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10년 아성 무너뜨리고 우승한 현대캐피탈 배구단 김호철 감독
삼성화재 10년 아성 무너뜨리고 우승한 현대캐피탈 배구단 김호철 감독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6.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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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2인자가 1등을 따라잡는 일곱 가지 비법

“왜 이겨야 하는지부터 생각하라”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2006년 4월 2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을 가득 메운 6500명의 관중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2005~2006 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 마지막 5차전에서 현대캐피탈이 삼성화재의 10년 ‘무적 신화’를 무너뜨리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날, 10년을 기다려온 팬들도, 만년 2인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던 선수들도 끝내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진한 눈물을 쏟은 주인공은 ‘코트의 카리스마’ 김호철(51) 감독이었다.


김호철 감독은 선수 시절 ‘컴퓨터 세터’로 명성을 날렸고, 이탈리아 무대에 진출해 최우수 용병, MVP 등 최고의 자리를 휩쓸었다. 그리고 지도자로서도 성공해 프로팀 감독과 이탈리아 청소년대표팀 감독까지 지냈다. 그런 그가 ‘삼성화재 천하’인 국내로 복귀해 3년 만에 팀을 정상에 올려놓은 것이다.


지난 2003년 현대캐피탈 배구단은 이탈리아에 있던 김호철 감독에게 SOS를 쳤다. 김세진, 신진식은 물론 유망주를 싹쓸이하면서 무적함대를 구축한 삼성화재에 맞서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백약이 무효’였기 때문이다.


김 감독으로서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이탈리아 프로 배구 선수인 딸과 골프 대표선수인 아들 때문에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을 모두 남겨두고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신의’를 선택했다.


“87년 이탈리아에 진출할 당시, 고려증권이라는 호적수가 있는 상태에서 팀이 3연패를 노리고 있었다. 그 때 이탈리아로 떠나면서 ‘힘들 때 현대가 나를 필요로 하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조했다. 결정이 어려울 때 팀에서 나를 믿고 놔 줬다. 나는 여전히 ‘현대맨’이었고, 결국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배구를 통해 부와 명예를 얻었는데 배구인생의 마지막은 한국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위기의 현대’를 맡았다.

 

지는 것이 습관이 된 선수들
하지만 돌아와서 본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예전 현대배구단만 생각하고 왔는데, 딱 와서 보니까 팀이 너무나 패배의식에 젖어있고, 목적도 없고 목표도 없더라. 그날그날 대강 보내는 게 습성이 된 배구단이 돼 있었다. 며칠 해보고 나서 집사람(배구 국가대표 출신 임경숙씨)이랑 통화를 하면서 ‘아, 차라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 그랬더니 집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해보지도 않고…’ 그러더라.”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배구단과 너무나 달라서 당황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팀이 목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배구단이 목표를 세워놓고 연습을 하고 가까이 가려고 노력도 해야 하는데, 그냥 이기겠다고만 얘기한다는 거다. 이기기 위해서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떤 프로그램을 세우고 하는 그런 부분이 전혀 없다는 거다. 선수들이 즐거워하는 것도 보면 애인이랑 데이트하거나 하는 것이지 배구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배구가 ‘직업’이니까 아침에 출근해서 도장 찍고 퇴근하고… 또 어차피 늘 1등하는 팀이 있으니까 2등만 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들이 배어 있었다.”

 

#1 동기부터 부여하라
김 감독은 이래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선수들의 생각을 바꿔놓기로 했다. 배구공부터 잡는 것이 아니라 왜 배구를 해야 하는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배구를 하고 있는지부터 물었다.


“안이한 태도를 가진 선수들에게 감독이 새로 들어왔다고 의욕적으로만 맞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선수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했다.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 가장 필요했다. 예를 들어 ‘왜 오늘 밥을 먹어야 되는 건지를 생각해봐라.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는 사람하고 먹는 것을 즐기면서 먹는 사람하고는 다르다는 것이다. 또 그냥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이 다이어트를 하면 분명히 목적이 있다는 거다’ 이렇게 얘기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보고 하라는 게 아니라 제일 위에 있는 사람이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따라오질 않는다. 선수들한테 본보기를 보여주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그런 여러 가지가 선수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동기를 준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한 선수가 바뀌면 좋은 점은 전염이 돼서 바뀌어 간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이용했고 선수들에게 목적의식을 가지게 만들었다.”

 

#2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라
절망으로 시작한 김 감독이었지만 이렇게 선수들과 끊임없이 변화 노력을 하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2개월간의 훈련기간이 지나고 김 감독은 1년 정도 지나면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잘못 판단했다. 그 2개월이라는 게 적응은 안 됐지만 새로운 것을 하니까 활기차고 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연습 때는 잘 하다가도 막상 시합 때는 예전 버릇이 그대로 남아있더라.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 때 적어도 3년은 걸려야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김 감독은 선수들을 꾸준히 ‘세뇌’시켰다.
“선수가 실수하면 무엇 때문에 실수했고 이렇게 하면 고칠 수 있고, 그러면 팀에 얼마만큼 도움이 되고 하는 것을 알려줬다. 그래서 내가 왜 바뀌어야 하는지를 선수들한테 깨워주고 그러면서 자신감이 붙고. 단체운동이라는 것이 자기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잘 할 때와 못할 때 차이점을 알려주고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선수가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사실 부임 첫해의 전력으로는 삼성화재를 이기기 힘들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 때 시합을 하면 두 세트를 앞서 가다가 내리 세 세트를 내줘 역전패 하고 그랬다. 그러면 선수들이 좌절할까봐 선수들 앞에서 조심했다. 애들한테 올해는 무조건 한번은 이긴다, 라고 호언장담하고 좌절하지 않게 했다. 자꾸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이기는 비법을 우리 감독이 가지고 있으니까 큰소리를 칠 거 아니냐’는 믿음도 생기고 했다. 오랫동안 2위만 하다 보니 갖고 있는 좌절감을 벗어나기 위해 언론에도 일부러 이긴다고 흘리기도 했다. 그래서 선수들이 ‘아,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못가지게 만들었다.”

 

#3 투혼을 심어주라
10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맞은 올해 프로배구 챔피언 결정전은 당초 현대가 3승1패 정도로 우승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2승2패를 이룬 가운데 최종전까지 갔고 이제는 누가 우승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 선수들이 심리적인 위축감을 갖고 있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우승 해본 삼성이 큰 경기에 더 잘 할 거라고 주위에서 얘기들을 하고 그래서 선수들이 무지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선수들한테 계속 자신감을 심어줬는데 다행스럽게 이겼다. 시합 전에는 3:1로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홈에서 하는 경기 두 번 이기고, 어웨이에서 1번 이기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홈에서 1차전을 지는 바람에 고민을 많이 했었다. 아, 그게 삼성이 9년 동안 이겨왔던 저력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어제의 그 선수들이 아니었다.
“우리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투혼을 발휘해서 우승한 것이다. 삼성보다 우리가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컸다고 생각한다. 포기도 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시합 끝나고 나면 선수들이 더 분을 못 삼키고, 더 안타까워하는 걸 보면서 ‘되겠다’ 싶었다.”

 

#4 큰 것만큼 작은 것도 소중하다
김 감독이 선수단을 움직이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흔히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킨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작은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김 감독은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선수들부터 챙겼다.


“잘 하는 선수들은 굳이 내가 안 살펴도 잘 한다. 대신 못 뛰는 선수를 한번 더 생각한다. 어려운 선수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려운 부분 등에 대해서 마음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많이 했다. 선수들의 감독으로 연습만 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선수가 안정할 수 있게 인생 선배로서 살아가는 데 조언도 해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권위의식이 있다. 그런 것이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선수들도 표현하기를 어려워한다. 그래서 더 많이 소통하려고 애썼다.”

 

#5 방향이 잘못됐다면 인정하라
김호철 감독이 생각하는 리더의 덕목은 뭘까.
“어려운 질문인데, 한번도 내가 이 팀의 감독으로서 독단적으로 일처리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주위에 있는 사람이나 코치들하고 상의했다. 결국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주위의 의견을 다 모아서 그 중 좋은 의견을 뽑아서 결정은 내가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견을 수렴하고 결정했다고 그것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지기는 힘든 법이다.
“우리 선수들에게 그렇게 얘기한다. ‘단체생활 하면서 감독으로서 너희 모두에게 인정받을 순 없다. 또 밑에 있는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고 하면 리더가 될 수도 없다. 절반만 나를 이해해주고 너희들이 나를 따라준다면 난 과감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펼쳐갈 수 있다.’ 같이 하는 사람의 절반은 동조하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껴야만 하지 선수들은 느끼지도 못하는데 혼자 바둥거려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심사숙고하고 선택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항상 옳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잘 안됐을 때 책임은 내가 지는 거지, 밑에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결정을 내려놓고 후회한 적은 없다. 후회 안 한다. 굉장히 심사숙고 후에 결정하고 후에는 과감하게 밀고 나간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밀고 가다가 아니다 싶으면 빨리 인정하고 철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변명 같은 것은 생각해선 안 되고 주위에서 아니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빨리 철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공개해야 한다.”

 

#6 신뢰하고 대화하라
어느 조직이나 커뮤니케이션은 가장 중요한 목표 공유, 동기 부여의 방법이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늘 열려있다고 하지만, 지금도 선수들이 나한테 100% 마음을 열어놓고 얘기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선수들한테 내 방문은 24시간 열려 있다고 하지만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선수는 별로 없다. 부르면 올까. 우리 선수들한테 열려 있어, 괜찮아, 해도 말을 못하더라.”


김 감독은 ‘말’이 어렵다면 우선 ‘글’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한테 글을 남겨, 라고 했다. 너희들이 나한테 바라고 싶은 것, 원하는 것, 하고 싶은 말, 선수로서 감독에게 하고 싶은 말, 아니면 개인적인 얘기까지 쓰라고 했다. 그래서 선수들한테 글을 받아봤는데 ‘감독님, 이런 부분은 좋고 이런 부분은 나쁘다’고들 얘기하더라. 물론 혹시 다음에 무슨 해는 없을까 안 쓴 선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글을 받고 선수들에게 그랬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는다. 고맙다. 나한테는 도움이 많이 됐다. 너희들이 내 스승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너희들이 원하는 만큼은 다 못 고친다.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다 고치면 나라는 사람은 없어진다. 너희들이 원하고 팀이 원하면 내가 고치겠다’고 했다.”

 

#7 적을 인정하고, 적에게서 배워라
삼성화재의 ‘10년 아성’은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최고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항상 선수들한테 그렇게 얘기한다. 아무리 우리한테 적이지만, 저들을 뛰어넘어야 하지만 그 뛰어넘는 방법 중 하나가 삼성 선수가 잘 하는 부분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이라고. 삼성이 잘 하는 부분을 우리가 배우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삼성과 서로 맞닿을 수 있다는 거다. 비디오를 보고 상대방을 연구하는 것도, 저 부분을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우리 팀이 가지는 장점은 그대로 갖고 우리가 삼성의 장점을 배우면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피 말리는 승부가 계속되던 지난 시즌, 김호철 감독은 삼성화재와의 시합 도중 타임을 걸고 자기팀 선수를 격하게 나무랐다. TV로 중계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자기 선수에 대한 거친 질타가 이어졌다. 그 선수가 상대편 코트에 있는 삼성의 선배 선수에게 비신사적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스포츠인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예의다. 야비한 수단을 써서, 스포츠맨십을 벗어나서 이기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피땀을 흘려서 이긴 진짜 대가를  바라는 것이지 야비하게 이기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진정 이것을 쟁취할 수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껴야지 야비한 수단을 쓰는 것은 용납도 안 되고 필요도 없다. 그럴 바엔 차라리 지는 게 낫다.”

 

배구는 나의 인생
김호철 감독은 ‘목적의식이 조직력으로 나타나고 그 조직력은 승리를 부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스타는 자존심과 책임감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한다. 역으로 얘기하면 ‘자존심과 책임감이 있을 때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홀홀단신으로 이탈리아로 가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는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그것을 통한 ‘실력’만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는다.


대표팀 감독을 맡은 그는 이제 한국 배구를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배구가 자신의 인생이라는 그의 신념은 침체기에 빠진 한국 배구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배구’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