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의 아픔, 노래로 치유하다
노숙인의 아픔, 노래로 치유하다
  • 박현성 기자
  • 승인 2014.02.0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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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자활 위해 ‘채움합창단’ 결성
자장면 한 그릇, 노숙인 맘 잡다
[사람향기]이해숙 서울 꽃동네 사랑의 집 원장

▲ 환한 미소의 이해숙 서울 꽃동네 원장 ⓒ 박현성 기자 hspark@laborplus.co.kr
‘서울역’에는 많은 사람의 발자취가 묻어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학시험을 치르는 학생, 휴가를 나와 집으로 향하는 군인, 멀리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가는 직장인 등 많은 이가 서울역을 지나친다. 하지만 이 서울역을 떠나지 못하고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노숙인이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노숙인은 부정적인 존재다. 겉보기에 사지 멀쩡한 그들이 고성방가에, 악취를 풍기며 길에서 술을 들이켜는 모습은 결코 사랑스럽지 못하다. 그러나 그들을 따뜻이 보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해숙 서울 꽃동네 사랑의 집 원장이다.

화요일 오후, 서울역 코레일 건물 1층 대강당의 문틈으로 노랫소리가 들린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알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구슬픈 노랫소리에 한 맺힌 목소리가 들린다. 2011년 4월 시작해 노숙인으로 구성된 ‘채움합창단’의 연습현장이다. 남루한 행색이지만 그들 목소리에는 맑고 여유가 넘쳐흐른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이해숙 원장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털컥.’ 갑자기 연습실 문이 열렸다. 한 노숙인이 빼꼼히 강당 안을 쳐다본다. 그러자 이해숙 원장은 너무도 반갑게 활짝 웃으며 “아이고 사랑이 엄마. 왜 이렇게 늦었어. 얼마나 기다렸다고” 하며 그에게 다가간다. ‘가족을 만났어도 저렇게 반가웠을까?’ 이해숙 원장은 그 노숙인을 딸이자 동생처럼 대했다.

“자 사랑이 엄마도 왔는데 늦었지만, 우리 한 곡만 더 연습하고 가자. 연습 끝나고 같이 우리 맛있는 밥 먹으러 가야지”라는 이해숙 원장의 말에서 노숙인 한 명이라도 더 챙기고 싶은 마음이 엿보인다.

▲ 언제나 따스한 손길로 노숙인을 어루만지는 이해숙 서울꽃동네 원장 ⓒ 박현성 기자 hspark@laborplus.co.kr
부모에게 물려받은 봉사의 마음

이해숙 원장이 노숙인을 품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궁금해서 질문하니 손사래를 친다. 자신보다 훨씬 더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많은데 왜 자신을 찾아오느냐고. 하지만 간곡한 요청에 결국 입을 열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걸인들에게 밥을 주시는 것을 봤어요. 근데 어머니께서는 절대 대충 주시지 않았어요. 누구보다 맛있게 밥을 하셔서 그들에게 주셨죠. 사실 이게 지금으로 따지면 봉사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라며 해맑게 웃는다. 그녀의 웃음은 아마도 그녀의 부모님에게 물려받았으리라. 작은 체구지만 우렁찬 목소리에는 행복의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 역시 충북 괴산지역에서 유명한 봉사인이었다고 한다. 걸인들에게 밥을 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갈 데 없는 사람을 10년 정도 돌보기도 하고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낼 나병 환자를 보살피기도 했다고.

“그런데 어머니께서 중학교 때 돌아가셨어요. 가세도 기울고 실질적인 어머니 역할을 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뒀죠. 그런데 그 봉사만은 끊을 수 없더라고요.”

이해숙 원장은 당시 농촌청소년봉사단체인 ‘4H 클럽 활동’을 시작으로 새마을운동과 부녀회 총무를 하면서 봉사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해숙 원장은 뒤늦게 검정고시를 보고 25살의 나이에 고등학교 1학년이 됐다. 당시 급우들과 함께 방문했던 대전의 한 영아원에서 아이들을 보며 가슴 한 구석이 미어졌다. 그 순간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봉사활동을 하는 그녀를 만들게 됐다.

▲ 연습하는 채움합창단 ⓒ 박현성 기자 hspark@laborplus.co.kr
합창단, 노숙인에게 힘이 될 거라 확신

왜 많은 봉사 중에서 노숙인에게 초점을 맞추었고 또 합창단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서울 꽃동네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이 ‘가장 가난한 한 사람에게 베풀자’는 거예요. 가장 가난한 사람이 누굴까요? 바로 노숙인이라 생각해요. 이 추운 날 빌어서 밥 한 끼 먹어 보세요. 그리고 길거리에서 자려고 해보세요. 그럼 알게 될 거예요. 그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노숙인에 대해 ‘사지 멀쩡한데 공사판에서라도 일해서 돈을 벌지 왜 빌어먹고 있지?’ 하는 생각에 그저 게으른 사람들이라고만 인식한다. 그래서 이해숙 원장이 노숙인을 돕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노숙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나쁜 사람이면 남의 물건을 탐하겠죠. 대부분 이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직업도 번듯하고 가정도 있고. 그런데 사업이 망하거나 갑자기 많은 빚을 떠안게 된다거나 하는 여러 이유로 길거리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 채움 합창단 첫 공연 모습 ⓒ 꽃동네 사랑의 집
그래서 노숙인에게 밥을 주고 옷을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한 번에 여러 노숙인을 자활시킬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한 것이 바로 ‘채움합창단’이었다. 서로 노래를 하고 노숙인끼리 화합을 하게 되면 개인이 아닌 서로라는 마음을 나누게 되고 그들도 힘과 용기를 가질 거라는 게 이해숙 원장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음악을 가르칠 선생을 찾는 것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노숙인 합창단을 기획하고 1년이 지난 2011년 4월에야 우주호 교수를 알게 됐다. 어렵게 음악을 가르칠 선생을 찾고 나니 이제는 합창단원이 문제였다. 오디션을 본다고 노숙인에게 그렇게 광고를 했는데 막상 오디션에는 단 1명만 왔다.

▲ 채움 합창단 첫 공연 모습 ⓒ 꽃동네 사랑의 집
그녀는 “한 명이라도 하자. 이것이 노숙인 형제들에게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우주호 교수를 설득했다. 그러다 꾀를 내 오디션만 봐도 자장면을 사주고 매주 같이 연습하면 밥을 사주겠다고 하고 나서야 25명이 모였다. 이렇게 2011년 4월 첫 연습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도 연습이 끝나면 합창단원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지난 2011년 10월 9일 서울역 지하도에서 ‘채움합창단’의 첫 공연이 있었다. 공연을 마친 노숙인들은 감정에 북받쳐 모두가 울었다. 공연장은 눈물바다가 됐지만 첫 공연은 서로 유대감이 생긴 계기가 됐다.

“사실 시작할 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가족같이 그저 우리 합창단이 걱정돼요. 어떻게 거주할 곳을 마련하나, 밥은 먹고 다니려나, 이런 걱정만 들어요. 우리와 노숙인 간에 서로 신뢰와 믿음이 생기면 노숙인들도 의지가 생겨서 생활이나 모든 것을 다 잘 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하나의 공동체가 됐어요.”

▲ 노숙인 합창단 단장 윤태용씨는 이렇게 명단을 만들어서 매번 나오지 못하는 노숙인을 챙긴다. ⓒ 박현성 기자 hspark@laborplus.co.kr
그렇게 합창단을 통해서 따스함을 느끼고 자활을 하고 또 길거리 노숙생활을 벗어나는 사람도 많다. 그 중 최정남 씨는 합창단 생활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고 결국 고물상에 취업해 본인이 100만 원을 모아 쪽방을 얻었다. 그는 더 이상 길거리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

서운함도 잠시, 노숙인의 변화가 바로 나의 행복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이해숙 원장은 행복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사람에 언제나 즐거운 일만 있을 수 있을까? 힘든 시기가 있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합창단을 하면서 노숙인에게 도움을 주는 척하기 싫었어요. 정말 진심을 담아서 그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열정을 쏟았죠. 처음 시작할 땐 노숙인이 우리에게 시비를 건 적도 많이 있었어요. 그럴 때 황당하고 힘이 빠지더군요. 다 그들을 위해서 봉사를 하는 건데. 하지만 그들도 경계하는 거죠. 시간이 지나니 우리의 진심을 알고 이해하더라고요.”

이해숙 원장은 작년 2월까지 교사의 신분이었다. 그리고 세 딸의 어머니이자 한 남편의 부인이기도 했다. 교직과 집안일, 봉사를 병행하는 것이 조금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제자가 교사가 되어 자신의 제자를 데리고 봉사를 하러 찾아왔을 때 무한한 보람도 느꼈다.

“왜 노숙인에게 봉사하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내 마음이 뜨거워서 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돈으로는 따질 수 없어요. 그리고 여기 노숙인 형제들이 기뻐하고 변화되는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요. 예전에 한 노숙인에게 치약을 주니 치약을 먹고 돈을 주니 돈을 먹었어요. 정신이 조금 이상해진 거죠.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달려오더니 감을 하나 쥐어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어르신 감이 생기면 또 드릴게요’ 하는 거예요. 이것이 사랑의 힘, 변화라고 생각해요. 처음 봉사를 시작하며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사랑을 베풀면 사람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이 보여요. 그리고 누구보다 내가 제일 많이 변화된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 가족도 변했고요. 축복의 기운에 모두 매여 있는 거 같아요.”

이해숙 원장의 세 딸도 지금은 직장 때문에 바빠서 자주 참여하기는 힘들지만 필요할 때는 달려와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이해숙 원장이 봉사의 삶에 전념할 수 있는 데에는 분명 가족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됐을 게다.

“내 행복은 이 사람들의 변화에요. 그리고 이들에게 봉사하는 우리도 변화되고요. 이 변화를 확산시키는 게 내 임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서울역 노숙인을 중심으로 봉사하고 있지만, 앞으로 이 변화의 행복한 불씨는 꼭 넓히려고 합니다.”

봉사, 지속적 마음가짐이 중요

요즘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많아 도움의 손길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됐다. 하지만 이해숙 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현재 ‘채움합창단’이 속한 서울 꽃동네 사랑의 집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지 않다. 합창단 운영에 들어가는 음식이나 여러 옷가지 등은 이해숙 원장이 알고 있는 지인들과 기업의 도움을 받고 있다. 매주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학생들이 봉사하러 와서 조금씩 재원을 보태주기도 한다. 그래도 노숙인의 자활을 위해 절실한 옷과 가방은 항상 부족하다.

“추운 겨울에는 옷 한 장으로 보온효과를 느끼죠. 그리고 깨끗한 옷은 마음을 밝게 만들어 긍정적 효과를 일으켜요. 여기부터 노숙인 자활이 시작되는 거죠.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방 한 칸 얻어주고 싶어요. 나중에 노숙인들에게 청소든 뭐든 일자리를 주는 이들이 나타났으면 정말 좋겠어요.”

그동안 청소년 자원봉사는 시간 채우기 봉사, 성적 얻기 봉사, 비자발적이고 수동적 봉사라는 지적받아 왔다. 대부분 일회성으로 오는 봉사자들의 경우도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처음 봉사를 시작하는 이들이 학교 학점을 위한 시간 채우기로 오는 경우가 많기는 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잠깐 한다고 해도 진심으로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왔으면 해요. 봉사는 섬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죠. 그리고 봉사를 하면서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마음을 가져주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여느 길에서 볼 수 있는 어머니 같은 이해숙 원장. 그녀는 따스한 미소와 사랑의 마음으로 지금 시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웃, 노숙인을 포근히 안아주고 있었다. 요즘 추위와 한파로 사람들의 마음이 꽁꽁 얼어붙고 있지만, 이해숙 원장이 있는 공간은 여전히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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