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성급했다”…노조, “불가피한 상황 속 최선의 선택”
[기획인터뷰 2] 김병욱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경남은행지부 위원장
역대 정권에서 번번이 실패한 우리금융 민영화는 2013년 6월, 자회사 분리매각 방침 발표 이후 급물살을 탔다. 그로부터 반년 뒤인 2013년 12월 31일, BS금융지주가 경남은행 우선협상대상자로, JB금융지주가 광주은행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올해 1월 21일에는 경남은행노조와 BS금융지주가, 2월 19일에는 광주은행노조와 JB금융지주가 각각 ‘상생 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인수 반대 투쟁, 실사 거부, 그리고 협상에 이르기까지 긴박했던 선택의 기로에서 지방은행 노동조합과 위원장들의 고민이 묻어났다.
초미의 관심, 지방은행 민영화
정부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를 위해 일괄매각 방침을 고집한 것이 우리금융 민영화 실패의 주원인으로 지목된 가운데, 지방은행 우선 매각은 정부의 자세 변화를 상징하는 한편 우리금융 민영화의 성패를 가늠하는 시발점이 됐다.
지금, 우리금융 민영화는 역대 정권을 통틀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지방은행 매각을 놓고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경남은행과 광주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지역자본으로의 환원을 요구하는 해당 지역의 요구와, BS·DGB·JB 등 지역에 거점을 둔 지방은행 금융지주회사 간의 치열한 물밑경쟁이 맞물렸다. 신한금융지주, 중소기업은행까지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지난 1월 21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경남은행지부가 BS금융지주와 맺은 ‘지역 금융발전을 위한 상생 협약’은 ▲ 투 뱅크 체제 유지 등 자율 경영권 보장 ▲ 완전고용 보장 ▲ 임금 및 복지 향상 ▲ 지주사명 변경 ▲ 자본증자 지원 ▲ 경남은행이 자체 개발 중인 차세대 전산 시스템 사용 ▲ 신규인력 채용 시 경남·울산 지역 대학생 90% 이상 채용 ▲ 가칭 ‘경남은행발전협의회’ 구성 ▲ 매각 후속절차에 적극 협조 등 9개 항목에 달한다.
이 협약은 경남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인위적 구조조정을 차단하는 등의 커다란 성과를 얻었다. 노조의 요구안이 거의 다 수용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경남은행지부와 BS금융이 협약을 맺은 것을 두고 ‘성급했다’, ‘지역민의 염원을 무시했다’는 지역 여론도 있다. 김병욱 경남은행지부 위원장은 “비판은 예상됐지만 빠르게 협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던 불가피한 배경이 있었다”고 말했다.
경남은행지부는 지난 2월 6일 창립 40주년을 맞이했다. 김병욱 위원장 인터뷰는 2월 7일에 진행됐다.
이어온 투쟁, 다가온 현실
민영화로 복잡한 올해 마침 노동조합 설립 40주년을 맞이했는데.
“마침 어제가 노조 창립 40년 되는 날이었다. 가슴이 미어지지만 워낙 지역 여론이 안 좋다보니 내부적으로 40주년 행사를 케이크도 없이 조용히 치렀다.”
경남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노조의 투쟁 방향은 무엇이었나?
“이전 집행부가 지역환원 민영화를 위해 투쟁해 왔고, 우리도 이를 완수하기 위해 더 강한 투쟁을 이어왔다. 그런데 막상 제안서가 접수되고 뚜껑을 열 때쯤 되니 우리가 생각도 못한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조특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무산되면 우리금융지주는 지방은행을 매각할 경우 약 6,500억 원에 이르는 세금을 내야 해 매각을 철회할 계획이었다. 그럴 경우 경남은행은 결국 우리금융 소속으로 남아, 우리은행이 매각될 때 자회사로 같이 매각되는 등 또 다시 대형 시중은행에 속하게 될 형편이었다.
우선협상대상자인 BS금융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현실도 다가왔다. BS금융과 협상할 때는 경남지역의 은행인 경남은행의 마크만큼은 지켜야 하고, 경남은행-부산은행의 투 뱅크 체제를 관철시켜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동안 다른 은행이 경남은행을 인수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나?
“물론 처음에는 거부했다. 나도 영업점에서 업무를 했었는데 기업은행이나 부산은행과는 영업구역이 중복돼 항상 부딪혔다. 부산은행을 경쟁자로 생각해왔기 때문에 BS금융에 대한 거부감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우려했던 건 다른 은행으로 인수 합병될 경우 발생할 구조조정이다. 그런 점에서 만약 다른 금융지주에 인수된다면 BS금융보다 중복되는 영업구역이 적은 DGB금융지주로 인수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번 협약을 통해 BS금융과 경남은행-부산은행 투 뱅크 체제를 유지하고, 점포 및 직원 구조조정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노동조합과 은행이 비록 지역환원 민영화라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가더라도, 노동조합은 지역환원 민영화가 어려울 경우와 그 이후의 선택에 대해서도 시나리오를 가지고 대비해야 했다. BS금융과 싸워 이기면 경남은행이 지역에 돌아올 것이라고 믿어왔지만 인수금액의 차이 등 모든 상황이 BS금융에 유리했다. 그때부터 BS금융으로의 인수도 닥쳐올 수 있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협상은 타이밍이다
지역상공인 컨소시엄과 함께 지역환원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제안서를 열어보니 협상 대상자로 BS금융이 1순위, 기업은행이 2순위, 경남산업컨소시엄이 3순위였다. 그러나 경남산업컨소시엄은 산업자본이냐 아니냐를 두고 인수자격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 때문에 우리가 투쟁으로 BS금융을 무너뜨려도 결국 2순위인 기업은행으로 인수될 구도였다.
만약 조특법 개정이 무산되면 우리은행은 경남은행 매각을 철회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조특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최고가를 적어낸 BS금융으로의 인수가 확실시됐다. 이런 상황에서 BS금융과 협상을 한다면 언제가 가장 적기인가, 그리고 우리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때가 언제인가 따져봤을 때 결국 조특법 개정 여부가 결정되기 전이었다.
그리고 투쟁을 통해 얻어 낼 게 없다면, 적기에 협상을 해서 얻어낼 것은 확실히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투 뱅크 체제 유지, 구조조정 금지 등 이 두 가지를 가장 큰 쟁점으로 삼았다.”
BS금융과의 상생 협약을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서로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나?
“경남은행-부산은행이 만약 하나의 은행으로 합병된다면 즉, 원 뱅크 체제로 간다면 양 은행 간 전산 통합이 먼저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BS금융과의 합의에서는 투 뱅크 체제를 확실히 하기 위해 독자적인 전산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경남은행은 이전부터 많은 비용을 투자해 차세대 전산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었다. BS금융 측에선 고민 끝에 ‘우리는 합병할 마음이 없다’며 경남은행이 독자적인 전산 시스템을 쓰는 데 동의하더라.
이 밖에 자본증자 지원, 지역과 경남은행 발전을 위한 ‘경남은행발전위원회’ 구성 등 많은 부분을 합의했다. 아울러 경남은행에는 경남은행 출신 인사를 은행장으로 선임할 것을 요구했다. 경남은행의 순수한 조직문화를 되찾고 싶었다. 그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노동조합이 견제와 상생의 건강한 노사관계를 이어간다면 은행도 더 발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BS금융과의 합의 이후 조합원들의 반응은 어땠나?
“조합원들도 합의 결과엔 만족하는 편이다. 다만 합의 과정이 너무 빨랐다는 의견은 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합의를 통해 최선의 결과를 얻어 내는 데 시간이 촉박한 만큼 빠르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보니…. 도민들도 지역환원 민영화에 도움을 주신만큼, 도민들과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합의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지역 사회의 여론 악화를 감수하고 BS금융과 빠르게 합의한 이유가 궁금하다.
“물론 협상하면서 인수추진위원회 등 각계각층과 충분히 논의했다면 좋았을 거다. 그런데 빨리 논의를 시작해야만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얻어 낼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기에, 일단은 나중에 두들겨 맞더라도 얻어 낼 것은 우선 얻어내자는 심정으로 강행했다.
솔직히 설명하자면, 논의해야 할 곳이 너무 많아 자칫 협상이 어그러질 우려가 있었다. 도지사님, 도의회 의장님, 인수추진위원회, 범대위…. 사실 도지사님이나 이런 분들께는 (구체적인 협상 내용은 알리지 않았지만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큰 가닥은 말씀을 드렸다.”
협약 이행 꾸준히 검증 할 것
BS금융의 인수에 의한 민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민영화를 통해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투 뱅크 체제로 자율적인 경영을 보장받게 됐다. 그간 우리금융그룹 소속으로, 정부의 통제를 받다보니 지역에 더 많은 사회공헌을 하고 싶고 더 많은 지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더 활발한 사회공헌, 지역에 대한 지원도 가능하지 싶다.
만약 사모펀드를 대주주로 민영화 했다면, 결국은 또 3년이나 5년쯤 지나 인수대금을 회수하고 수익을 내기 위한 매각 시도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리 파는 게 맞니, 저리 파는 게 맞니 이런 투쟁과 논쟁을 또 해야 한다. ‘검은머리 론스타’가 현실화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은 쓴물 단물 다 빼 먹히고 나면, 직원들만 또 미래를 위해 힘들게 투쟁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을 거다.
앞으로 경남은행은 경남은행대로 부산은행은 부산은행대로 지역의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지원해준다면 시중은행처럼 덩치가 크지는 않더라도 내실이 알찬 지방은행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지역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BS금융과 꾸준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공식적인 협상 자리를 많이 만들 것이다. 상생 협약 내용이 잘 이행되는지 꾸준히 검증해 나갈 것이고,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부산은행지부와 연대해 대응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노동조합은 권력집단 아니냐’는 말이 있다. 난 그건 아니라고 본다. 노조 위원장은 공적인 자리에서는 위원장이지만, 현장에서 조합원을 만날 때는 똑같은 동지다. 위원장이라고 어깨에 힘주고 그러면 안 된다. 간부들에게도 강조하지만 현장 중심의 노동조합이 돼야 하고, 소통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그냥 앉아서 직원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접 찾아가서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해 주는 게 노동조합이 할 일이다. 그러면서 무게중심은 현장에 두되 경영진이 경영을 잘하는지 잘못 하는지, 항시 견제할 수 있도록 경영진 쪽에도 귀를 열어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