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가압류, 노동자 숨통을 쥐다
손배가압류, 노동자 숨통을 쥐다
  • 박현성 기자
  • 승인 2014.03.06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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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법 개정 주장
경영계, 불법 파업 손해 누가 감수하나
[기획 1] 손배가압류

ⓒ 박현성 기자 hspark@laborplus.co.kr
최근 야구선수 추신수의 연봉이 화제가 됐다. 무려 1억3,000만 달러로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379억 원 정도다. 연봉 3,000만 원인 노동자가 대략 4,600년 동안 쓰지 않고 모아야 할 만큼 큰 금액이다.

민주노총이 지난해 말 집계한 주요 사업장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983억 원에 달한다. 최근 코레일이 철도노조에 청구한 162억 원의 손해배상액과 위자료를 포함하면 1,0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추신수의 연봉과 맞먹는 액수다.

물론 한 개인에게 손해배상 청구 금액을 집행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파업에 참가한 대다수 노동자가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과 국가가 노동자에게 청구하는 손해배상 판결과 이를 집행하기 위한 가압류는 노동자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죽음을 선택한 노동자

지난 2003년 두산중공업의 노동자였던 고 배달호 씨는 몰래 공장 한쪽에서 기름을 몸에 붓고 불을 질렀다. 그는 두 딸과 아내를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두산이해도 너무한다. 해고자 19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 가압류 급여 가압류 노동조합 말살 악랄한 정책에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 사원의 고용은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중략) 두산의 노동조합 말살 정책 분명히 드러나 있다. (중략) 공정해야 할 재판부가 절차를 거쳐 쟁의행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불법이라니 가진 자의 법이 아닌가.” - 고 배달호 씨의 유서

고 배달호 씨는 1981년 두산중공업의 전신이었던 한국중공업에 입사했다. 이후 1985년 설립된 한국중공업노조에서 그는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두산이 한국중공업을 인수하고 난 이후, 공기업에서 사기업이 된 회사는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 배달호 열사 추모사업회
2001년부터 두산은 희망퇴직을 시작하며 노조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2001년 단체협약에서 합의했던 집단교섭에 두산은 이유 없이 불참했고, 이에 노조는 47일 동안 전면 파업으로 사측에 맞섰다.

사측은 대량징계와 고소·고발·가압류 등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파업기간에 집에 있으면 재택근무로 인정해 일당을 주고,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무단결근으로 처리해 불이익을 줬다. 또 조합원들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회유·포섭 작업을 벌였다. 이후 두산은 2002년 6월 노조 간부 13명을 업무방해 및 폭력 혐의로 고소했다.

고 배달호 씨는 이로 인해 2002년 7월 23일 구속됐고 같은 해 9월 17일에 출소했다. 이어 사측에 의해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 당했고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12월 26일 징계기간이 끝나서 현장에 복귀했지만 고 배달호 씨에게 닥친 가압류는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했다. 결국, 그는 유서를 남기고 죽음을 선택했다. 가압류로 인해 남은 그의 월급통장에 찍힌 액수는 2만5천 원이었다.

가압류로 인한 스트레스, 자살 충동 높여

최근 해고 무효 판결로 희망을 얻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4명(가족 포함)의 노동자가 죽어 갔고 자살을 선택한 노동자는 14명(가족 포함)에 이른다. 쌍용자동차지부의 자체 조사에 의하면 손해배상 이후 가압류에 따라 무급휴직자와 정리해고자·징계정직자·희망퇴직자를 포함해 노동자의 절반이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가압류에 대한 압박으로 인한 자살 충동은 해고된 노동자의 경우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이창근 쌍용자동차지부 정책실장은 “이는 가압류로 인한 정신적 압박이 더욱 심화 된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A씨도 가압류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사측과 경찰, 그리고 회사에 보험료를 지급하고 대신 파업 노동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한 보험회사가 낸 손해배상 소송까지 모두 3개의 소송 폭탄을 맞았다. 손해배상 소송에 앞서 집이나 퇴직금 등 재산이 먼저 압류됐다.

ⓒ 박현성 기자 hspark@laborplus.co.kr
“압류를 당하는 상황이니 내 이름으로 통장을 가질 수도 없었어요. 제 명의의 통장을 만들면 족족 돈이 빠져나가니까요. 게다가 실업급여도 받지를 못했어요. 한 번도 빠짐없이 고용보험료를 냈지만,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해고되면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저는 몰랐죠.”

A씨에게 희망은 없었다.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 그는 수면제와 술로 근근이 잠을 청했다. 보다 못한 아내의 염려로 정신과 상담도 수없이 받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지난 2011년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죽으려고 했습니다. 먼저 강원도에 있는 어머니 산소를 찾아갔죠. 인사를 드리고 미리 준비해간 밧줄로 목을 매달려고 했지만, 아내가 제 고향 친구들에게 알려 극단적 선택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너무 괴로워 눈을 감는 게 차라리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목돈 없어 개인 사업 꿈도 못 꿔

한진중공업에서 19년간 근무했던 B씨는 현재 대리운전과 보험영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초기에는 지인과 가족들의 명의로 보험을 팔았지만, 이것도 한순간이었다. 최근에는 팀장에게 실적으로 지적받는다.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그에게 보험영업은 아직도 낯선 업무다. 그는 2012년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를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지난 1월 법원이 한진중공업지회에 59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을 때 대상자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현재 남은 퇴직금 중 대부분인 2,200만 원을 가압류 당할 상황이다.

“지금은 가족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만 지금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갑갑합니다. 퇴직금이 압류될 판이라 함부로 개인 사업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B씨처럼 파업 이후 가압류를 받는 퇴직자는 취업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B씨 역시 퇴직 이후 70여 곳에 이력서를 넣어봤지만, 어느 회사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 이유라고 그는 주장했다.

카드 돌려막기, 전세에서 월세로

무급휴직자였던 쌍용자동차 노동자 C씨도 생계가 매우 심각했다. 무급휴직자가 재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퇴사를 해야만 가능하다. 즉 무급휴직 중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 매우 힘들다는 얘기다. 게다가 무급휴직자는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퇴직금 중간 정산을 해봤지만 이미 손해배상에 따른 가압류로 퇴직금은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용직 일밖에 없었다.

“압류되어 수중에 돈은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만 4번 다녔어요. 제가 17년간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산 아파트였는데 돈이 필요하니 팔고 전세로 가면서 생기는 차익으로 생활하고 또 월세로 가고 이런 식으로 버텼죠.”

돈이 급하다 보니 카드 막기로 급한 돈을 해결하는 사람도 많았다. C씨는 주변의 쌍용자동차 노동자 중 가압류로 피해를 받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카드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중에는 무분별한 카드 돌려막기로 신용불량자가 된 노동자도 더러 있다고 덧붙였다. 3년 전 자살한 한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도 카드빚만 400여만 원 가까이 됐다고 한다.

“아무래도 일용직 위주의 일을 하다 보니 일정한 급여가 들어오지 않죠. 아무리 줄여도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금액은 정해져 있는데 일용직은 일이 없는 날은 돈을 벌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월말에 급하게 현금 서비스를 받고 다른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는 거죠. 이러다 보니 빚이 쌓이는 악순환을 끊을 수가 없어요.”

손배가압류 신종 연좌제로 자리매김

대한민국헌법은 제13조 제3항의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으로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 박현성 기자 hspark@laborplus.co.kr
지난 2010년 오수영 학습지노조 재능지부장 직무대행의 시어머니 집에 재능교육 직원 6명이 법원 집행관과 함께 들이닥쳤다. 그들은 오 씨의 시어머니에게 “우리는 법 집행관이기 때문에 그냥 들어올 수 있다”며 세탁기, 김치냉장고, 장롱 등 오 씨 시어머니의 재산에 빨간 압류 딱지를 붙였다. 재능교육 사측은 2008년 본사 앞에서 노조가 항의농성을 했다는 이유로 노조에 업무방해금지가처분을 신청한 상태였다. 업무방해로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한 사측이 시행한 강제 가압류였다.

이어 사측은 유득규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집행위원장의 자택을 실제로 경매에 넘기기도 했다. 경매로 넘어갔었던 집은 유 씨의 어머니가 유산으로 물려준 것이었고 유 씨의 가족 총 다섯 명이 이곳에서 실제 생활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유 씨의 자택에 대한 경매는 기각됐고, 오 씨 시어머니의 재산도 사측이 경매를 취하했다. 하지만 이것은 손배 이후 가압류가 노동자의 가족도 괴롭힐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항소도 쉽지 않아

현재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는 사내 곳곳에서 가판대를 설치하고 양말과 보온병을 팔고 있다. 이유는 소송비용 마련이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는 지난 2010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주도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를 불법파업으로 간주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노조는 총 116억 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가 이에 대해 항소를 했지만, 소송비용만 해도 법원 인지대 및 송달료 등을 포함해 7,350만 원에 달한다.

박현제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장은 “손배 판결로 조합원들이 대거 탈퇴했다. 한때 1,900명에 달했던 조합원 수가 이제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850명에 불과하다. 조합원이 줄어드니 항소를 위한 소송비용 마련도 매우 빠듯하다”며 “사측이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은 노조의 파업권을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경영계, 가압류는 불법행위 근절 절차

ⓒ 박현성 기자 hspark@laborplus.co.kr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정책실장은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면책을 인정하고 있다”며 “노조법 3조에 따르면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해 발생한 재산적 손해에 대해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법은 정당한 쟁의행위를 임금, 근로시간, 복지 등 근로조건에 대한 것으로 매우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어 합법파업은 정말 어렵다”며 “최소한 노동자가 비폭력 쟁의행위를 한다면 그에 따른 손해에는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영계의 입장은 이와는 정반대다.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민사상 책임원칙이란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자는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며 이는 당연히 노동법에도 적용된다”면서 “정당하지 않은 노동조합의 파업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책임원칙에 따라 당연한 처사”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대로 비폭력 쟁의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법 개정은 무기대등의 원칙(소송심리에 있어서 당사자 쌍방에게 공격·방어방법 체출의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파괴함으로써 노사간 힘의 불균형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이것은 사용자의 인사·경영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경영에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노동조합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형준 본부장은 또, “그와 같은 법 개정은 사용자에게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무조건 감수하라는 것으로 ‘노사 대등교섭질서’ 형성이라는 노조법 취지에도 어긋난다”며 “법 개정이 된다면 무분별한 파업이 일어날 우려도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가압류는 불법행위의 피해자가 불법을 행한 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한 사전절차로서 법의 힘을 빌려 노동자가 불법행위를 못하도록 해 줄 것을 잠정적으로 요구하는 사법적 절차 중의 하나일 뿐”이라며 “노조의 불법파업이 없다면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 자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가압류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둘러싼 노사간의 입장이 이처럼 갈리는 가운데, 지금도 누군가는 손배와 가압류로 인해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