는 에너지 낭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꾸기 어렵다는 의미다.

한편 전기뿐만 아니라 천연가스 역시 민간자본의 사업 참여의 길을 열어 놓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지난 4월 여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된 도시가스사업법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향후 천연가스 직수입 기업은 수급 안정 및 일정사유 발생 시 직수입자, 해외, 가스도매 사업자에게 판매가 가능해진다. ‘일정사유 발생 시’라는 문구로 인해 실질적으로 에너지기업들이 천연가스 직수입은 물론, 물량의 교환, 판매까지 보장해 주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내용의 법 개정안은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발로 인해 민간기업이 해외에만 재판매할 수 있도록 내용이 수정됐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물 쓰듯’은 이제 옛말

전기나 가스와 마찬가지로 필수 공공재인 물 역시 민영화의 바람을 타고 있다. 물도 역시 상품이고 물 산업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이라는 의미다. 이미 한국에서도 2000년대 들어서 적극적으로 물 민영화에 뛰어들었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수도법 개정을 통해 지자체가 담당하던 상수도 사업을 수자원공사에 위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노무현 정부도 2006년 ‘물 산업 육성방안’을 발표하면서 국가 정책으로 물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는 물 민영화 계획을 종합한 ‘물 산업 육성전략’을 지난 2010년 발표했다. 2020년까지 8개의 세계적인 물 기업을 육성하고 세계 물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였다. 1단계로 2010년부터 2015년까지는 사업자간 경쟁을 유도하고, 2단계로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경쟁 체제를 강화해 간다. 3단계인 2021년 이후에는 M&A를 통해 물 기업을 대형화하면서 해외 진출도 시도하겠다는 내용이다.

박근혜 정부도 물 산업 육성을 내세우고 있다.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등 물 민영화를 추진해 온 정부 부처들은 ‘창조경제형 물 산업 인재육성’, ‘물 전문 펀드 육성’ 등을 연이어 제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방자치단체가 관리, 운영하던 상수도 사업을 수자원공사에 위탁하고 있다. 현재 21개 지자체의 상수도 사업을 수자원공사가 수탁했다. 정부는 공기업인 수자원공사가 사업을 수탁했으므로 물 민영화가 아니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잡음이 발생하고 있는 부분은 분명하다. 지난 2008년 수자원공사와 상수도 위·수탁 계약을 맺은 경기도 양주시의 경우, 비용이 과도하게 반영돼 직영으로 운영했을 때와 비교해서 20년간 2,193억 원의 재정을 더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양주시와 수자원공사 간에 소송 공방으로 이어진 상황이다.

물 산업 민영화가 추진되면 수도요금의 인상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상수도의 생산 원가 대비 요금은 71.6%이다. 나머지 부분은 지자체가 보전하고 있다. 하지만 상수도 사업이 민간위탁 될 경우 기업의 이윤을 위해 생산 원가 이상으로 요금이 대폭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 최초로 상수도가 민간위탁 된 충청남도 논산시의 경우, 실제로 수도요금이 크게 올랐다. 2003년 톤당 709원이었던 수도요금은 이듬해 25% 인상되었고, 2012년에는 추가로 15%가 다시 올랐다.

에너지 산업 부문의 민영화에 포스코, SK, GS,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이 발을 들여 놓고 있다. 이유는 그만큼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 산업 시장의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재벌 대기업들의 입김도 계속되고 있다.

에너지나 물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공공재이다. 교육, 문화, 복지 등을 위한 자원보다 더욱 공공성이 중요시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영역을 민영화하기 위한 논의는 더욱 신중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몇몇 특정 사례를 도입해 우리 현실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대단히 위험하다.

심지어 에너지와 물 산업의 경우엔 이미 민영화의 폐단을 앞서 겪은 국가에서 다시 공공화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와 물 산업 등의 민영화가 성급한 시도가 아니었는지 우려되고 있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