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 말고 이제는 논의 합시다
불통 말고 이제는 논의 합시다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4.02.04 17:09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혹한 탄압, 이해 안 돼
㈜수서발 KTX는 무효
[기획인터뷰] 김재길 전국철도노조 정책실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철도노조의 파업은 23일 만에 일단락됐다. 후폭풍으로 위원장 등 5명이 구속되고 사측이 소송한 가압류와 손해배상 금액도 엄청나다. 철도노조는 이에 굴하지 않고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해 수서발 KTX 주식회사를 철회시키겠다는 각오다. 파업 전후 과정에서 느끼는 철도노조의 고민을 김재길 정책실장을 통해 들었다. 그는 “조합원들이 티는 내지 않아도 많이 울고 힘든 상황”일 거라고 귀띔했다.

앞서 지난달 14일 김명환 위원장 등 간부 13명이 경찰에 자진출석 했고, 그들 중 5명(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 서울지방본부장, 호남지방본부장)이 구속됐다. 이에 철도노조는 이영익 전 철도노조 위원장을 위원장 직무대리로 지명·위촉했다. 그를 만났던 지난 달 18일, 철도노조는 4차 상경집회를 열어 앞으로의 투쟁을 결의했다.

내내 답답했다

철도노조 23일간의 파업을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

“‘불통정부가 이런 거’라는 점을 확인했다. 파업 철회도 노정합의나 노사교섭으로 된 게 아니라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여야 국회가 나선 것 아닌가. 철도노조 파업을 계기로 해서 전 국민적 철도 민영화 반대 여론이 결집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영화가 아니라고 얘기를 한다. 자기 공약과 배치되고 국민의 뜻에 반하기 때문에 민영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영화가 아니라고만 했지 국민적 동의는 전혀 없다. 장기적인 철도 발전계획도 없다.

주식회사 체제면 민영화다. 공사체제도 아니고 직접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주식회사 체제는 언제든지 주주총회나 이사회에서 민간에 팔 수 있게 정관을 수정하면 끝이다. 그래서 야당에서 민영화 못하게 법제화하자고 해도 정부는 반대한다. 민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게 법제화 아니냐.

정부가 ‘민영화 아니다’라고만 하면 어떻게 국민들이 믿느냐. 그래서 불통정부다. 증명해 보이라고 하면 아무 말 않고 입을 닫아 버린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조합원들이 너무나 답답했을 거다. 우리 간부들이 답답했던 것 이상으로 파업에 참가했던 조합원들도 인터넷 검색하며 촉각을 세우고 여론을 지켜봤다. 그 많은 탄압과 불안감 속에서 조합원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교섭 담당이었던 나 또한 너무나 답답함을 느꼈다.”

30일 파업철회 당시, 민주당이 기습적으로 발표하면서 노조의 입장에 혼선이 있었다. 원래 노조가 그렸던 파업철회 발표 시나리오는 어떤 것이었나.

“일단 노사교섭에서 합의를 못 했다. 임금이나 징계 같은 여러 가지 사안들 때문에 합의 후에 발표하려고 했다. 그런데 국회 쪽에서 먼저 입장을 발표해서 노사교섭도 못하고 복귀했다. 아직까지도 교섭 테이블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계속 요구할 거다.”

간부들의 거처를 민주노총, 조계사, 민주당사로 나누었다. 그렇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당에 민영화저지공공특위가 꾸려져 있었고, 제1야당이기 때문에 최은철 사무처장이 가 있었다. 또 우리가 사회적 논의기구와 관련해서 종교 쪽에도 접촉을 해왔다. 사회적 대화를 위해서 종교들이 나서달라고 전부터 요구했다. 조계사가 상징적인 곳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건 누구 아이디어라기보다는 김명환 위원장의 지침을 따른 거다. 야당이나 종교 쪽에 계속 요구를 해 왔었기 때문에 크게 반발 없이 받아줬다고 생각한다.”

▲ 지난달 9~10일 국회 의원회관 제2로비에서 열린 ‘철도파업 23일의 기록’ 사진전 ⓒ 이가람 기자 grlee@laborplus.co.kr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철도노조 간부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이 민주노총에 난입했다. 경찰이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우리도 이해가 안 간다.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줄 알았다. 시늉만 할 줄 알았다. 그 전날부터 경찰이 침탈한다는 소문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민주노총 유리문을 깨고 진입하는 거 보면서 그때부터 실제 상황이라고 느꼈다.

우리의 파업은 합법파업이다. 필수유지업무 인원을 남겨뒀기 때문에 여객은 수송하고 있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도부 일부가 민주노총에 들어가 있었다고 해도 5,500명의 경찰이 투입된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많이 다치기도 했다.

멀리서 소식을 들은 우리 조합원들 입장에선 용납이 안 되는 거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정부가 불통일 수가 있나. 우리가 테러를 감행한 것도 아니고 합법파업 속에서 계속 교섭하자고 했지만 실제 교섭은 2차례밖에 없었다. 밤새 마라톤 교섭을 해도 모자랄 판에 두 번밖에 안 한 것이다. 우리 요구는 논의하자는 거였다. 인간적으로 분노가 앞서고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노동계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며 노동3권을 부정하는 계기였다. 대화로 해결하라고 하는데 대대적인 가압류와 손해배상 들어오고 직위해제 8천 명에 체포영장까지 발부됐다.”

▲ 지난달 9~10일 국회 의원회관 제2로비에서 열린 ‘철도파업 23일의 기록’ 사진전 ⓒ 이가람 기자 grlee@laborplus.co.kr
파업이 끝나고 자진출석을 하기 전까지 간부들이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조합원들이 현장에 조직적으로 복귀했다. 우리의 정당한 수서발 KTX 분할 민영화 반대 요구가 받아들여진 건 아니기 때문에 싸움이 끝나진 않았다. 그런데 징계가 심각하게 내려졌고 탄압도 가해지고 있다.

이걸 뚫고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현장에서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같이할 수 있겠는지를 고민했다. 대단한 조합원들이라고 보지만 워낙 박근혜 정부의 탄압이 가혹할 거라고 예상되니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다.

지난 1월 7일 확대쟁의대책위원회에서 조합원들은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다 같이 어깨를 걸고 가보자고 결의했다. 우리 요구가 정당하니까 굽히지 않는다. 해고를 각오하고 지부장들이 동의해 지도부도 많이 힘을 받았다.”

자진출석 시기는 어떻게 결정됐나.

“지도부가 발이 묶여서 조합원들을 직접 찾아다니지 못한 지 1개월이 넘었다.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또 판사들한테 그냥 맡긴 것도 있다. 경찰과 검찰은 그럴 거라고 봤고, 이제 법원의 판단에 맡긴 거다. 그런데 다섯 명이나 구속되니까 마음이 많이 안 좋다. 위원장이야 상징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 서울지방본부장, 호남지방본부장까지 다섯 명이나 구속영장이 받아들여져 너무 안타깝다.”

상식이 통하는 선순환 구조 돼야

노조 간부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집 밖에서 오랜 시간 있다는 게 힘든 일일 것 같다.

“가족들이 걱정이었다. 가족들은 이제 한발 떨어져 있지만 마음이 느껴지니까 그런 게 어려웠다. 다른 간부들도 다 그렇다고 본다. 간부들이 투사들도 아니고 다 현장에서 일하다가 철도 민영화 때문에 올라온 사람들이다. 집에 가서 가족들 눈빛 보면 느낌이 있을 거다. 거의 집에 못 들어가다시피 하니까 그게 제일 힘든 거 같다.

가족들에게 이해해달라고 사정하는 거밖에 없다. 잠시 집에 들어갔을 때만이라도 가족들에게 잘해줬다. 그런데 이번 투쟁에서는 가족들도 많이 지지해줬다. 자식들이 ‘이기기 전에 집에 돌아오지 마라’면서 응원을 했다.”

사측이 152억 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와 116억 원대 가압류 신청을 했다.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너무 가혹하다. 업무방해를 적용했는데 우리는 업무방해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파업의 ‘적격성’에 따라 업무방해를 판단하는 것인데 우리는 사측에 충분히 예고를 해왔고 필수유지업무 인원도 남겼다. 중노위 조정도 거쳤고 조합원 찬반투표까지 다 했다. 실제로 사측에서 손해난 게 크게 없다. 조합원들이 무노동 무임금으로 파업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파업을 더 오래 했으면 코레일은 흑자가 났을지도 모른다.

가압류와 손해배상을 한꺼번에 하는 거는 노조를 완전히 죽이겠다는 거다. 116억 원이 가압류되면 조합 통장 다 막아서 아무런 사업도 못한다. 일단 변호사들 통해서 우리는 정당하니까 가압류하지 말라고 법원에 계속 요구할 거다.”

우리나라는 합법적 파업이 불가능한 구조에 가까운 것 같다. 지도부들의 구속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을 거다. 이러한 노동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나.

“이미 과거에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각오가 안 되어 있었다면 거짓말이다. 각오는 했지만 체포영장을 대화도 없이 막 때린다든지 가압류에 직위해제 때리고 고소고발을 하는 등 이런 것들을 보면서 언제 이 사회가 상식이 통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요구가 센 요구가 아니다. 국토부가 철도사업법을 다 어기고 있다. 법을 안 어기려면 국회에서라도 논의를 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진행한다. 실제 시행까지 2년 정도 남아있기 때문에 아직 논의할 수 있는 지점이 많이 있다.

현장 조합원들 보기엔 이번 파업 수위가 너무 낮았을 거다. 국민과 언론이 봤을 때 상식적이고 정당하다는 판단이 될 수 있게 하려고 수위를 많이 낮춘 거다. 지난해 4월부터 내내 철도 민영화 저지 파업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다. 임금을 엄청나게 요구한 적도 없다. 직원들이 구속되고 있는데 언론에서 우리가 철밥통이라고 하는 얘길 들으면 참담한 심정이다.

지금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데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논의의 틀을 만들어 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 아닌가. 정부는 계속 불통으로 가고 노조는 파업으로 대응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선순환으로 갈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

남은 임기에도 투쟁은 계속된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노조가 반대했던 자회사는 설립됐고 면허발급까지 됐다. 이를 투쟁으로 무효화시키기에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이후 진행될 사업에서 노조가 최우선으로 삼는 것들은 무엇인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는 50억 짜리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거기에 면허를 급하게 발급하게 했다. 예전 코레일에서 국토부로부터 KTX 면허를 발급 받을 때는 선로를 이미 다 완공한 상태에서 열차 10만㎞ 주행시험까지 했다.

그런데 수서발 KTX 회사는 사옥도 없다. 선로나 열차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50억 알박기 주식회사를 설립해서 외국이나 재벌에 개방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놓은 거다. 운전, 차량, 정비, 신호, 제어, 전산, 이 모든 게 일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기관차 시스템하고 맞물려야 하는 고차원적인 것이다.

무효화시키기 위해 수서발 KTX 주식회사 철회투쟁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시간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거 자체도 문제지만 FTA를 포함 여러 문제가 있어서 무효화 될 수밖에 없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가 가동되면, 조합원들의 이탈이나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는 없나.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이탈이나 혼란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미 조합원들이 수서발 KTX 자회사로 전직거부 선언을 하고 도장도 찍었다. 우리 노동자들이 보기엔 너무나 잘못된 정책을 졸속적으로 밀실에서 이뤄냈기 때문이다. 철도노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조합원들의 의견과 배치되게 행동한 적이 없었다. 우리가 아주 특별한 간부들이 아니어서 그런지 몰라도 항상 현장에 의견을 묻고 보완해서 결정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수서발 KTX 개통 전까지 무조건 막아서 그런 일이 없게 할 것이다. 이번 집행부 임기인 올 연말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15년에 뽑힐 새 집행부의 의지도 우리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