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성과주의…사실상 상시 퇴출 프로그램
겉으론 성과주의…사실상 상시 퇴출 프로그램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4.03.06 15:07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존권 보장·근로조건 개선, 풀어가야 할 과제
회사가 시간 끌기 말고 합리적 결정 내려야
[인터뷰 5] 이남현 사무금융노조 대신증권지부 지부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지난 1월 27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대신증권지부가 출범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나 또 하나의 노조가 설립됐다. 두 노조의 출범 사이에 설날 연휴가 끼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곧바로 뒤따라 생긴 셈이다. 지난 57년간 ‘무노조경영’을 자랑하던 대신증권에 왜 노조가 생겼을까? 이남현 사무금융노조 대신증권지부 지부장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노조를 결성한 이유는?

“작년 8월부터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창업자가 있을 때는 직원들의 복지나 임금이 업계 최고 수준이었고, HTS 선도기업으로 혁신을 추구하던 기업이었다. 그런데 2대 오너에 와선 동업자 정신이 퇴색되고, 회사가 성과주의를 표방하지만 직원들한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문화 때문에 직원 전체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런 현상을 타개하고, 직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하자는 취지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됐다.”

과거 무노조 사업장이었을 때는 노사관계가 어땠나?

“대신증권 직원들이 굉장히 성실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묵묵하게, 좀 불합리해도 참아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성과주의 문화나 이런 것들이 새롭게 도입됨으로 인해서 과거에 헌신했던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증권 업황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데, 회사는 동업자 정신으로 같이 헤쳐 가는 게 아니라 성과주의 문화를 앞세우고 있어 인간의 존엄성이 많이 훼손이 됐다.

성과주의라는 게 잘하는 사람한테 많이 주고 못하는 사람한테 덜 주는 개념이 아니라, 못하는 사람을 항시 퇴출시키는 프로그램이다. 파이는 동일한데 못하는 사람 몫을 잘하는 사람에게 준다면 잘하는 사람도 큰 혜택을 볼 수 없는 구조다.

지난달 27일에 전 직원들한테 노조가 설립되었음을 고지했다. 단 삼 일 만에 거의 삼백 명에 가까운 직원들이 가입했고, 지금은 그 배 이상 가입했다. 이는 내부적으로 사람들이 많은 상처를 입고 있고 비합리적인 요소가 조직에 있어서 굉장히 곪아왔다는 걸 반증한다. 그게 터지는 것이다. 단시일에 그 정도의 인원이 모였다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가슴 졸이고 눈물을 머금고 살아왔는지, 억눌려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거다. 그만큼 회사 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불안해한다는 얘기다.”

바로 뒤따라서 복수노조가 생겼다.

“우리가 노조 설립을 공표한 게 1월 27일 월요일이었다. 그런데 설날 연휴 바로 다음 월요일, 2월 3일에 복수노조가 만들어졌다고 통보하더라. 굉장히 급하게 만들어진 거다. 직원들 다수가 새 노조의 설립 동기와 설립 시기에 대해 굉장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이 시기에 왜 이 노조가 만들어졌고, 그들이 표방하는 것들이 뭔지 의구심이 많다.”

복수노조와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가려 하나?

“지금까지 두 번을 만났다. 만나서 직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선 뭉쳐야 한다고 얘기했고, 더불어 같이 상생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서로의 취지가 같다면 결단을 내려달라고 얘기했다. 우리가 수도 많고, 거의 대부분이 영업점 직원과 본사 직원이기 때문에, 직원의 이익을 가장 합리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노조는 우리라고 설명했다.

두 노조는 큰 틀에서 합쳐지는 게 맞다. 합치는 게 아니라 우리 쪽으로 오는 게 맞다. 근로조건 개선 같은 취지는 대동소이하다. 우리는 우수한 인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타사에 비해 굉장히 낮은 급여 수준을 대신증권과 비슷한 규모의 회사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에 비해 다른 노조 쪽에서는 급여를 올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고용안정을 바라고 있다.”

앞으로 노조가 해결하려는 최우선의 과제는?

“가장 큰 것은 생존권 보장이고 그 다음이 근로조건 개선이다. 생존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전략적 성과 관리체계 폐지와 모든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근로조건의 개선이 과제다. 기본급의 정상화, 복잡하게 얽혀있는 승진 체계의 정상화, 이런 잘못되고 왜곡돼 있는 체계를 정상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 조합원들과 직원들이 계속해서 의견을 주고 있다.

우리가 그런 것들을 취합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복수노조의 출현으로 진행해야 할 것들에 대해 상당히 방해를 받고 있다.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회사는 법 절차에 따라서 진행하겠다고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해서도 노조끼리 해결할 문제라면서 보고만 있는데 사실 굉장히 시일이 오래 걸린다. 결국 이건 시간을 끌면서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협상 테이블에조차 앉지 않겠다는 의도다.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인사를 나누고, 회사와 직원, 고객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협상 테이블에 앉기까지 지금의 과정이 너무 힘들다. 만약 회사가 상식적인 선에서 합리적인 선택과 결정을 하지 않는다면, 시간을 끌거나 누구 하나 쓰러질 때까지 가겠다고 하면 굉장히 골치 아픈 문제가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