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들의 선택을 이끌었나
무엇이 그들의 선택을 이끌었나
  • 김주도 기자
  • 승인 2014.04.0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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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금융지주와 상생협약 맺은 광주은행지부
“집행부 3년 임기뿐 아닌 조직의 50년 앞날 내다볼 것”
[기획인터뷰 2] 강대옥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광주은행지부 위원장

ⓒ 금융노조 광주은행지부
우리금융그룹 산하 지방은행인 광주은행, 경남은행의 민영화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금융노조 광주은행지부와 JB금융지주, 금융노조 경남은행지부와 BS금융지주 등 노동조합과 인수자 간 상생협약은 인수 작업의 속도를 높이는 촉매가 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아울러 두 노조가 맺은 상생협약은 당초 가장 우려되던 직원들의 고용안정을 지켜냄은 물론 지방은행의 지역사회에 대한 역할과 고민도 포함된 성공적인 결과물로 평가 받는다.

성공적 협상 이끈 광주·경남은행 노조

당초 광주은행 인수전에서는 J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신한금융지주는 안팎의 반발에 부딪혔다. 광주은행지부와 지역 여론이 신한금융지주로의 인수를 강력히 거부한 가운데 금융노조 신한은행지부도 “광주은행 인수에 반대한다”며 지원에 나섰다. 결국 12월 31일, JB금융지주가 광주은행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2월 11일 JB금융지주가 예금보험공사와 광주은행 인수 양해각서를 체결한 다음날인 2월 12일, JB금융지주는 광주은행 인수를 위한 확인실사에 돌입했다. 허련 전북은행 종합기획부장 등이 실사단으로 방문한 가운데 광주은행지부는 “광주은행의 지역은행으로서의 역할과 발전 방안에 대한 명확한 담보가 없는 한 JB금융의 실사를 허용할 수 없다”며 실사단의 진입을 저지했다. 실사단은 향후 노조와 대화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돌아갔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난 2월 19일, 광주은행지부와 광주은행, JB금융지주는 광주은행 본점에서 ‘지역금융 상생발전을 위한 협약’(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상생협약은 투뱅크(two bank) 체제 유지, 완전고용 보장, 경영 자율권 보장을 큰 틀로 지역인력채용, 지역사회 환원, 지역경제 활성화 등 광주·전남지역 지원방안을 포함한다. 경남은행지부-BS지주와의 협약과 마찬가지로 광주은행지부-JB지주와의 협약에서는 노동조합이 선도적으로, 성공적인 협약을 이끌어 냈다. 강대옥 광주은행지부 위원장은 “문구 하나 수정하는 데 서너 시간씩 걸렸다”며 치열했던 협상 과정을 떠올렸다.

ⓒ 금융노조 광주은행지부
독자생존 무산 이후 발 빠른 대응 나서

광주은행 역시 이번 우리금융 민영화의 뜨거운 감자였다. 노조는 어떤 생각으로 민영화 투쟁에 임했나.

“2013년 6월에 4차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이 발표됐다. 정부가 그간 계열사별로 분리매각 하겠다, 지주 전체를 일괄매각 하겠다, 분리매각과 일괄매각을 혼용하겠다며 오락가락하는 사이 세 번의 시도가 모조리 무산됐다.

노조에서는 지난 3차 민영화 시도가 무산된 이후 그 원인을 분석했다. 그 결과 관치금융의 틀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광주은행 직원 스스로가 주인이 되고, 지역민이 주인이 되는 민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 일환으로 우리사주조합을 설립해 은행을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12월 30일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기 전까지는 사실 경남은행 쪽이 민영화 투쟁에 있어 제대로 된 모습이었다. 경남은행은 은행장까지도 노조와 입장을 함께 했고, 지역 상공회의소도, 홍준표 지사도 참여하며 지역이 하나로 똘똘 뭉치지 않았나.”

광주은행 인수를 두고 지역 각 주체가 따로 인수하겠다고 나섰다는 말인가?

“그렇다. 어떻게 보면 중앙정부에서 ‘광주·전남 지역은 통합이 안 되니 상대하기 편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은 지금도 많이 아쉽다.

사실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기 전까지 원래 계획은 우리사주조합을 설립해서 우리 힘으로 예비입찰을 거쳐 본입찰까지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인수자금 조달과 지배구조를 어떻게 할지였다. 우리사주조합이 중심을 잡고 분위기를 띄워, 기타 기업이나 사모펀드를 모아 컨소시엄을 구성하기 위해 여러 기업이나 사모펀드와 접촉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광주상공회의소는 또 그 나름대로 인수를 추진했다. 결론적으로, 광주은행 인수를 위한 지역 컨소시엄 구성은 실패했다.”

컨소시엄을 구성한다는 당초의 계획이 틀어졌는데, 경우의 수를 따져 볼 필요가 있었을 것 같다.

“컨소시엄 구성이 실패한 이후 방향을 바꿨다. 만약 우리사주조합이 광주은행을 인수할 수 없다면, 최악의 인수자는 누구일 것인가를 먼저 따져봤다.

사실 노조는 2013년 7월 광주은행 매각 공고가 나왔을 때 전 직원들에게 설문지를 돌려 여론을 수렴했다. 당시 응답률이 90%에 달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가장 좋은 민영화 방안은 무엇인지, 만약 인수된다면 인수자는 어디가 좋겠는지 등을 물었다. 설문 결과 ‘시중 금융지주회사의 인수는 절대 안 된다. 독자생존 민영화가 가장 좋다. 만약 인수되는 방법밖에 없다면 그나마 지방 금융지주회사가 낫다’는 결과가 나왔다.

당시 광주은행 인수전에서는 신한금융지주가 인수 후보 중 하나로 떠오른 상황이었다. 만약 신한금융지주가 광주은행을 인수할 경우, 영업권이 겹치는 곳이 전체의 30% 정도 된다. 광주은행이 1,800명이니, 산술적으로 따져 봐도 540명은 구조조정 대상인 거다. 그래서 12월 내내 신한금융지주 저지에 온힘을 기울였다. 신한금융지주, 금융위원회 앞에서 시위도 하고 성명서, 속보도 부지런히 냈다. 국회 정무위 강기정 의원도 직접 만났다. 그 과정에서 신한은행지부가 광주은행 인수 반대 의사를 밝히는 등 도움을 줬다. 광주 전남 지역에서도 ‘신한금융지주만은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고, 지역 국회의원들에게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여러 방송에도 지속적으로 출연해 입장을 밝혔다.”

국어선생에게 물은 ‘및’과 ‘과’의 차이

결국 12월 31일 JB금융지주가 광주은행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 금융노조 광주은행지부
“시중 금융지주는 피했으니, 우리로서는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도 피한 상황이다. JB지주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에는 투뱅크 체제, 독립법인 유지 등 광주은행을 어떻게 존속 시킬지 많은 고민을 했다. JB지주와의 상생협약안도 그 부분을 많이 고민했다. 시민·지역·정치계 등에도 여론을 물었다. 그 과정에서 강운태 광주시장, 박흥성 광주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과도 만났다.”

상생협약을 맺기 전, JB지주의 확인실사를 저지한 이유가 궁금하다.

“BS지주의 경우 확인실사 전에 노조와 상생협약을 맺고 경남은행과 지역민들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그래서 JB지주에 ‘광주은행이 광주·전남 지역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만약 JB지주가 광주은행을 인수하겠다면 지역민들이 납득할 만한 안을 제시하라’고 했다. 광주은행에도 JB지주에 무엇을 요구할지 제시하라고 했다. 그래서 양쪽으로부터 받아보니 우리와는 입장이 너무나도 달랐다. 투뱅크 체제를 유지한다. 지역에 환원한다. 고용안정을 지킨다는 것뿐이다. 쉽게 말하면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원칙적인 말만 있고 세부적인 계획이 없었다는 말인가?

“신문지상에 나온, 원칙적인 말만 되풀이 하더라. 그래서 300가지 정도 내부에서 요구안을 만들고 그중 함축적으로 14개를 추렸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물러서서는 안 될 것들, 논의를 해 볼 수 있는 것 등 요구안의 성격을 나눠 전략을 짰다. 요구안은 밤을 새가며 5차례의 수정을 거쳤다. 지역에서는 광주은행보다 작은 규모인 JB지주가 인수하는 것을 우려하는 여론도 일부 있어 최대한 지역민의 정서를 배려하는 방안도 고민했다.

협상이 쉽지만은 않았다. 시간도 부족해 급박하게 진행됐다. 확인실사를 저지하고 며칠 뒤에 국회 기획재정위 조세소위원회에서 조세특례제한법 처리 선결 조건으로 우리와 JB지주 간의 합의를 내걸었더라. 나중엔 문구 하나 수정하는 데도 서너 시간씩 걸렸다. 가장 힘들었던 건 영속적인 독립법인·투뱅크 체제 유지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영속’이라는 단어를 넣는 데 이틀이 걸렸다. 새로운 지주회사의 명칭도 논의가 아닌 ‘변경’이란 단어를 명시하도록 했다. ‘및’과 ‘과’가 어떻게 다른지 평소 알고 지내던 국어선생님에게 자문까지 구했다.

협약에는 투뱅크 체제와 독립법인 유지, 전산 독립, 카드 사업 별도운영, 고용안정 보장, 급여 및 복지 수준 개선을 큰 틀로, 신입행원의 90%를 지역인재로 선발, 단기순이익 일정 비율 이상 지역 환원, 사회공헌 사업을 비롯한 지역사회 환원과 발전에 대한 방안 등이 포함됐다.”

ⓒ 금융노조 광주은행지부
“인수 이후에도 경각심 놓지 말아야”

협약 내용이 잘 지켜지는 게 앞으로의 관건일 텐데.

“협약이 잘 지켜지도록 담보하는 건 우리가 할 역할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해주는 게 아니다. 조합원들에게 설명회를 통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힘이 없고, 은행의 힘과 가치가 떨어진다면 이 상생협약안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경각심을 놓아서는 안 된다.”

JB지주에 의해 민영화된다면 전북은행과 함께 같은 지주회사에 속한다. 그럴 경우 전북은행지부와의 관계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경남은행과 부산은행은 영업권이 겹쳐 노조들끼리 경쟁관계에 있기도 했지만, 전북은행지부와 우리는 전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방은행노동조합협의회 활동도 함께 10년 이상 해왔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온 만큼 노노 갈등을 비롯한 마찰은 없을 것으로 본다.”

지난 집행부 때 수석부위원장이었지만 지금은 위원장의 자리에 있다. 앞으로 노조를 어떻게 이끌어 갈 건가?

“현재 광주은행과 노동조합에는 닥쳐온 과제가 있다. 노조가 어떻게 역할을 해 나갈 건지, 단지 3년의 임기 기간을 볼 건지, 아니면 50년의 미래를 볼 건지가 중요하다.

조합 사무실을 보라, 선배 위원장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넘어갔을 때의 풍파를 넘어온 분이 있다. 권총을 들이댄 앞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한 분도 계시고, 2000년 총파업을 지휘한 분도 있다. 예전 분들에 비하면 우린 고생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번 민영화 과정은 새로운 광주은행이 시작될 기점이 될 수 있을 거다. 따라서 10년, 20년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활동을 해 나갈 것이다. 우리 노조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선명성, 투쟁력, 조직력은 1만 명도 부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합원들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우린 300명으로 페르시아를 막아낸 스파르타 같은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