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의 끝을 잡는 DJ
이 밤의 끝을 잡는 DJ
  • 박현성 기자
  • 승인 2014.02.0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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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곡 센스가 DJ 실력 가른다
시간 많다고? … 겸업 꿈도 못 꿔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금요일 밤 11시 신사동 가로수길은 일과가 끝난 많은 사람의 만남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특히 모르는 사람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이며 흥겨운 분위기에 맞춰 춤도 출 수 있는 곳, 이 모든 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장소인 클럽은 금요일 밤의 열기가 고조되는 곳 중에 하나다. ‘음악’이 필수조건인 클럽에서 분위기를 만드는 일등공신은 음악을 제공하는 ‘디제이(DJ)’다.

최근 음악을 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망 받는 직업인 DJ, 대부분의 사람들이 업무를 끝낸 늦은 시각에 업무를 시작하는 DJ 양지현 씨의 삶을 들여다본다.

연기자에서 DJ로

DJ를 시작한 지 이제 2년이 조금 넘은 양지현 씨는 현재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클럽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첫 직업은 DJ가 아니었다. 그의 꿈은 연기자였다. 연기자를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특기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에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 양지현
음악에 가까워진 지현 씨는 우연히 DJ를 하는 외국인 친구를 알게 됐다. 그 친구와 어울리면서 DJ의 매력에 빠졌고 그 친구를 DJ ‘사부’로 모시게 됐다.

“주변에서 처음에는 다들 ‘저 녀석 DJ를 하다가 금방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음악에 빠지다 보니 너무 즐거운 거예요. 연습하느라고 밤을 새운 것은 부지기수였고요. 그래서 지금 높은 자리는 아니지만, 클럽에서 고정 DJ를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DJ는 Battle DJ, Radio DJ, Producing DJ, Mobile DJ, MIXtape DJ, Club DJ로 나뉜다. 먼저 Battle DJ는 DJ Battle(대회)에 참여하는 DJ를 지칭한다. 김기덕 씨나 이종환 씨 같은 라디오 DJ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는 DJ다.

가수 생활을 하다가 DJ로 전환한 DJ KOO(구준엽)는 음악 제작을 주로 하고 있으니 Producing DJ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DJ KOO가 파티장에 나타나 DJ 장비로 음악을 틀어준다면 Mobile DJ가 된다.

MIXtape DJ는 신곡을 모아 자신의 믹스 테이프(CD)를 만들어 파는 DJ다. 지금 지현 씨처럼 Club DJ는 클럽에서 음악을 틀어주는 일을 주로 한다.

힙합은 DJ로부터 시작됐다?

초창기 DJ들은 음악 중간에 멈추는 부분을 반복해서 틀었다. DJ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사람들이 B-boy라 불렸고, 이들에 의해 브레이크 댄스가 발전했다. 그때 B-boy들이 흥을 돋우려고 내뱉은 한두 마디의 말이 힙합, 랩으로 승화된 것이다. 힙합 역사에 최초의 MC로 기록된 코크 라 록(Coke La Rock)에 의해 힙합이 발전됐다. 이처럼 힙합은 DJ로부터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 선곡이 DJ 센스의 지표


지현 씨의 DJ의 방법(디제잉)이 궁금해졌다.

“DJ가 만지는 장비는 보통 CDJ와 믹서라고 합니다. CDJ는 파이오니아 사에서 붙인 제품명이지만 CD를 이용해 플레이할 수 있는 장비를 모두 지칭하죠. 이 CDJ 2세트와 믹서 1세트가 있어야 디제잉을 할 수 있어요. 가격은 버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새 제품 기준으로 CDJ 2대, 믹서 1대 합해서 250만 원에서 900만 원정도 합니다. 물론 저는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으니 100여만 원 수준의 컨트롤러를 구매해 연습했습니다.”

디제잉은 음악을 끊지 않고 계속 트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음악과 음악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한쪽 CDJ에 A음악을 플레이한다. 그다음 다른 쪽 CDJ에 B음악을 넣고 기다린다. A음악이 어느 정도 나온 뒤 적절한 타이밍에 B음악을 플레이한다. A와 B음악이 동시에 나오고 있을 때 자연스러운 사운드를 잡고 완전히 B음악으로 넘어가게 하는 것이 포인트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아요. 음악의 속도를 같게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하죠. 음악의 속도를 BPM이라 하는데 A음악이 나올 때 B음악을 헤드폰으로 미리 들으면서 BPM을 같게 만들어야 듣는 이에게 자연스러운 음악이 흐릅니다. BPM만 같다고 디제잉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민요와 힙합 음악을 맞춘다면 아무래도 어울리기 쉽지 않겠죠. 그래서 DJ의 센스는 음악 선곡에서 갈려요. 이 선곡 요령을 터득하는 게 사실 어려웠습니다.”

길거리 디제잉으로 자신감 확대

지현 씨의 디제잉에 맞춰 음악에 빠져든 손님들이 하나둘씩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손님 중 몇몇은 일어나 춤을 추며 그 흥에 빠진 듯했다.

ⓒ 양지현
“제가 디제잉하는 순간만큼은 클럽의 모든 손님이 힘든 것을 잊고 즐겁게 보냈으면 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욱 손님들이 제 디제잉에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디제잉을 더 깊이 알아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제 디제잉이 끝나면 다른 클럽에 들려 선배 DJ의 디제잉을 들으며 공부합니다.”

지현 씨는 매주 금·토·일요일마다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틀에 짜인 업무가 아니다 보니 그의 일과는 정해져 있지 않다. 일어나면 그저 밥 먹고 음악 들으며 그 전날 자신이 틀었던 음악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 일상이다.

“DJ를 하다 보니 친해진 손님들이 많아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그 전날 오셨던 단골손님께 제 선곡이 어땠는지 꼭 물어보게 됩니다. 사실 클럽 손님들의 반응이 좋으면 그게 제 보람입니다.”

처음에는 지현 씨가 손님들에게 물으면 겉치레 인사같이 ‘좋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지현 씨 음악이 다른 클럽과 특색이 없는 것 같아요’라는 한 손님의 솔직한 말 한마디에 그는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한국 클럽에서만 음악을 듣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인터넷이 발달해서 외국에서 유행하는 클럽 음악을 금방 알 수는 있지만, 실제 클럽에서 듣는 것과 집에서 앉아서 듣는 것은 차이가 크거든요. 그래서 미국으로 가서 클럽 음악을 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지현 씨는 몇 달 전 미국 뉴욕에 다녀왔다. 클럽 음악의 메카인 뉴욕의 클럽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 그동안 열심히 모았던 적금 통장도 하나 깼다. 아직 DJ로 부족한 점이 많은데 ‘미국 가는 것이 과연 도움 될까?’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옛 속담에 사람은 낳아서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만큼 뉴욕은 DJ 음악의 메카였습니다. 뉴욕에서 유명하다는 웹스터 홀을 가게 됐는데요. 디제이의 선곡을 듣고 있으니 제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동안 제 디제잉을 클럽 손님들이 좋게 봐주셔서 자만한 것도 사실이거든요.”

그러다 지현 씨는 뉴욕 길거리에서 아이패드로 길거리 디제잉을 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길거리 디제잉을 따라 했다. 결과는 뜻밖에 큰 수확으로 돌아왔다. 그 공연으로 그는 수백 달러를 벌었고, 한 번의 공연으로 여행경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한 외국 여성으로부터 파티 DJ를 해줄 수 있느냐는 스카웃 제의도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 때문에 승낙할 수는 없었지만, 무엇보다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은 그에게 큰 수확이었다.

불투명한 미래, 마음속 근심 쌓아

“하지만 불안한 마음도 많아요. 사실 일정하게 월급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연금이나 노후를 위한 돈을 마련하기도 힘들어요. 보수가 큰 것도 아니죠. 과연 한국에서 50~60살까지 DJ를 할 수 있을까요? 지금도 젊은 친구들이 치고 올라오는데 버티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그에게 조심스레 수입에 대해서 물었다. 일주일에 3일씩 하루 2~4시간 공연하고 한 달에 대략 100여만 원 가까이 받는다고 한다. 물론 일주일에 3일 동안 하루 2~4시간 일하고 받는 보수치고는 적지 않다. 하지만 이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과 시간 소모도 많다.

“매번 디제잉을 위해 쏟아야 할 것이 많죠. 유행하는 음악은 어떤 종류인지 그것을 어떻게 손님들에게 들려줄 것인지는 물론이고, 외모에도 신경을 써야 해요. 보수만 따지면 생활하기 빠듯하지만, 밤낮이 바뀌는 생활 탓에 다른 일을 동시에 할 시간이 많지 않아요.”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실제로 많은 DJ가 적은 소득 때문에 겸업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0년에는 홍대 클럽에서 일하던 한 유명 DJ가 생활고에 시달려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많이 받는 국내 최정상 DJ의 소득이 보통 월 300~400만 원 수준입니다. 그런데 외국 유명 DJ가 한국에 공연하러 한 번 오면 출연료 수천만 원은 기본이에요. 이에 대해 DJ 사이에서도 불공평하다고 말은 많아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억울하면 제가 열심히 해서 유명해져야겠죠.”

시종일관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지현 씨의 목소리가 조금은 어두워졌다. DJ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조금 선도 그의 힘을 빠지게 했다.

“하루는 아는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났어요. 저보고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물어서 DJ 한다고 하니까 바로 ‘아. 딴따라’ 하더군요. 그 한마디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한편으로는 ‘보통 사람들의 인식이 이렇구나!’라고 생각하고 참았죠.”

그는 이어 “저도 처음 시작할 때는 DJ가 노는 사람들의 집합인 줄 알았어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남들의 안 좋은 시선도 그러려니 했고요. 그런데 유명 대학이나 의사 출신 DJ도 있더군요. 그래서 생각을 달리하기로 했습니다. DJ는 소위 노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 공통어인 음악을 다루는 자랑스러운 멋진 직업이라고 말이죠”라고 덧붙였다.

DJ 새싹 양성이 꿈

DJ는 음악을 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주목받는 직업이다. 그래서 한 번 해볼까 하는 철없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들에 대한 지현 씨의 생각이 궁금했다.

“나쁘지 않아요. 일단은 해볼까 하는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이잖아요. 시도하려는 용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사실 저도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거든요. 다만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만 듣지 말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으려고 노력하세요. 잊지 마세요. 남들이 노는 시간에 당신은 일해야 해요. 술과 담배를 자제하고 그 돈으로 음악 시디를 한 장 더 구매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는 “제 꿈은 DJ가 있는 커피집 사장님이에요. 조그만 커피숍에 부스를 놓고 음악을 하고 싶은 중·고등학생에게 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는 것이죠. 보통 DJ가 일하는 클럽은 술을 파는 곳이기 때문에 중·고등학생이 법적으로 DJ를 할 수는 없잖아요. DJ를 시작하려는 어린 친구들에게 길을 마련해 주고 싶어요”라고 말을 맺었다.

지현 씨를 만나기 전에는 매우 화려한 연예인 같은 DJ를 상상했다. 하지만 지현 씨는 꿈과 디제잉에 대한 열정으로 힘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나가는 보통의 30대 젊은이였다. 오늘도 음악을 위해 하루를 열어가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