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아버지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4.03.0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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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인정하고 노동자와 소통해야
처음엔 말리던 친구도 삼성·정부 욕해
[기획인터뷰 1] <또 하나의 약속> 실제 모델 황상기 씨

ⓒ 홍진훤
지난 2월 6일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됐다. 실화를 바탕으로, 그것도 현재진행형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처음 제작 단계에서부터 ‘과연 만들 수 있을까?’ ‘만든다 해도 개봉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앞섰던 영화다. 그러나 영화는 ‘크라우드 펀딩’과 개인투자를 통해 결국 완성됐고 개봉됐다. 하지만 이번엔 상영관이 많지 않아 관객들과 만나는 데 애로를 겪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한상구(김철민 분)의 실제 모델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다. 영화 속 한상구가 딸 윤미(박희정 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기업인 진성을 상대로 한 외로운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듯이, 황상기 씨의 삼성과의 싸움도 현재진행형이다.

실제론 영화보다 더 심했다

영화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영화는 잘 만들어졌는데, 보다시피 다 실화다. 중간 중간에 영화 보시는 분들 재밌게 보시라고 섞은 얘기도 있긴 하지만, 전체 내용이 다 진실이다. 그런데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매해놓고 보지도 못한다. 영화 재미있다고 사람들은 오는데, 얼마나 겁이 나면 영화관까지 총동원해 못 보게 하나.”

주변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처음에 나를 말렸던 친구도 영화를 보고나서는 고생 많이 했다고 위로해주더라. 그리고 삼성을 욕하는 사람도 많이 나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려 고생하고 있는데 끝까지 나 몰라라 하고 여태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들 한다. 삼성이 좋은 회사인줄만 알았는데, 이런 회사인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다. 정부는 여태까지 뭐하고 있었느냐면서 정부와 삼성을 질타하는 사람도 여럿이다.”

실제는 어땠나?

“실제로 영화보다는 엄청나게 힘들었다. 투쟁과정에서 삼성 직원들한테, 경비하는 직원들한테 욕도 엄청 얻어먹고, 그 사람들이 밀쳐서 다치기도 하고, 본관으로 들어가서 시위 좀 하려다 덜렁 들려서 바깥으로 내쳐지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시위하는데 버스가 삼각형으로 막아서 다른 사람 못 보게 하고, 듣지도 못하게 하는데, 실제로는 홍보전단을 공장 앞에서 삼성 직원들 보라고 돌리면 경비직원들이 와서 못 보게 그 옆에서 다 뺏어간다. 가판대에 놔두면 기다렸다가 다 빼가기도 한다.

삼성 본관에 앞에 가서 시위 좀 하려 하면, 버스로 차와 차 사이에 틈이 없이, 종이 한 장 안 들어가게 막는다. 어떤 때는 인도에 막기도 해서 보행자가 통행도 못하게 만든다. 기자들이 와서 사진을 찍어도 건물 안 찍히게 하려고 그렇게 하는 거다.

인도에다 차를 그렇게 대면 구속시킬 수 있는 법까지 있는데도 경찰들은 그렇게 안 한다. 차도에다 주차위반 차를 쫙 세워놔도 경찰들은 거기에 대한 한마디 제재도 안 한다. 정부에서 항상 편들어주기를 너무 노골적으로 하니까, 삼성 다니다가 병에 걸려서 피해를 입은 피해자 가족들, 지칠 대로 지친 약한 사람들을 매몰차게 내쫓을 때는 아주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억울하다.”

덮는다고 덮일 문제 아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맞서 싸우면서 어떤 생각이었나?

“유미는 2인1조로 기계 한 대에서 일을 했었는데, 반도체를 화공 약품에다 담갔다 뺐다 하는 작업이다. 유미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 중 한 명도 유미하고 똑같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

유미가 백혈병 치료하는 병실에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다니는 다른 사람들도 백혈병에 걸려서 치료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 이건 아무래도 산재 같아서 삼성에 산재신청을 해 달라니까 개인적인 질병이고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하더라.

확신이 안 서기도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산업재해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또 산재 신청하면 반도체공장에는 화학물질 같은 게 아예 없다고 얘기하고, 취급도 안 한다 얘기하니까 아닌 것도 같고. 그러다가 시간이 상당히 지났다.


그렇게 골수이식수술을 해서 회복기에 있었던 2006년 10월에, 회사 사람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유미 휴직 기간이 다 됐으니 사표를 써야 한다는 거다. 그러면서 회사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하라고 하기에 산재 신청을 해 달라 했더니, 관계자가 ‘아버님 이 큰 회사 상대로 해서 이길 수가 있습니까?’ 하더라. 못 이긴다고 하니까, 다른 걸 요구하란다. 그래서 병원비 치료비와 쓴 경비 합해서 한 8천만 원 들어간 것 같은데, 휴직기간 동안 한 3천만 원쯤 들어왔으니, 차액 5천만 원을 달라고 했더니 해준다고 했다. 이렇게 사표를 받아가면서 차액을 준다 하고 갔다.

며칠 있다 열이 펄펄 나서 병원에 가서 열을 내리고 있는데, 11월 중순쯤 되니 사표를 받아 간 사람이 병원에 와서 1층 로비로 내려오라고 전화하더라. 내려가니 5백만 원을 가지고 와서 돈이 이것밖에 없으니 이걸로 해결하자 했다. 나한테 돈이 충분하게 있었으면 그 돈 안 받고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는데, 그 돈이라도 안 받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치료비는 없고, 당장 애는 재발해서 다 죽어 가는데 울며 겨자 먹기로 받고, 화만 내다 말았다.

회사는 지금까지 내가 화를 내면 유미는 이미 사표를 쓰고 자기 회사 사람도 아닌데 왜 그러냐면서, 유미가 다 죽어 가는데도 병이 어떠냐는 위로의 말 한마디 한 적이 없다. 어떻게든 협박해서 나를 떼어 내려고만 했다. 나중에는 심지어 나한테 욕도 했다. 그렇게 욕하고 싸우다보면, 대화가 전혀 안 된다. 그게 계속 반복됐다.”

여전히 삼성의 벽이 높다.

“삼성에서 병 걸린 사람이 200명 가까이 있는데 환자 하나에 직원 서너 명씩 붙여서 병원 가는 것도 자기들이 다 한다. 반올림하고 접촉 못하게 하려고. 어떤 경우에도 반올림에 신고 못하게 하고, 자기네가 치료도 다 해준다. 처음에는 병 걸리면 그냥 내쫓았는데.

이렇게 감춘다고 시간만 끈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덮는다고 덮어질 일도 절대로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 걸리고 다쳤으니 지금이라도 제대로 치료해주고, 보상도 해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병 걸리게 했으니 공식적으로 잘못했다는 사과도 해야 한다. 시설이 노후화 됐거나 환기가 잘 안 됐거나 문제가 있어서 병이 발생한 거다. 그러니 병에 안 걸릴 수 있게 안전한 작업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재발 방지도 해야 하고. 여태껏 잘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처벌 없이는 개선이 안 되니 처벌도 해야 한다.

지금까지 환자가 나온 게 끝이 아니다. 반도체공장에서는 앞으로도 환자가 나올 거다. 앞으로 나올 환자에 대해서도 대비책을 충분히 세워야 한다. 삼성전자에는 노동조합이 없어서 여태까지 모든 것을 회사 마음대로 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불거졌고, 문제가 생겨도 노동자는 회사에 말 한 마디도 못하고 있다. 통로가 없고 소통이 안 되니까. 지금이라도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노동자와 대화해야 한다. 작업장에서 어떻게 해야 안전한지 작업 현장에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안다. 노동자와 소통하고 대화해서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

잘못한 삼성한테 오히려 특혜 준다

그동안 힘든 과정이 많았을 텐데, 지금까지 싸워온 원동력은?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다 안 된다고 했고, 어딜 가도 말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다못해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도 다 말렸다.

하지만 나는 너무 억울해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기른 딸이, 그 예쁜 딸이 회사에서 일을 하다 백혈병에 걸렸는데, 혼자만이 아니라 같이 일한 다른 사람도 걸렸는데, 대기업의 압력으로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가만히 있다면 아버지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아무리 회사에서 압력을 넣어도 딸이 병에 걸린 원인을 알아봐야 했다. 그 작업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삼성에서는 내가 싸우지 못하게 돈으로 입막음하려고 했는데, 그 돈을 내가 받았다면 나는 좋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병에 걸려서 치료하고, 가족이 해체되고, 사망한 그 수많은 사람들을 삼성에서 책임 안 지겠다는 뜻이다. 앞에 나오는 사람만 입막음하려는 거다.

나는 그런 것을 참을 수 없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모른 척 할 수 없다. 병의 원인을 완전히 밝혀내고, 거기서 발생한 환자들도 산재보상법에 의해서 충분한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산재를 고집하고 있다.”

ⓒ 홍진훤
법원에서 산재 인정을 받았을 때 느낌은?

“다섯 명을 행정소송을 했었는데, 2011년 6월 23일 행정법원으로부터 두 명만 승소 판결을 받았다.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둘뿐만이 아니라 반올림에 신고 들어온 200여 명이 모두 화학약품이나 전리방사선에 노출된 거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서를 6차까지 냈다. 그들도 근로복지공단에서 불인정하면 행정소송을 할 거다. 한 사업장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암이 발생했는데, 회사에서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2011년 7월 15일자로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했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삼성 입맛에 맞게끔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한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서 일하는 기관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거다.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 일하는 기관이 어떻게 노동자를 죽이기 위한 항소를 할 수 있나. 스스로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기관인지, 삼성을 위해서 일하는 기관인지 본분을 망각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의 권리나 안전을 위해 우리 사회가 변화돼야 할 게 있다면?

“노동자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한 세상을 살아가는 당당한 주체다.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비하해선 안 된다. 정부와 기업은 노동조합을 나쁘게 몰아세워서 회사에 대들지 못하게 노동자의 힘을 뺏고 억누르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건 잘못됐다. 노동자도 노동조합도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주체이고 협력해야 할 주체인데, 노동자를 나쁘게 본다면 나쁜 사람하고 왜 협력하나. 어느 사업장이든 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같이 일하고 있지 않은가. 노동자가 나쁜 사람이라면 왜 같이 일을 하나. 말 자체가 잘못됐다. 노동조합을 나쁘게 비하하고 나쁘게 평가하는 건 너무나 잘못됐다.

오히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도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노동자와 노동조합, 노동조합과 사업주 간에 충분한 소통을 하면서 좋은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회사 만든다면서 노동자를 탄압하고 억압하면 좋은 세상, 좋은 회사는 될 수 없다. 어느 회사든 어느 사업장이든 노동자, 노동조합과 소통하면서 좋은 사업장, 사회적인 사업장, 더 미래로 나가는 사업장이 만들어져야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 평등한 나라가 될 수 있다.

삼성이 많은 환자들에게 잘못하고 있지만, 정부는 삼성에 오히려 상을 주고 있다. 산재보험료를 아주 많이 깎아주고 있는 거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암환자가 이렇게 많이 나왔는데,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인정을 해줬다면, 사고가 많은 사업장이라고 해서 산재보험료가 상당히 높아졌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삼성 반도체공장이 안전한 사업장이라고 해서 1년에 200억 원 남짓한 보험료를 깎아준다. 산재보험료만 깎아주는 것이 아니고, 안전한 사업장이라고 해서 안전 점검도 안 한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특혜다. 삼성에 특혜 그만 주고 정상적으로 점검을 해야 하고, 산재보험료도 깎아줘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