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 테이블에서 풀 수밖에 없다
교섭 테이블에서 풀 수밖에 없다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4.04.0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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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연대로 행복한 투쟁 이어가
빠른 복직 가능할까?
[기획인터뷰 1] 양형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직실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지난 2월 7일 서울고등법원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해고노동자 153명이 쌍용자동차 경영진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이들에 대한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당시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다거나 해고 회피 노력을 충분히 다했다고 볼 수 없다”며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구조적인 재무건전성 위기까지 겪고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쌍용자동차는 이번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번 판결에서 쟁점이 됐던 것은 2009년 당시 쌍용자동차 경영진이 정리해고의 근거로 내세웠던 회계보고서의 조작 여부였다. 쌍용자동차지부는 안진회계법인이 작성한 회계보고서에 손상차손을 과다계상하는 등 재무건전성 악화를 보여주기 위한 회계조작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었고, 지난 2012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청문회에서도 이 문제는 핵심 쟁점이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의 발단은 경영상의 위기였다. 하지만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경영위기가 기술유출과 회계조작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상하이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해 투자는 하지 않은 채 기술만 빼갔고,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회계조작을 통해 법정관리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이가 양형근 쌍용자동차지부 조직실장이다. 쌍용자동차 사태 이전인 2006년, 노동조합 간부가 아닌 평조합원 신분으로 기술유출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양형근 조직실장은 이번 판결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함부로 정리해고 하면 안 된다

쌍용차 정리해고가 부당했다는 서울고등법원 2심 판결의 의미는 무엇인가.

“의미가 크다.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싸움에 현대차 비정규직이 있다면, 정리해고 싸움에는 쌍용차가 있다.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가서 어려워졌고 그래서 정당하다 주장하지만, 정리해고에는 요건이 필요하다. 정리해고를 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회사가 제시하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자의적 판단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그동안 금융감독원하고도 싸워오면서 이것을 밝히기 까지 수년이 걸렸다. 금융감독원은 회계 조작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회계조작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함부로 정리해고를 하면 안 된다는 법원의 판단이었다.”

사측의 반응과 판결이 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사측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1심에서는 우리가 패소했었다. 그때는 우리가 많은 자료를 깊이 있게 분석하지 못해 증거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 변호사가 2심에서 제대로 하자고 해서 변호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을 더 투입했다. 우리가 내부 자료를 전문가들에게 주면 그들이 내용을 분석했다.

사측이 1심에 제출했던 감사조서와 2심에서 제출했던 감사조서가 서로 달랐다. 우리가 1심 이후에 회계조작 문제를 제기하니까 사측은 1심이 아니라 2심에 제출한 감사조서가 최종본이라고 했다. 수치가 다 다르다. 이번 판결에서는 정리해고 문제를 다뤄서 회계조작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 기자회견 등 계속 회계조작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회계조작 논란이 쌍용차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쌍용차뿐만 아니라 기업들에 회계조작 문제가 있다. 자본주의에서 회계부정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용납이 안 된다. 그래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이번 판결과 같은 과정을 통해 잘못된 것들을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한다.

구조조정을 하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억울하다고만 했지, 경영에 대해서 이렇게 파고드는 노조가 없다. 회사의 구조에 대해서 그들만의 성역이 안 되도록, 노조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바뀌는 것들이 있다.”

죽은 사람이 돌아오진 않는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해고자의 삶, 지난 5년여의 시간은 어땠나.

“사회적 안정망이 없는 사회 속에서 해고라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쌍용차 동료들 24명이 죽어간 것이다. 이들이 죽은 것은 상식이 통하지 않고 정의가 죽은 사회에서 해고자로 사는 게 억울해서다.

생계가 가장 어렵다. 파업을 한 노동자로 낙인을 찍는 것도 힘든 부분이다. 그런 부분들로 인해 정리해고 무효 판결이 날 때 많은 조합원들이 울었다. 그 판결로 인해 조금이라도 마음이 풀어진 것이다.

고 이윤형 조합원이 사망한 이후 대한문 농성을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문제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조합원들이 조금씩 희망을 느끼고 죽음의 행렬도 끊겼다. 그렇지만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진 않아 마음이 아프다.”

아프고 힘든 일이 많았지만, 한편으로 판결 이후 뿌듯한 건 없었나.

“그런 생각은 없었다. 선고하던 날 법원에 가면서 ‘재판에 지더라도 외감법(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것만 판결문에 들어가면 앞으로 충분히 싸울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재판 전날까지 우리는 물론 변호인단들도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을 했다. 회사는 서울대 교수의 특수감정보고서에서 우리의 주장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이나 안진회계법인이 했던 주장만 되풀이한 보고서였다. 과거 콜트·콜텍의 경우, 특수감정보고서에 긴박한 경영상의 문제가 없었다고 나왔는데도 대법원에 가서 졌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의 경우였다.”

진실 밝히지 않곤 해고자 살 길 없었다

평범한 노동자로 들어와서 회사의 경영에 문제제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2004년 말에 상하이차에 M&A 되고 2005년 초에 본계약을 체결했다. 그때 1년 정도 지나고 나서 쌍용자동차의 헐값 매각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현장 활동하기 전에. 그때 우리나라에 법이 없었다. 2007년 4월에야 기술유출방지법(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생겼다. 그런데 우리가 2006년에 기술유출 문제로 옥쇄파업을 한 거다.

사실상 6천억 원 가지고 샀다고 했는데 우리나라의 8개 은행(조흥은행, 산업은행, 우리은행, 제일은행, 농협, 수협, 기업은행, 제주은행)과 중국공상은행이 대출을 해줬다. 인수자금 4천2백억 원을 대출해준 거다. 그러면 상하이차가 가져온 건 거의 없는 거다.

그걸 알려나가는 과정에서 명예훼손으로 고발도 당했다. 결국은 상하이 사장이 취하했지만. 명예훼손을 했다면 매매계약서를 내놔라, 인수 후에 인수한 기업의 자산을 팔아서 빚을 갚는 LBO 방식인지 보자고 한 거다. 그런 것들을 제기하니까 회사가 고발을 취하한 거다.

2009년 옥쇄파업 과정에서 난 집행부가 아니었다. 그런데 옥쇄파업 끝나고 바로 구속됐다. 남들은 2개월 살았는데 7개월 살았고. 집행부도 아닌데 거기에 끼워 넣은 건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출소한 후에 정리해고자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진실을 밝히는 것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구조조정으로 인한 파업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인정을 안 하지만 단 하나, ‘불순한 의도’로 구조조정을 했을 때는 파업이 정당하다. 그래서 회계조작에 대해서 지금까지 해온 거다.”

투쟁 과정에서 시민들의 연대가 상당하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노란봉투 캠페인도 마찬가진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나.

“쌍용차 투쟁은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고 계신다. 어떻게 보면 행복한 투쟁을 하고 있다. 조그만 사업장에도 해고가 많은데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똑같은 해고 상황인데 쌍용차는 크게 저항하고 사람이 죽어가기까지 했다. 한 사업장에서 이렇게 죽어가는 게 보통일은 아니다. ‘사회적 타살’이라고들 이야기 한다. 사회적 문제로 번진 것이다. 그러니까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도움도 주신다. 그런 분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 했다.

쌍용차처럼 단위사업장 정리해고 문제가 언론에 많이 나온 적이 없다. 대부분 해고된 이후에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사람들이 방송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하곤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점에서는 언론에 불만이 있다. 우리가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다. 물론 생활이 어렵긴 하지만 정당하게 싸웠다. 왜 싸우는지에 대한 진실이 언론에 나와야 하는데 그런 건 안 나왔다.”

그래도 쌍용차 투쟁은 언론에서 많이 다룬 편이다.

“한 방송사 피디와는 5시간 동안 인터뷰하고 기술유출이나 회계조작 관련한 자료를 다 줬다. 이 내용을 방송에 내보내달라 했는데, 결국은 방송 다 끝나갈 때까지 안 나왔다. 바로 피디에게 전화했다. 내보낸다고 약속하지 않았냐고 하니까 죄송하다고 하더라. 그 피디도 나름대로 우리를 쫓아다니면서 촬영하고 방송에 내보내려 노력했던 건 이해한다. 그런데 언론도 탄압을 받아서 커트가 된다. 많은 기자들한테 언론이 왜 그러냐고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돌려서라도 계속 사회적으로 제기하니 그나마 낫다’고. 그렇지만 우리는 속으로 억울하다.

언론노조 이강택 전 위원장을 집행부가 다 구성되지도 않았을 때 찾아간 적이 있다. 우리 문제를 꼭 보도해달라고 자료를 다 들고 갔다. 그래서인지 이강택 위원장이 언론노조 파업투쟁 때 단상에 서면 쌍용차 이야기를 했다.

현실적으로 지금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우리의 바람대로 되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맘에는 안 들지만 그나마 꾸준히 쌍용차 투쟁을 언론에서 조명해주고 상기시키고 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회계조작 없었다면 파업도 없었다

복직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나.

“모르겠다. 해고자들이 끝까지 희망퇴직을 안 하고 지금까지 싸우는데 회사는 복직시키기 싫다고 하는 거다. 올해 안에 주야2교대제를 실시하기 위해 800명 증원이 필요하다. 아마 4월 안에 회사에서 라인 구성과 인원배치에 대한 구체적인 안이 나올 거다. 회사가 빨리 인정하고 복직을 시켰으면 좋겠다.”

앞으로 복직을 위해 남은 것들이 무엇이며,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교섭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서로 인정할 거 인정하고 수긍해야 한다. 아직까지 사측이 버티고 있으니까 답답하다.

교섭 테이블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1차 징계 해고자, 2차 징계 해고자가 있는데 2차 징계 해고자에 대해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다. 1차 징계 해고자들은 3심까지 다 끝나서 법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사측이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해고 처분을 내렸지만, 회사가 회계조작을 안 했으면 노동자들은 파업할 일이 없었다. 만약 해고자를 완전히 배제하고 희망퇴직이나 신규채용 인원으로 800명을 채운다면 사회적 비판을 엄청나게 받을 수밖에 없다. 회사가 감당할 자신 있는지 모를 만큼 쉽지 않은 문제다. 쌍용차 문제가 사회적으로 노동의 핵심적인 의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상 설마 그렇게 되겠는가. 개인적인 생각으론 회유책이 나오지 않겠는가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회사 홍보실을 통해서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판결에 따라 충당부채 때문에 돈을 적립해야 하는데, 이 문제로 1천억 원 이상 필요하다느니 하면서 일하는 사원들을 압박한다. 회사도 여론전을 하는 거다. 테이블에 마주앉진 않았어도 이러한 방식으로 교섭이 진행되긴 하는 거다. 그렇지만 어떻게 될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