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가 필수유지 사업장? 위헌소송도 불사한다
정유사가 필수유지 사업장? 위헌소송도 불사한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03.0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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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행동권 제약으로 노조 활동 크게 위축
온건·강성 떠나 조합원은 당당한 집행부 원해
[인터뷰 1] 배상철 SK이노베이션노조 위원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투쟁 일변도의 집행부가 되지 않을까 오해도 많습니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노동조합, 그리고 무엇보다 조합원들이 원하는 것은 사용자와 대등하게 자존심을 지키는 노동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SK이노베이션노조 18대 사무국장, 19대 부위원장을 맡았던 배상철 위원장이 21대 집행부 3년 임기를 이끌어가게 되었다. 배 위원장은 자신에게 따라 붙는 ‘강성’ 꼬리표를 과거 집행부 시절 비친 모습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세월이 흐른 만큼 외부의 환경도 바뀌었고, 조합원들 역시 바뀌었다.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배 위원장이 임기를 시작하며 고민하는 지점이다. 노동조합의 위상을 높이고,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한 복안에 대해 들어봤다.

조합원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거대 자본들이 그렇듯 SK 역시 사용자가 종속적인 노조를 원한다. 그간의 집행부가 사용자 종속적인 성향을 보여 왔고, 여기에 실망한 조합원들이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이력이라든지, 과거 18대, 19대 집행부의 일원으로서 보였던 모습 때문이다. 당시에는 노조의 투쟁력이 높았다. 단체행동도 많이 했다.

물론 조합원들의 전체적인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과거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보다 안정성을 추구하게 됐다. 집회에 모이고 그러면 상급자에게 찍히고 조합원들은 불편해지는 거다. 집행부가 알아서 회사와 상생의 관계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경향이 있다. 단 거기에는 조건이 있는데, 종속적인 관계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대등한 입장에서 회사와 협력적인 관계를 만들어 달라는 의미다.

내가 내걸었던 핵심 공약이 솔깃할만한 것이라든지, 이런 것과는 거리가 있다. 공약으로만 당선될 수 있다면, 아름답기만 하고 실현할 수 없는 공약을 잔뜩 내걸면 되지 않겠나? 이와 같은 부분에 대해선 이미 조합원들도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과연 그 공약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이 우선이다.”

조합원들이 판단하길 사용자 종속적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구체적으로 뭐가 있나?

“노조가 조합원들의 요구사항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노사가 함께 손잡고 진행하는 사회공헌 활동이라든지, 이런 모습은 다 좋다는 거다. 조합원들이 온건한 성향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노동조합의 모양새로 보기엔 무리였던 점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필수유지업무와 관련된 협약이다. 사업장 내 필수유지업무 비중을 100%로 높였다. 노동 3권 중에 사실상 단체행동권이 없어진 거다. 다른 하나는 호봉제와 관련된 내용을 변경했던 부분이다. SK이노베이션은 18대 집행부 시절인 지난 2002년부터 호봉제 형태의 임금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매년 4호봉씩 올라가는 체계인데, 평가를 통해서 성과가 부진한 직원은 승급이 누락되는 제도였다. 회사가 제도를 악용해 특정인을 누락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조에 승급 누락자를 통보하고 문제가 될 경우 사실조사를 실시하도록 돼 있었다. 그리고 4호봉 중 2호봉만 승급이 누락되며, 당해년도가 지나면 다시 이를 회복시켜주는 제도였다. 업무가 부진한 이들은 동기들에 비해서 1년 동안 2호봉 분만큼 적게 받는 불이익을 보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노동조합 역시 평가 체계로서 인정을 하겠다는 의미다. 이 부분도 바뀐 것이다.

호봉제와 관련된 내용은 18대 집행부가 특별히 더 능력이 있어서 따냈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80% 이상 조합원들이 임단투 출정 집회를 연다든지, 단결력을 보여주면서 얻어냈던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낸 체계를 너무 쉽게 노조가 포기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과 함께, 앞으로 임기 동안 노조가 주력할 사업은?

“필수유지업무 비중이 100%로 묶여 있는데다가 일방중재가 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활동 폭이 매우 제한돼 있다.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게 없다. 기껏해야 위원장이 머리를 깎고 ‘쇼’하는 것 밖에 안 된다. 노사가 신뢰를 쌓아가지 않는 이상, 사용자에게서 임금이든 복리후생이든 투쟁을 통해서 쟁취해 오겠다는 약속이 어려운 것이다.

올해 노조가 주력할 사업은 필수유지업무와 관련한 내용을 위헌소송을 해서라도 바꿔내겠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이미 4개 정유사 노조에서 함께 논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공론화가 가능할 거라고 본다.

아주 근본적인 문제부터 손을 대는 것 이외에, 노사협의회 수준에 지나지 않는 노동조합의 운신 폭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과연 정유사가 파업을 한다고 해서 국민들의 생활에 지대한 침해를 미치게 될까? 학자들이나 전문가들도 과연 정유사가 필수유지업무 사업장에 포함돼야 하는지에 대해 고무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가능할 거라고 본다. 그리고 가능하도록 만들어내야 한다. 22대, 23대, 노동조합의 미래를 고민한다고 하면 이 부분을 바꿔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