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취업 현주소, ‘연륜’은 간데없고 ‘닥치는 대로’
노인취업 현주소, ‘연륜’은 간데없고 ‘닥치는 대로’
  • 참여와혁신
  • 승인 2006.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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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방 노인’ 취급 마오 “우리는 일하고 싶소”김경아 기자 kakim@laborplus.co.kr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무가지를 주우러 다니거나, 탑골공원 한 귀퉁이에 앉아 장기를 두거나, 그도 아니면 아들, 며느리가 출근한 집에서 ‘빽빽’ 대는 손자를 업고 방을 맴돌거나…. 고령화 시대라지만 우리사회가 그리는 ‘노인’의 이미지는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장성한 자녀들은 부모가 일하는 것이 불효나 되는 양 ‘괜히 동네 창피하게 하지 말고 집에 계시라’고 하면서 부모를 노인정으로 떠밀거나 아이들을 떠안긴다.

 

또 생계를 스스로 꾸려가야 하는 노인들의 경우 일자리를 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해 아침마다 무가지며 폐지를 찾아 하루 몇 푼씩을 벌어 삶을 근근이 이어가고 그보다 사정이 좀 나으면, 그러니까 그보다 좀 ‘어린’ 노인들은 건물관리원이나 아파트경비원이 대부분인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마저도 대개는 ‘입에 풀칠할’ 정도의 보수를 받게 된다.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오랜 세월을 쌓아온 ‘연륜’은 오간데없고 ‘떨어진 기력’만이 남아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몸으로 때우는’ 일이 대부분인 현실.


하지만 젊은 시절을 어렵게 통과했듯 ‘거뜬히 현실을 이겨내 보리라’는 노인들도 있다. 자신의 일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늙은 ‘청춘’들을 만난다.

 

입시 열기처럼 뜨거운 노인취업 현장
어느 중고등학교의 교실이 이렇게 뜨거울 수 있을까?
노인취업훈련센터 주차관리원 훈련 마지막 날, 강의실 안은 강사와 학생이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수업의 열기를 더하고 있다. 운전을 수십 년씩 했더라도 신형 차량 모델이 쏟아져 나오니 주차하는 데도 많은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다.


가슴에 커다란 이름표를 단 머리 희끗희끗한 노인들은 간혹 꾸벅꾸벅 조는 모습도 있었지만 대개는 반짝거리는 눈에서 ‘레이저 빔’이 나올 정도다.


서울노인복지센터의 노인취업훈련센터에서 실시한 주차관리원 훈련은 이번이 두 번째로, 자동차 응급처치 방법이나 안전관리, 주차요금 정산법 등을 교육 하는데 전날에는 직접 주차장에서 실습을 했다고 했다.


하루 5시간씩의 수업을 듣느라 몸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이 정도는 거뜬하지~”라는 너스레가 돌아온다. 45명이 정원이었던 이번 훈련은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았거나, 면접 때문에 수업일수를 채우지 못한 세 명을 제외한 전원이 수료할 만큼 높은 출석률을 보였다.


노인취업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한 대학생은 “보통 노인이라고 하면 집에서 쉬어야 되고, 우리랑은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여기 와서 일하다 보니까 할아버지들이 열심히 배우시는 모습이나 이것저것 묻고 요구하시는 걸 보면서 우리와 정말 하나도 다르지 않을뿐더러 우리보다 더 열정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보호는 원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달라
하지만 노인 취업은 이런 ‘뜨거운 마음’과는 관계없는 것이 현실이다.
200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노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9.8%로, 이 중 53.9%가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 2004년 명지대 사회복지대학원 고재욱 교수가 서울 시내 거주 노인 5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94.1%가 취업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을 준비 중인 노인들에게 ‘취업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모두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것’을 꼽는다.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다고 해서 정책적으로 노인 일자리를 만들고 실버박람회가 여기저기서 열려도 여전히 정년을 지난 이들에게 취업문은 바늘구멍처럼 좁다. 뿐만 아니다. 찾을 수 있는 일자리도 대개가 경비원이나 건물 청소 등 단순노무직이 대부분이다. 이마저도 60세가 넘으면 자리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


주차관리원 훈련 2기를 수료한 할아버지들은 버스운전기사, 광고회사 직원, 중소기업 사장, 인쇄소 도안사 등 다양한 전직을 가지고 있었는데, 경력을 살려 일하고 싶은 바람은 한결 같았지만 “그런 자리는 없으니 나이에 맞는 주차관리원이나 경비원 자리라도 얼른 구해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일은 세상과 만나는 통로”
올해 일흔이 된 서두석 할아버지는 미술관 지킴이다. 지난 2003년 말 처음 관훈동의 한 미술관에 관리인으로 취업한 그는 “문화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일한다”고 웃으면서 슬며시 자신이 쓴 글씨를 내보였다.

 

28년 동안 공직에 몸담았던 서 할아버지는 미술관에서 일하는 틈틈이 작가들에게 배워 서예를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수준급이 됐다. “가능하다면 조촐한 전시회를 하고 싶다”던 그는 여전히 꿈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서 할아버지가 여기까지 오는 일은 녹록치만은 않았다. 오랜 공직생활을 정리하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IMF 직전에 회사는 문을 닫았고 그 부채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거기다 정년을 넘긴 나이에 일자리는 쉽게 나타나주지 않았다.


어렵게 서울복지센터에서 소개를 받아 지금의 일자리를 얻게 됐다. 아침 일찍 제일 먼저 출근해서 문을 열고, 청소하는 일부터 전시회가 바뀔 때마다 조명이며 벽에 ‘빠대’(핸디코트)를 발라 못 자국을 없애는 일까지 맡아서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한번은 천장에 달린 조명을 교체하다가 사다리가 넘어져 허리를 ‘삐끗’ 하기도 했다.

 

또 젊은 사장이 일에 대해 지적하고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을 참는 일이 여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꾸준히 일하러 나온 것은 “애들 한참 뒷바라지 할 나이에 사업이 어긋나 잘 해주지도 못했는데 부담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고, “마누라가 집에 들어가면 수고했다고 할 때 느끼는 뿌듯함” 때문이었다. 하나 더 하자면 “사람들과 만나 얘기하는 것이 좋아서”였다.

 

그래서 이제는 옆 미술관에 있는 관리인 할아버지와도 친구가 되고 큐레이터와도 편하게 지내는 사이가 됐다. 서 할아버지는 “눈 감는 그날까지 내가 끝났다는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지”라며 웃었다.

 

“내 힘으로 남은 생을 꾸릴 수 있게”
일하는 어려움과 즐거움 얘기를 맛깔스럽게 엮어내던 서 할아버지가 대뜸 제안을 하나 한다. “4대 보험까지 바라는 것은 욕심이고 말이요, 그저 일하는 노인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정부가 지원을 좀 해주면 좋겠어. 기업한테 노인들 지원을 다 하라고 맡길 수는 없잖아. 어떻소? 내 생각이.”


정년을 넘긴 나이에 다시 취업을 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몸소 느낀 그가 던진 작은 제안은 곧 노인 취업의 현실이었다. 사회에서 외떨어지지 않고 함께 일하고 이야기하는 것, 그러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생을 꾸려가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2005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55세~79세 노인 중 58.8%가 ‘취업하고 싶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왜 일하고 싶냐’는 질문에는 ‘생활비 때문’이 31.7%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일하는 즐거움’(20.4%)으로 꼽혔다. ‘건강유지를 위해서’라는 답변도 1.6%를 차지했다.


고령화 시대, 사회는 노인들에게 곧잘 ‘집에서 푹 쉴 수 있는 복지’를 제공하고 싶어 하지만  노인들은 불경스럽게도(?) ‘몸소 움직이며 일할 일자리’를 원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는 이들이 쌓아온 연륜과 경험은 ‘골방’에 쌓아둔 채, 말뿐인 ‘고령화 대책’에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뒷자리 2인방 할아버지와 수다를~

 

최 할아버지 : 나? 마누라 등살에 떠밀려서 나왔어~

이 할아버지 : 난 IMF 때 사업이 어려워져서 폐업을 했거든, 평생 사업만 하다가 이제 처음으로 취업해보려고 나왔어. 직장은 하나도 몰라. 이게 내 첫 직장이야~

최 할아버지 : 난 예전에 버스도 운전하고 그랬어. 나이가 많아서 쓸모없어졌으니 나가라니 어떡해. 나와야지. 그래도 전에 운전했으니까 운전할 수 있는 주차관리하면 좋잖아. 여기서 배우면 취업하기가 좀 낫다고 해서 왔는데 잘 모르겠어.

이 할아버지 : 일자리가 없어. 또 일자리가 있어도 하는 일에 비해 보수도 너무 형편없고. 그게 제일 문제야.

최 할아버지 : 아직 결혼 안 한 녀석이 하나 있어. 그래서 그때까지는 부지런히 벌어야지.

이 할아버지 : 나도 지금 고시 준비하는 녀석이 하나 있어. 그 녀석이 말이야…

최 할아버지 : 우리 큰 아들은 지금 인천공항에 다니는데…

 

자녀들 얘기가 나오자 할아버지들은 잠시 ‘구직 시름’을 잊은 듯 자식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수업 중 뒷자리에 앉아 ‘선생님’ 몰래 ‘딴청’을 피는 것 까지, 십대 청소년들과 어쩜 이리 똑같을까. 노인들의 삶은 아랫목을 차지하고 앉아 있기에는 너무 활기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