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로 각인된 사모펀드 트라우마
‘론스타’로 각인된 사모펀드 트라우마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03.0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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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고배당, 투기성 유상감자 등 부정 사례 넘쳐
‘먹튀자본’의 오명을 만들어갔던 사모펀드
[특집] 사모펀드 10년

ⓒ 참여와혁신 포토DB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빈사 상태에 빠진 국내 기업들을 향해 외국계 사모펀드의 손길이 뻗쳤다. ‘벌쳐(vulture)’, ‘하게타카(ハゲタカ)’, 하이에나, 청소부 역할을 하는 동물들의 이름이 별명으로 붙은 사모펀드들의 모습은 집요했다.

론스타 사태, 사모펀드의 악사례

2003년 PEF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지분 51%를 매입하며 경영권을 인수했다. 이후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재매각하기까지 10년 동안 ‘론스타’라는 이름은 사모펀드의 대명사처럼 부정적 이미지를 굳혔다. 재매각을 통해 최대한의 수익을 올린다는 PEF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론스타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론스타-외환은행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크게 세 가지다. 매매차익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일방적인 재매각 추진, 지속적인 고액 배당,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은행 인수 자격논란 등이 그것이다.

시간 순서대로 살펴보자면, 애초에 론스타 펀드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있었냐는 문제부터 짚을 수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부실이 은행으로 전가돼 있는 상태에서 많은 은행들이 어려움을 겪었으며, 상당수는 문을 닫거나 타 은행과 합병됐고, 일부 은행에는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론스타는 국내 진출 이후 건설과 부동산 분야 투자로 재미를 보고 있었는데, 서울은행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존재했고, 당시 정부는 은행의 대형화를 염두에 두고 있던 터라 론스타의 은행 인수 첫 시도는 무산됐다. 미국과는 달리 PEF에 대한 규제가 심한 상황에서 공적자금 투입으로 인해 정부지분이 커져버린 은행들의 인수가 어렵다는 점을 파악한 론스타는 목표를 외환은행으로 돌린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갖게 된 내막은 의혹투성이다. ‘사모펀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던 금융당국이 점차 입장을 바꾸게 되는 과정도 미심쩍다. 은행법 상 동일인은 은행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는 게 금지돼 있다. 다만 금융당국의 승인을 거쳐 그 한도를 초과해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 외국인의 경우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자본이어야만 은행 지분을 인수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와 같은 규제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는 특례를 론스타에게 준다. 부실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인정될 경우 ‘예외승인’이 가능하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외환은행이 부실기관인지 가늠하는 것 또한 금융당국의 손아귀에 있었다. 요컨대 맘만 먹으면 확대 적용할 수 있는 ‘만능열쇠’ 같은 조항이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론스타가 금융자본이냐 산업자본이냐를 놓고 금융당국은 여전히 애매한 변명을 되풀이하고 있다.

‘사기 전부터 되팔 것을 염두에 둔다’는 PEF의 생리처럼, 론스타 역시 외환은행 인수 후 1년 남짓한 즈음부터 재매각 추진에 들어간다. KB금융지주, 싱가포르 DBS은행, HSBC 등에 매각을 시도하다 최종적으로 하나금융지주에게 판다. 은행의 이미지나 영업력, 경쟁력, 장기 발전과는 무관하게 단시간 내 차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금융노조 외환은행지부는 “사실상 2005년부터 외환은행은 ‘언젠가 팔릴 은행’이란 낙인으로 영업력과 평판은 지속적으로 훼손돼 왔다”며 “론스타는 재매각 대상과 방법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외환은행 장기 발전을 위한 임직원의 요구나 금융산업의 안정과 발전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말한다. 1조3,800억 원에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하나금융지주에 3조9천억 원에 되판다. 이미 블록세일로 일부 지분을 팔아 1조1,900억 원에 배당 소득으로 챙긴 1조7천억 원을 합치면, 4조6,600억 원 이상을 차익으로 남긴 셈이다.

향후 추이 가늠하는 ING생명

비교적 최근 PEF의 행보 중 눈길을 끌었던 것은 MBK파트너스의 ING생명보험 인수이다. MBK는 1조8,395억 원에 ING생명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MBK는 보험회사인 ING생명뿐만 아니라 한미캐피탈, 생활가전 업체 코웨이, 종합유선방송사 씨앤앰, 아웃도어 업체 네파 등 국내와 일본, 중국의 21개 기업을 인수했다.

MBK는 최대 5년간 ING 브랜드를 사용하고 ING그룹은 향후 1년간 자문과 기술적인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ING생명은 앞으로 MBK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독립·독자적인 기업체로 경영되며 인위적 구조조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ING생명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된 까닭은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본사인 ING 금융그룹의 경영위기 때문이었다. 공적자금을 수혈 받으면서 그 조건으로 한국 법인의 지분을 2016년까지 매각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매각설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노동조합은 이에 맞섰다. 구조조정이 수반될 것이 분명한 매각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배제돼 있었다. 144일 동안 파업을 지속하기도 했다. 장기 파업 이후 채 분위기를 추스르기도 전에, 이번에는 또 다시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노조는 다시금 투쟁 분위기로 전열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ING생명은 이번에 MBK가 인수하기 이전에도 한 차례 매각 시도가 있었다. KB금융지주가 2조2천억 원대에서 ING생명을 인수하겠다는 의사가 있었지만, 당시 KB금융지주 이사회는 이를 부결시켰다. 다시 재매각을 공고했고 한화생명, 교보생명, 동양생명·보고펀드 컨소시엄, MBK파트너스 등이 입찰에 참여했다. 가장 높은 인수가격을 제출한 동양생명·보고펀드 컨소시엄이 우선협상권을 갖고 있었으나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기고, 차순위 협상자였던 MBK파트너스에게 기회가 돌아온다.

전국사무금융노조연맹 ING생명지부는 이에 반발했다. 외환은행에서 악명을 떨친 론스타의 이야기도 회자됐다. 지부는 “국산 펀드라지만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막대한 배당을 빼돌리고, 되파는 과정에서 엄청난 차익을 누린 론스타와 다를 것 없는 투기자본”이라고 주장했다.

단기간 고수익 창출을 위해 보험시장의 상황과 장기적 비전을 갖고 경영을 하기 보다는 인수자금 회수에 주력할 것이 분명하며, 몇 년 안에 매각 상황을 다시 맞을 수밖에 없고, 그 와중에 조합원들의 구조조정이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의미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금융권의 고객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된 우려도 제기됐다. 2013년 6월 말 기준으로 ING생명이 보유한 보험 계약 건수는 189만4,923건이다. 사망이나 질병 등 고객 정보에 대한 전문적이며 ‘도덕적 관리’가 요구되지만, 사모펀드의 본래 속성은 차치하더라도 보험업에 일천한 점은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간의 과정이 어떻든 ING생명은 새로운 체제를 맞았다. 노동조합은 사측과 ING생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경영에 충실할 것과 향후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체결했다. 이명호 지부장은 “새 대표이사가 출근한 지 한 달이고 새로 바뀐 분위기 속에서 아직 구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나긴 이른 시기”라며 “그간에 노조에서 문제제기를 해 왔던 부분에 대해서 경계를 계속하면서 곧바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업을 ‘탈탈 터는’ 기법들

사모펀드 트라우마는 ‘론스타’ 혼자 각인한 게 아니다. 칼라일, 소버린, 뉴브릿지캐피탈 등 외국계 사모펀드는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진출해 차익을 내고 떠났다. ‘먹고 튄다’는 뜻의 속어로 먹튀자본이란 악명이 붙을 만하다.

재벌 그룹 역시 마음 놓을 상황은 아니었다. 2004년 미국계 사모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주식회사의 지분 8.6%를 확보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서 경영참여를 선언했다. 당시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이 0.72%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내부적으론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소버린은 이미 1년여 전부터 SK글로벌 분식회계 등의 이슈로 SK그룹이 흔들릴 때마다 값이 내려간 SK(주) 주식을 매입해 왔다. 또한 1,768억 원을 들여 추가로 지분 14.99%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후 차기 주주총회에서 최 회장의 사퇴가 가결되지 않으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은 2005년까지 주식 25만3,648주를 사들이면서 경영권 방어에 나섰다. 소버린이 주식을 매입할 무렵의 SK 주가는 12,000원 수준이었지만, 이는 대단히 저평가된 가격이며 장부상 가치는 50,000원을 호가한다는 이야기도 나돌 즈음이다. 소버린의 창과 최태원의 방패가 맞붙는 동안 주가는 점점 제 위치를 찾아 올라갔다.

2년여에 걸친 이들 분쟁은 주주총회에서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고, 소버린이 투자 목적을 경영참여에서 단순투자로 변경하면서 마무리됐다. 이후 소버린은 보유한 SK(주)의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1,768억 원을 투자해 2년 뒤 8,000억 원이 넘는 양도차익을 챙겨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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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선사했던 사모펀드들은 고수익 기법으로 매각 차익만을 바라보는 게 아니다. 주주들에게 보상금을 주고 주식을 매입해 줄여버리는, 유상감자 역시 투기자본 속성의 사모펀드들에 의해서 자행됐다. BIH, 론스타, UBS컨소시엄 등의 사모펀드들에 의해서 브릿지증권, 극동건설, 위니아만도 등의 기업은 탈탈 털렸다.

영국계 리젠트퍼시픽 그룹이 아시아지역 투자를 위해 설립한 사모펀드인 BIH는 IMF 직후인 1998년부터 2000년 사이, 대유증권, 경수종금, 해동화재, 일은증권 등을 인수한다. BIH는 대유증권의 이름을 리젠트증권으로 바꾸고, 1999년 5월에는 리젠트증권의 이익잉여금 70%에 달하는 고율 배당으로 인수 1년 만에 투자액의 50%를 회수하기도 한다. 그해 말에는 계열사들로부터 불법적으로 조성한 자금으로 리젠트증권의 주가를 조작하는 이른바 ‘진승현 게이트’로 형사처벌을 받는 등 타격을 입는다.

이로 인한 대규모 손실과 부실화로 리젠트종금, 리젠트화재는 시장에서 퇴출됐고, 리젠트증권과 일은증권은 합병돼 브릿지증권으로 변경된다. 현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모태다. BIH는 투자손실을 메우기 위해 하나 남은 자회사인 브릿지증권의 자금을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쥐어짠다.

2002년 1월 당시 브릿지증권은 자기자본 4,500억 원, 자산 6,500억 원 규모의 중견 증권사였다. 직원 수는 800여 명에, 점포 수는 42개였다. 2005년 10월 BIH가 국내에서 철수할 당시 브릿지증권은 5차례의 유상감자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자기자본은 740억 원, 자산 1,600억 원, 직원 수 130명, 점포 수 9개로 축소됐다. 딱 3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2004년 유상감자의 경우를 보자. 소액주주의 지분을 자사주 매입 형태로 사들여, 이익을 독식할 대주주의 지분율을 50% 대에서 86%까지 끌어올렸다. 또 유상감자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본사 사옥을 공시 가격보다 낮은 값에 긴급 매각하기도 했다.

부동산을 매각해 대규모 현금을 확보한 후 대주주의 지분을 늘리는 한편, 1,6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무상증자로 독식할 파이를 키우기도 했다. 이와 같은 행보에 언론과 노동조합은 유상감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공시를 통해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한 달 만에 대규모 유상감자를 전격 단행하는 기만책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사모펀드의 이런 기법들에 익숙하지 않았던 국내에서는 두 눈 멀쩡히 뜨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