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비행에도 연륜이 필요하다
철새 비행에도 연륜이 필요하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14.02.0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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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자 비행은 에너지 최소화 … 비밀은 상승기류
우두머리 나이 들수록 효율적으로 난다


과학칼럼니스트
최근 전북 고창에서 발생한 조류독감(AI)의 원인이 겨울철새인 가창오리로 밝혀지면서 철새들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매년 전국 유명 철새 도래지를 찾으며 먹이를 주던 행사도 취소됐고 방역당국도 철새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먼 길을 날아와 겨울을 나려던 철새들로서는 난감한 일일 것이다. 이런 안타까운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과학저널 ‘네이처(Nature)’는 지난 1월 17일자 표지로 철새들의 비행 사진을 실었다. 철새들이 장거리 비행에서 어떤 지혜를 발휘하는지 다룬 내용이다.

V자 대형으로 ‘상승기류’ 타고 수월하게 비행한다

석양이 짙은 하늘에 철새들이 날아간다.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늘어서서 V자를 그리며, 한참 동안 대형을 유지한다.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해 철새 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본 기억이 있다. 커다란 V자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신호 같기도 하고, 멀리까지 날아가며 스스로를 응원하는 표식 같기도 했다. 그냥 날갯짓만 해도 힘들어 보이는데 굳이 대형까지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랫동안 연구자들은 철새들이 V자로 비행하는 이유가 에너지 소모에 있다고 생각했다. V자 대형을 이뤘을 때 에너지 소모가 가장 적어진다고 추정했기 때문이다. 비행기도 혼자 비행할 때보다 편대 비행을 할 때 연료 소모가 최대 18% 적다. 펠리컨의 경우도 혼자보다 V자 대형을 이뤄 날 때 심장 박동과 날갯짓 횟수가 11~14% 줄어든다. 하지만 V자 비행이 정확히 어떤 이유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비밀은 지난 1월 17일자 네이처 저널에 실렸다. 영국 왕립수의대 연구진이 실제 실험을 통해 V자 비행을 하면 왜 에너지를 적게 쓸 수 있는지 알아낸 것이다.

스티븐 포르투갈 박사팀은 붉은볼따오기를 이용해 실험했다. 이 새는 황새목 저어새과에 속하는 멸종위기 종인데 아프리카나 중동 등지에서 산다. 중동 시리아에 사는 새의 일부는 겨울에 홍해를 따라 아프리카 북부로 이동한다. 연구진은 오스트리아 빈 근처에서 어린 붉은볼따오기 14마리에게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관성측정장비를 부착했다. 또 이들이 비행하는 모습은 비행기를 타고 동영상으로 촬영해 비행 대형과 위치, 속도, 날갯짓 횟수 등을 기록했다.

관찰 결과, 붉은볼따오기들은 비행하는 약 45분 동안 V자를 만들거나 일렬로 줄지어 날았다. V자 대형을 이룰 때는 앞의 새와 평균 45도 각도, 0.49~1.49m 정도 거리를 뒀다. 날개 끝 부분의 위치는 약 11.5cm씩 겹쳤다. 새들이 날갯짓을 할 때는 날개 양 끝에 위아래 공기 흐름의 차이로 인한 소용돌이가 생겼다. 이 소용돌이는 뒤쪽으로 길게 늘어지면서 바람을 일으켰는데, 이 바람의 방향이 처음에는 아래쪽을 향하다가 중간쯤부터 위로 올라갔다. 그러니까 뒤따르던 새가 위로 오르는 바람을 이용하면 힘을 덜 들이고 비행할 수 있게 된다. ‘최적의 위치’만 찾으면 에너지 소모가 훨씬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연구진에 따르면 붉은볼따오기들은 비행 내내 이런 위치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다. 또 앞서가는 새의 날갯짓 박자에 맞춰 날개를 움직였다. 앞 새의 날갯짓을 따라 아래위로 요동치는 공기 흐름을 타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렬로 서서 비행할 때는 앞뒤 새들이 ‘엇박자’로 날개를 움직였다. 이렇게 하면 앞에서 만든 하강기류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새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V자 모양으로 늘어서서 상승기류를 이용하고, 동료가 어떤 공기의 흐름을 타고 있는지 반응해 날개 방향을 바꾸는 비행전략을 구사한다. 멀리 가는 길을 수월하게 가려고 서로 도와가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늙은 새가 이끌수록 빠른 길 찾는다

철새 이동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한 가지 더 있다. 무리를 이끄는 새가 경험이 많은 나이 든 새일수록 더 빨리 길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새들도 사람처럼 연륜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지난해 8월 30일자 사이언스(Science) 표지를 장식한 이 연구는 미국흰두루미를 관찰한 내용이다. 미국흰두루미 역시 멸종위기에 처한 새인데 미국 메릴랜드대 연구진이 인공부화로 개체 수를 늘리고 계절이 바뀌면 남쪽으로 이동하는 훈련도 시키고 있다. 그런데 비행할 거리가 2,000㎞나 돼 장거리 비행 경험이 없는 새들은 방향을 잃거나 도중에 지쳐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래서 연구진은 경비행기를 이용해 첫 비행을 도와주고 다음부터 스스로 날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새들도 사람처럼 경험이 늘어나면 더 지혜로워질까. 미국 메릴랜드대 토마스 뮐러 박사팀은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흰두루미에게 전파발신기를 달아 2002년부터 8년간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그 결과 철새들도 사람처럼 나이를 먹음에 따라 연륜이 발휘된다는 걸 알아냈다.

1년생으로 이뤄진 무리는 번식지와 월동지를 잇는 직선 경로에서 76.1㎞ 벗어나 들쭉날쭉 비행했다. 하지만 8년생이 있는 무리는 이탈 거리가 46.8㎞로 훨씬 직선 경로에 가깝게 날아갔던 것이다. 또 가장 나이 든 새의 나이가 한 살씩 늘어날수록 이탈 거리도 5.5%씩 줄었고, 7년 만에 정확도도 38% 높아졌다.

결국 철새들도 연륜이 쌓일수록 효율적으로 나는 법을 알고, 또 다양한 나이로 이뤄진 무리라도 연장자의 나이에 따라 비행 능력이 달라진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늙어간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들은 늙어가는 건 서글픈 일이라 하지만, 사실 나이를 먹는 만큼 세상사에 노련해진다. 철새 비행을 관찰한 연구결과들이 힘주어 말하듯 ‘늙어가는 건 지혜로워지는 것’이다. 설날 지나 한 살 더 먹은 만큼 무엇이든 작년보다 나아질 것이다. 나이 듦을 즐길 수 있는 2014년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