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헌을 통해 행복을 나누다
사회공헌을 통해 행복을 나누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4.02.0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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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0원으로 행복을 즐기는 협동조합을 꾸리다
32년간의 직장생활 노하우로 청년의 벗이 되다
[2014 특별기획 ‘정년 후’] Turning, My Life! (2)

노년의 또 다른 좋은 점은 인위적 가식, 연극, 유혹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제 외출하기 전 세 번씩이나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노년의 크나큰 과제다. 겉모습의 연극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이 자리 잡게 되는 때니까. 새로운 삶의 방식은 저절로 자리 잡는다. 처음에 가벼운 충격을 주기만 하면 알아서 조화롭게. 거울 너머 세계에서 우리는 그전까지는 몰랐던 의미를 해독하며 매일 새로운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말은 새로운 색채를 띤다. 하찮은 것은 녹아버린다. 자신의 본질을 찾는 일만 남는다. - 콜레트 메나주, <노년예찬> 가운데서

예순여섯 이광표 씨. 그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와 전자부품연구원에서 32년 간 재직하고, 지난 2008년에 정년퇴직했다. 퇴직 뒤, 곧바로 후배가 운영하는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연구소에서 행정 업무를 주로 맡았는데, 여기서 쌓은 노하우로 후배 회사의 경영에 도움을 주었다.

▲ 이광표 (66)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32년 근무
2008년 정년퇴직
현재 사회공헌단체 ‘행복나누리’ 대표
ⓒ 박현성 기자 hspark@laborplus.co.kr
Tip 1. 등산도 여행도 하루 이틀이다

2008년 정년퇴직을 할 때만 해도 갈 곳이 있었기에 은퇴를 실감하지 않았다. 하지만 3년 뒤에 후배 회사를 그만 두자 위기의식을 느꼈다.

“날마다 밥 먹고 집을 나가다가 어느 날 갈 데가 사라졌어요. 아침에 일어나니까 갈 데가 없어요. 내가 왜 갈 데가 없지? 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까 이게 보통 갑갑한 게 아니더라고요. 조금 지나니 마누라 눈치가 보여요. (아내가 차려준) 하루 세끼 꼬박꼬박 먹잖아요. 그러니까 남한테 환영받을 수 있는 모습이 아니더라고요.”

그때부터 이광표 씨는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등산도 다니고, 친구들과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평소 여행을 좋아했던 이광표 씨지만 주구장창 여행만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광표 씨는 직장에서 오랜 세월 일한 덕에 당장 생계의 어려움은 없었다. 국민연금이 있었고, 아내 명의의 개인연금도 있었다. 여기에 아내가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산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달세가 있으니 생활에 어려움은 없다.

“직장 다니면서 집사람한테 ‘나는 국민연금 받으니까 당신은 개인연금을 들어둬’라고 했어요. 당시에는 개인연금의 이자가 높았으니까. 지금 생활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빼고는 개인연금을 최대한 많이 들라고 했지.”

이광표 씨는 ‘고상하게 늙자’고 결심했다. 하루하루를 보내는 데만 집착하지 말고, 무엇인가 값진 일을 하고 싶었다. 예순이 넘어서 일자리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일자리도 자신의 적성과 맞아야 행복한데, 은퇴한 이가 적성에 맞는 직장을 갖는 건 어려운 실정이다.

이광표 씨는 현재 생계에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건 이제껏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걸 하자. 여태까지 사회에서 혜택을 받았으니까 이제는 내가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시기도 됐잖아요.”

▲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자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행복나누리 회원들 ⓒ 행복나누리
Tip 2. 경험을 소통하고 행복을 나눠라

이광표 씨는 배우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 사회에 봉사를 하기 위해서도 자신의 소양과 능력을 쌓고 가꾸어야 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때 만난 곳이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사회공헌 아카데미’였다.

사회공헌 아카데미에서 자신처럼 퇴직을 한 뒤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의 관심사도 허투루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사회에 자그맣게나마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거였다. 교육을 받는 동안 이들은 ‘만원 클럽’을 만들어 식사나 술자리를 가지며 친목을 도모하며 서로의 인생을 설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직장 일에만 충실했던 이광표 씨의 사회관계는 주로 일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이곳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이들을 만날 수 있어서 더 폭넓은 관계를 만들어 소통할 수 있었다. 교육을 마친 뒤에도 스무 명 남짓이 지속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이광표 씨에게는 좋은 경험이다.

“스무 명 정도 계속 만나죠. 서로 만나서 좋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게 좋아요. 만났을 때 서로 잡담하는 것도 괜찮지만 함께 일을 하면서 어울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사회공헌단체를 만들었죠.”

사회공헌단체 ‘행복나누리’는 이렇게 탄생했다. 처음에는 협동조합을 꾸리려고 했는데, 협동조합을 만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우선 서로 충분히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며 차근차근 협동조합을 준비하려고 임의단체로 출발했다.

이 단체의 첫 사업은 서울 은평구 관내의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장애인들의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를 조사하는 사업이었다. 2013년 12월까지 5개월간 은평구내의 지하철역을 비롯한 관공서의 장애인 시설을 조사하는 한편, 시민들에게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 사업을 통해서 회원들과 더 친밀한 소통을 할 수 있었고, 서로 간의 믿음이 돈독해졌다.

행복나누리는 ‘9,900원으로 행복을 즐기자’는 캐치프레이즈로 2014년 사업 준비에 한창이다. 이는 시니어를 상대로 한 여행 사업으로, 행복나누리 회원들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을 꾸려 진행할 예정이다. 이 일을 통해 특별히 할 일이나 갈 곳을 찾지 못해 집에서 보내는 시니어들을 사회로 나오게 할 계획이다. 이는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찾은 자신들의 행복을 더 많은 시니어들과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 박현성 기자 hspark@laborplus.co.kr

Tip 3. 젊은이의 멘토가 되자

이광표 씨는 정년퇴직 후 교수가 되었다. ‘아름다운 서당’의 봉사 과목 교수다. 아름다운 서당은 취업을 앞둔 이에게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직장 생활에서 필요한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인문학, 경영학, 봉사활동을 지도한다. 이곳 교수들은 사회생활의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다. 학생들이 취업을 하면 힘들지 않게 일터에 적응할 수 있도록 대기업이나 은행에서 은퇴한 이들이 멘토 역할을 한다. 아름다운 서당 학생들은 1주일에 3시간씩 의무적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봉사 과목 교수인 이광표 씨는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제출한 리포트를 보고, 조언을 해준다.

“제가 봉사할 곳도 알선해주고, 제대로 활동을 하는지도 살피는 일을 하죠. 봉사활동을 다녀오면 인터넷 카페에 소감문을 올려요. 그러면 그걸 제가 보고, ‘잘했다 못했다’ 하지 않고, ‘고생했다’ 그래요. ‘이런 부분을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내 의견을 제시하고요. ‘이렇게 해!’ 그러지는 않아요. 여기서 함께 한 이들이 취업도 잘 되고, 직장생활도 잘해요.”

이광표 씨는 자신이 오랜 직장생활에서 체득한 경험을 취업을 준비하는 이에게 아낌없이 나눠준다. 가르치는 교수가 아닌, 인생 선배로, 그리고 든든한 지지목이 되어 아름다운 서당의 ‘훈장’을 하고 있다.

Tip 4. 일어나면 옷부터 단정히 입자

이광표 씨의 건강법은 특별한 게 없다. 정년퇴직을 했다고 집에 갇혀 있지 않고 사회에 나와 어떤 일이든 하는 게 건강법이라고 한다. 사회적 관계를 넓히고, 이를 통해 소통을 멈추지 않는 게 육체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규칙적인 생활도 중요하다. 이광표 씨는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단정히 갖춰 입는다. 갈 곳이 있든 없든 몸가짐부터 정돈을 한다. 아침에는 2종류의 신문을 읽고 아침 식사를 한 뒤에 9시께면 집을 나선다. 서울의 자치단체들에서 진행하는 인문학을 비롯한 여러 교양 강좌를 찾아 듣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날씨가 나쁘지 않는 한 하루 2시간씩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것도 건강의 비법이다. 이광표 씨의 얼굴이 유난히 빛이 나는 까닭도 쉼 없이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가꾸기 때문일 거다.

누군가는 퇴직 뒤에도 단돈 얼마라도 벌기 위해 새벽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광표 씨처럼 사회로부터 이제껏 받은 것을 은퇴 뒤에는 사회에 나누는 일도 해야 한다. ‘나는 은퇴 후 무엇을 사회에 나눌 것인가?’ 정년을 앞둔 이가 한 번쯤 고민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 원창수 서울 인생이모작센터 사무국장 ⓒ 오도엽 기자 dyoh@laborplus.co.kr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센터)는 서울시가 2013년 2월 14일 문을 열었다. 센터는 50대 퇴직자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원창수 센터 사무국장은 말한다.

“학교를 마치고 직장에 취업해서 일하는 기간이 30~35년 정도다.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현역에서 일한 만큼의 시간이 남는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 초중고, 대학교육까지 받는데, 은퇴 후 인생 후반기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

센터는 은퇴자를 위한 재취업, 창업, 교육, 사회공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사업을 진행한다. 원창수 사무국장은 서울시 센터만이 가지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한국사회의 은퇴자들은 산업 사회에서 30년 동안 고도의 노동행위를 요구받았다. 이 동안 개인의 에너지를 고갈 당해 거의 피폐한 상태로 정년을 맞이한다. 은퇴를 하면 기계가 멈춘 것처럼 가족에게도 칭찬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을 위해서는 ‘일’에 앞서 수고했다고 격려해주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센터에서는 인문학을 통해 이들을 위로하고, ‘소년의 감수성’을 다시 일깨우게 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 다음에 구체적인 일이나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센터는 교육의 결과가 공동체로 귀결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교육을 받은 이들이 함께 소통하고, 사업을 꾸려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사업도 센터에서 내용을 채우는 게 아니라 사업에 참여한 이들이 내용을 채우고 집행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한다.

대표적으로 ‘경로당 코디네이터’ 사업이 있다. 센터에서 교육받은 코디네이터들이 서울시에 소재한 경로당에 파견되어 경로당 안의 활동이 알차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경로당 코디네이터 사업의 경우 2명의 코디네이터가 2곳의 경로당을 담당한다. 코디네이터들이 각 구별로 팀을 짜 2주에 한 번씩 자체 모임을 갖고, 한 달에 한 번 전체 코디네이터가 모여 회의를 한다. 여기서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찾고 대안을 만들어 동료들끼리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센터의 교육은 다른 곳에 비해 교육기간이 길고, 내용도 알차다. 한 달 동안 100시간 가까이 교육을 한다. 또한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육생에게 30만 원 가량 활동비도 지급한다.

센터는 이용자들이 함께 모여 협동조합을 비롯한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사무나 소통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원창수 사무국장은 베이비부머 퇴직자들을 ‘크레이티브(creative)’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세대로 봐야 한다고 당부한다.

“퇴직자들을 복지 개념에서 수혜의 대상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새로운 작업이 가능한 세대로 상정하고, 센터 사업을 계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