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메달이 은메달보다 더 행복하다
동메달이 은메달보다 더 행복하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14.03.0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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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웃음 못 짓는 은메달리스트
행복은 ‘생각의 틀’에 달려있어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올 겨울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과 함께 막을 내렸다. 우리 선수들은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에 비해 아쉬운 성적을 거뒀지만 최선을 다하는 승부만큼은 금메달감이었다. 특히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올림픽 2연패를 거둔 이상화 선수와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 출전한 선수들의 짜릿한 역전 질주는 온 국민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런데 금메달리스트보다 더 마음에 남는 것은 은메달리스트다. ‘쇼트트랙 여자 1500m’에 출전한 심석희 선수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할 때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모른다. 금메달리스트를 축하하는 것만큼 은메달리스트를 위로해야 하는 마땅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기대 부응 못해 죄송합니다”

“은메달을 따고 바로 좋아하지 못한 이유는 아쉬움이 너무 커서였습니다. 경기 시작 전에 관중석을 봤는데 다른 나라 국기보다 태극기가 많이 보였어요.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금메달에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부응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죄송합니다."

은메달을 딴 17세 소녀가 심석희가 마이크 앞에서 울먹거렸다. 세계 2위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기쁨보다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의 소감은 은메달리스트의 심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시상식 순간에도 심석희는 환히 웃지 못했다. 오히려 동메달리스트인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Arianna Fontana)가 더 기쁜 모습이었다.

성적순으로 기쁨이나 행복감을 얻는다면 금메달리스트에 이어 은메달리스트, 동메달리스트 순이 돼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은메달리스트의 표정은 심석희 선수와 비슷하다. 동메달리스트가 은메달리스트보다 밝게 웃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에 맨 처음 주목한 사람은 미국 코넬대 심리학과의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 교수다.

길로비치 교수는 1992년 스페인에서 열린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1위가 결정되는 순간을 촬영한 사진과 시상식을 찍은 모습으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이 사진들을 대학생들에게 보여준 뒤 선수들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점수를 매겨보라고 한 것이다. 점수는 1점부터 10점까지 줄 수 있었다.

그 결과 예상대로 금메달리스트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은메달리스트와 동메달리스트의 행복 점수는 순서가 뒤바뀌었다. 우승하는 순간을 찍은 사진에서 은메달리스트는 4.8점을 받는 데 그쳤지만, 동메달리스트는 7.1점을 받은 것이다. 시상식 장면에서도 은메달리스트는 4.3점으로 동메달리스트(5.7점)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은메달이 동메달보다 더 높은 성과처럼 보이지만 감정은 이와 반대로 드러난 것이다.

ⓒ 국제올림픽위원회
한 발만 더 갔으면 vs 조금만 잘못했으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마쓰모토(David Matsumoto) 교수의 연구결과도 이와 비슷하다. 금메달이나 동메달을 딴 선수들보다 은메달 수상자의 감정이 부정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마쓰모토 교수는 2004년 그리스에서 열린 아테네 올림픽의 유도 경기에 출전한 84명의 표정을 통해 드러난 감정을 연구했다. 경기가 막 끝났을 때와 메달을 받을 때, 시상식에 올랐을 때의 표정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이번에도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웃음을 지었다. 동메달 수상자도 26명 중 18명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은메달리스트 중에 경기가 끝난 뒤에 웃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의 표정에는 슬프거나(43%) 모욕을 느낀(14%) 감정이 실려 있었다. 은메달을 따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은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시상식에서는 은메달을 딴 선수들도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들의 미소는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선수들의 것과 달랐다. 금메달이나 동메달을 딴 선수들은 진심에서 우러나서 짓는 미소인 ‘뒤센 스마일(Duchenne Smile)’을 지었지만 은메달리스트는 거짓 미소를 지었다.

프랑스의 심리학자 기욤 뒤센(Guillaume Duchenne)이 처음 발견한 뒤센 스마일은 눈과 입 주변이 모두 움직여서 만들어지는 진짜 웃음이다. 은메달 수상자들의 미소는 눈 꼬리가 그대로 있는 반면 인위적으로 아랫입술을 눌러 감정을 조절하는 사회적 웃음이었다. 은메달을 딴 선수들이 그만큼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순위로는 동메달보다 은메달이 높지만 행복감은 반대로 나타나는 이유는 ‘비교 프레임’에 있다. 자신이 얻은 것과 얻을 수 있었던 것을 비교하면서 생기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은메달을 딴 사람들은 ‘한 발만 더 나갔으면 금메달인데…….’라는 생각을 하며 금메달리스트와 자신을 비교한다. 하지만 동메달리스트는 ‘조금만 실수했으면 메달을 못 딸 뻔 했다’고 여기게 되므로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생각의 틀, 즉 프레임에 따라 행복감이 달라지는 것이다.

솔직히 동메달보다 은메달을, 이왕이면 금메달을 따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금메달이 돌아갈 수 없는 게 세상 이치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동메달을 따도 은메달리스트보다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건 프레임에 따라 행복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단순 비교로 불행해지지 말고, 되도록 긍정적인 생각의 틀 속에서 세상을 보면 좋겠다. 그만큼 행복의 크기도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