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발견하는 살사댄스
나를 발견하는 살사댄스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4.03.0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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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은 물론 대인관계도 넓어져
한 번 빠지면 못 벗어난다
[일 . 탈_ 나만의 힐링을 공개한다] ③ 살사댄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당신을 표현해 보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당신은 이 물음에 망설이지 않고 답변할 수 있는가. 여기 그 질문에 충실하게 답할 수 있는 살사댄스인들이 있다. 이들은 살사댄스를 취미로 한다는 것을 제외하곤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춤추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져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근처에 자리한 어느 빌딩 지하에 가면 살사댄스의 세계가 펼쳐진다. 살사댄스라고 하면 남미의 정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 널리 추는 살사댄스는 남미 본토의 것이 아니라 미국 뉴욕에서 온 살사댄스(On2)”라고 유나 엘살사 댄스학원장은 말했다. 취재를 갔던 일요일은 엘살사 댄스학원 수강생들의 ‘정모’가 열린 날이었다.

정모에 앞서 초급반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살사댄스 새내기인 초급반 수강생들은 기본적인 스텝부터 익히고 있었다. 남녀가 파트너를 이뤄 춤을 추는 수준까진 아직 오르지 못한 것이다. 수강생들이 강사의 구령에 맞춰 발을 이동시킨다. 다리가 맘대로 움직이지 않아 스텝이 꼬이는 수강생도 여럿 보인다. 웃으면서 다시 자세를 잡는다.

정모가 시작되고 초급반부터 3년차가 수강생들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유나 원장의 지휘 아래 살사댄스가 시작된다. 초급반 수강생들은 주로 뒤편에 서서 따라했다. 살사댄스가 제법 몸에 익은 수강생들은 조금 더 세련되게 자유자재로 춤을 췄다. 원장은 수강생들에게 현란한 조명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화려한 불빛으로 살사댄스의 세계에 더욱 몰입하기 좋은 여건을 제공했다.

정모는 수업 외에 연습을 하면서 실력을 더욱 향상시키는 효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수강생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기회가 된다. 보통의 직장인들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새롭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 엘살사 댄스학원 수강생들은 정모를 통해 취미활동과 인간관계까지 얻어간다. 서로 동작을 알려주고 맞춰보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유나 원장의 주도로 본격적인 살사댄스 타임 시작!

자리를 정해주진 않았지만 초급반 수강생들은 주로 뒤편에 서서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살사댄스를 추는 여성들은 진한 화장에 장신구가 달리고 튀는 색상의 의상을 입었을 줄 알았다. 남성들은 정장 스타일을 입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가 평상복 차림으로 학원에 들어와 신발만 댄스화로 갈아 신었다. 신발만 보고는 살사댄스를 추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느린 음악으로 시작해 수강생들의 몸이 풀리자 점차 속도감이 있는 음악으로 발전해갔다. 중간에 쉬는 것, 위치 선정하는 것 모두 자유롭게 진행된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파트너·음악 있어 더 즐거운 살사댄스

사내 CS강사로 일하는 노수진 씨는 수강생들 중에서도 비교적 주도적으로 춤을 춘다. 사전에 준비운동도 한다.

“30대에 접어들 당시 20대를 돌아보며 변변한 취미도 없이 살았다는 생각에 살사댄스를 시작했어요. 대학 시절 선배언니가 살사댄스를 한다고 들은 것도 한 몫 했어요. 올해로 살사댄스를 시작한지 3년차인데 살사댄스 대회에 나간 경험도 있어요.”

노 씨는 엘살사 댄스학원 수강생들 중 베테랑에 속한다. 올해 정모를 이끌어갈 운영진도 맡게 됐다. 수강생과 학원 강사 분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신을 표현할 할 수 있는 기회가 돼요. 춤을 추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니까 자신감이 생겨요. 또 건강도 좋아져요. 배에 힘을 주니 뱃살이 빠지고 자세가 교정되면서 몸매가 좋아지는 효과도 있어요.”

살사댄스를 시작한지 1년 정도 된 쥬얼리 디자이너 서승주 씨도 자기표현에 대해 비중을 두어 얘기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표현을 할 기회가 없어요. 살사댄스를 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표현하게 되면서 욕구가 충족이 되고 에너지가 생겨요. 그러다 보니 일도 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살사댄스를 3분 동안의 짧은 연애라고 해요. 연애를 하면 자기표현이 자유로워지잖아요. ‘기쁘다, 행복하다, 슬프다, 아름답다.’ 3분 동안 파트너랑 마치 연애를 하듯이 그런 표현들을 하는 거예요. 파트너와 호흡이 잘 맞아서 친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서 씨는 업무에 장시간 집중하거나 외국 기업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을 때 피로를 느낀다고 한다.

“힘들고 지친 상태지만 춤을 추면 피곤함이 풀리고 튼튼해져요. 그런데 수업 끝나고 뒤풀이를 해서 살이 빠지진 않아요(웃음). 사람들하고 어울리기도 하고 살사댄스 실력을 쌓아가는 게 좋아요. 처음에는 살사댄스가 어렵고 힘든데요, 하다 보면 도파민이 분출되어서인지 중독이 되고 트램펄린을 타는 것처럼 흥분이 되어요. 트램펄린을 혼자 타도 재밌지만 누구랑 같이 타면 더 높게 뛸 수 있잖아요. 그거처럼 살사댄스 역시 파트너와 음악이 있어서 효과가 더 커지는 거 같아요.”

과거 영국에 살았던 서승주 씨는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의 댄스 종목을 포함한 운동 대항전들을 보면서 여럿이 활기찬 운동을 하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살사댄스를 접하게 된 것이다.

“남자만 리드를 하고 움직이는 것 같지만 여자도 정해진 박자 안에 많은 동작을 해내야 해요. 여자가 남자의 리드에 따라가면서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야 살사댄스가 가능해요. 이것을 하다보면 인간관계에도 도움이 많이 돼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방에게 의존만 하면 안 되듯이 살사댄스도 마찬가지에요. 남녀가 함께 호흡하고 움직여야지 한쪽에 의해서만 따르려고 하면 안 돼요. 이끄는 리더십과 따라가는 리더십 모두를 기르는 데에 도움이 돼요.”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살사댄스 추는 날만 기다린다

대형 매장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는 양동혁 씨는 알고 보면 댄스 마니아다. 살사댄스는 초급반 수강생이지만 이미 어린 시절부터 힙합, 재즈, 팝핀 등을 경험한 ‘춤 좀 춰본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초급반 수강생들 중에서도 앞쪽에 서서 제법 동작을 곧잘 따라한다. 양 씨는 영업사원들이라면 겪는 고객의 컴플레인, 영업 압박들을 살사댄스로 한방에 날리고 있었다.

“원래부터 춤을 좋아하기 때문에 살사댄스의 재미를 알아요. 살사댄스를 배우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정신적으로 케어가 되죠. 사회에 나오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쉽지 않은데 여기선 가능한 부분이라 좋아요.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합니다.”

유나 원장도 14년 전에는 다른 수강생들과 마찬가지로 취미삼아 살사댄스를 배우는 직장인이었다. 그러다 살사댄스가 주는 매력에 빠져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살사댄스 강사로 전향했다.

“수강생의 대부분이 20~40대 직장인이에요. 직장인들이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를 퇴근 후에 해소할 길이 별로 없잖아요. 수강생들이 일주일에 한번 살사댄스 추는 날을 기다리다 보면 한 주가 굉장히 빨리 갈 정도라고 말해요.”

취재가 끝나갈 즈음, 수강생들과 원장은 기자에게도 살사댄스를 해보라고 추천한다. 살사댄스로 인해 찾은 행복을 모르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다. 뒤돌아 나오는 기자의 뒤에 한 마디를 더 보탠다.

“아마 한 번 빠지면 못 헤어 나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