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준비 안 된 정부는 손대지 말라
공무원연금, 준비 안 된 정부는 손대지 말라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4.05.0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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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적인 설립신고 않는다
정부 책임 면하려 공무원에 뒤집어씌우나
[기획인터뷰 1] 이충재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최근 이슈로 떠오르는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 설립신고 문제 등 전국공무원노조가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게다가 지난 지도부 선거 과정에서 부실·부정선거 논란까지 더해졌다. 재투표까지 치르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 28일 이충재 위원장이 7기 집행부를 이끌게 됐다. 향후 전국공무원노조를 어떻게 이끌어 갈지 이충재 위원장에게 들어봤다.

국민과 함께하는 사회운동 펼칠 것

어려운 시기에 위원장을 맡게 됐다.

“직장협의회와 노조 추진 기획단 시절부터 공무원노조와의 인연이 있었다. 한 때 잘 나가는 공무원이었지만 이 길이 더 옳다 싶어서 선택했다. 이 길을 선택한 이상 최선을 다해서 위원장으로서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고 한다.노조가 설립된 지 12년이 됐지만 사실 공무원노조의 문제는 운동 방향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간에 운동 방향이 있고 그것에 따라 사업들이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방향이 없으니까 배가 산으로 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원장으로서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출마했다.

공무원노조는 현재 설립신고도 안 돼 있지만 12년을 버티고 있다. 해고자도 135명을 안고 있고, 공직사회의 각종 구조조정 정책이 밀고 들어오는 상황이다. 특히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공무원들에게 공통되는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도 있어 책임이 무겁다.”

운동 방향을 비롯해서 구체적인 노조 운영 계획이 궁금하다.

“공무원노조는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고유영역이 있다. 우리가 민간 노조처럼 똑같은 운동방식을 가질 순 없다. 공무원은 국가의 정책을 집행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국민들의 편에서 이뤄지는지를 우리가 고민해야 한다. 공무원노조가 우리만의 집단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 함께 하는 사회운동 노조가 돼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큰 방향을 슬로건으로 공무원노조가 출범했다.

부정부패와 관련해 제도를 바꾼다거나 명절 선물을 줄이는 등의 역할을 그동안 공무원노조가 해왔다.

물론 예전과 현재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공직사회가 많이 투명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활동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다. 그동안 부정부패 척결과 공직사회 개혁을 주요한 의제로 선정해서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거나 사회적으로 이슈를 제기하는 부분은 빈약했다고 본다. 향후에 그런 부분을 개혁할 수 있는 화두를 우리가 던져야 한다. 당장 무언가를 이뤄내겠다는 건 아니다. 차분하게 준비해나가면서 소재를 쌓는 것이 2년간의 역할이다.”

지난 선거 과정에서 갈등이 컸다.

“완벽히 깨끗한 선거를 할 수는 없겠지만, 부정부패 척결을 내건 공무원노조 선거에서 부실이나 부정이 제기됐다는 건 좋은 모습은 아니다. 선거관리규정이 미비한 측면도 있다. 다만 지도부를 선출해야 하는데 정부는 못하게 하니 숨어서 투표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관행이 누적돼 있다. 형식과 절차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 부분들이 의식도 둔감하게 만들어놓은 거 아닌가. 이런 부분이 이번 선거를 통해서 여과 없이 드러난 거다.

향후 이런 규정들도 다 정비해야 한다. 이번에 문제됐던 부분은 선관위에서 진상조사를 할 거다. 조직의 화합과 단결을 기본으로 두더라도, 잘못된 부분은 우리 내부의 규정과 절차에 따라 고쳐야 할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는 치열했지만 선거 후에는 감싸 안는 조치도 필요할 거 같은데.

“선거 후에 문제제기하는 사람도 없고 조용하다. 사실 2년 동안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다른 데 신경 쓸 겨를도 없다. 감싸 안고 화합한다는 말 자체도 굉장한 사치다. 조직에 나름대로 위기의식도 있고 성숙하게 잘 이겨나가고 있다. 선거 때문에 후유증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낙선한 쪽은 선거 결과에 대해 서운할 수는 있겠지만, 서로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있다. 그 문제로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법외노조가 원심력 되진 않아

노조 설립신고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건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네 차례나 반려가 됐다. 설립신고가 반려되는 데에는 정치적인 요인이 있었다. 공무원노조 설립신고는 법적으로 고용노동부 과장의 전결 사항이다. 하지만 지난번 논란 과정에서 보듯이 청와대가 개입하고 국무회의나 차관회의에서 문제가 논의될 정도면 이는 정상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정부가 스스로 정치적으로 안 해준다고 한 셈이다. 안전행정부 담당자가 ‘민주노총에 가입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는데, 우리는 늘 정부하고 긴장상태를 유지했던 관계다. 이런 부분들을 복합적으로 보면 정치적인 거다.

현재의 정치적인 환경이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립신고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못한다. 설사 해고자 관련 규약을 개정해서 설립신고서를 제출하더라도 정부는 쉽게 안 해줄 거다. 정부는 노동계와 대화도 안 하고 있다. 그런데다가 정부의 턱밑에서 비판할 수 있는 공무원들의 노조라 쉽게 설립신고증을 주지 않을 거다. 지금처럼 법외노조로 남아 있으면 법내노조와 입을 맞추기도 좋은 구조 아닌가.

설립신고를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 노조가 법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굴욕적인 설립신고는 절대 내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의 신뢰 관계가 개선되는 과정을 보면서 협의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양보하지는 않을 것이다.”

법외노조 상태가 유지되면 일선 지부에선 원심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원심력이 됐다면 14만 명의 조직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법외노조가 약간 불리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 지부들이 나름의 활동을 잘 하고 있다. 법외노조라 할지라도 기관장과 교섭할 때는 교섭하고 노사협의 할 땐 하면서 직원들의 복지 같은 부분을 충분히 협의하고 있다. 법외노조라고 해서 조직의 원심력이 바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본조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국가부채, 공무원에게 떠넘기기다

최근 정부는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려는 하는데 공무원노조의 입장은 어떤가.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국민연금, 기초노령연금이 다 공적연금인데 공적연금의 기본적인 틀은 유지돼야 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그게 국가에 이익이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데 그걸 복지예산으로 충당한다면 무한정 세금이 들어간다.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과 특성이 다르다. 일반직 공무원들의 임금은 100인 이상 기업의 임금에 76%밖에 안 된다. 보수가 그만큼 적고 퇴직금도 없다. 또 공무원들은 영리 행위나 겸직을 할 수 없다. 노동기본권도 전혀 없다. 이런 점들을 공무원연금으로 해결한다.

그런 건 쏙 빼고 단지 공무원연금 가입자가 국민연금 가입자보다 많이 받는다는 이유만 댄다. 외국에 비하면 공무원연금을 적게 받고 있다. 또 공무원들이 국민연금 가입자보다 기여금을 2.6배 더 낸다. 정부가 부담하는 비율이 우리나라는 공무원 1, 국가 2 수준도 안 된다. 독일은 전액 정부가 부담한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나라가 없다. 일본만 해도 서너 배 정도 된다. 우리나라 정부가 가장 낮게 부담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란이 생긴다.

정부가 이런 논란을 만드는 것은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어서다. 부자감세나 4대강 등의 사업을 하면서 생긴 재정 파탄의 책임을 공무원연금으로 돌리고 있는 거다. 굉장히 전략적으로 공무원과 국민들을 이간질 시키고 있다.

국가부채가 1,117조 원이고 그중 공무원연금이 절반을 차지한다는데, 기여금은 한 푼도 계산 않고 지출할 것만 계산한 거다. 기획재정부가 정부 재정지출의 문제에 대해 설문조사한 것에도 공무원연금은 아예 들어 있지도 않다.”

공무원연금의 적자를 줄여나가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나.

“정 공무원연금의 적자를 줄이기 위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면 보수를 현실화하고 퇴직금이나 4대 보험도 국민들과 같이 해줘야 한다. 실은 이렇게 하면 재정지출이 더 많다. 지금의 공무원연금 제도를 유지하는 게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익이다.

정부가 부자에게 세금을 적게 걷기 위해서 현재의 연금에 대한 지출을 아예 안 하고 미래에 떠넘기려는 거다. 국민연금도 똑같다. 공무원연금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향후에 국민연금도 주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가가 현재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거고 미래에는 더 지지 않겠다는 거다. 지금 당장은 정부 안대로 개혁한다고 치자. 그 다음엔 어쩔 건가.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공무원들의 직업적 안정성이 깨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무원들이 노후를 지탱하는 유일한 수단이 공무원연금인데 연금을 적게 받는다면 향후 공무원들에게 범죄자가 되라는 것이다. 노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니 국가 돈에 손을 대거나 뇌물을 받는 등의 범죄를 양산하게 된다. 그것은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다. 정부는 이러한 논란 과정에서 공무원연금을 때려잡는 게 아니라, 연금제도가 무엇이고 어떻게 할 것인지 국민들과 합의해야 한다.”

왜곡 말고 근본적 논의해야

정부가 국민과 합의해야 한다면 합의의 방향은 어떤 방향이어야 한다고 보나.

“공무원연금 개혁의 방향은 크게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모수개혁, 국민연금과 통합하는 방식의 구조 개혁이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도 구조 개혁을 하는 나라들이 많다. 그런데 구조 개혁을 하려면 보수 현실화와 퇴직금 문제, 4대 보험 문제 등 여러 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당장 돈을 주기 싫은 거다. 미래에는 더 주기 싫고. 정부가 책임지지 않으니 근본적인 논의를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러다보니 재정 파탄의 원인이 공무원연금이라는 이슈를 만들면서 그걸 삭감해야 된다는 논의밖에 못하는 거다. 정부는 진정한 개혁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본다. 단지 정부의 재정 적자를 벗어나기 위해 미래에 지출할 공무원연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거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공무원들의 보수가 일정하게 올랐지만, 그 전에는 굉장히 낮았다. 이런 걸 감안해서 공무원연금을 후하게 계산했던 거다. 지금은 모수개혁을 하면서 계속 줄이고 있지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받지 말라고 한다면 이처럼 억울한 게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공무원들은 공직에 있을 이유가 없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메리트가 없어지게 된다.

구조 개혁은 얼마든지 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정부가 현재 부담할 부분을 부담하면 된다. 그런 준비가 안 돼 있다면 공무원연금에 손대면 안 된다.”

공무원 개혁에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위기인데 어떻게 의식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보나.

“참 무거운 얘기다. 국민들의 인식은 연금 문제뿐 아니라 전반에 놓고 같이 고민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행정을 집행하다 보니까 공무원연금과 관련해서 국민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권리나 의식이 높아지는 만큼 같이 고민해야 한다.

정부나 언론이 왜곡만 안 하면 국민들과 공무원 사이에 적대감이 생길 이유가 없다. 정부가 당장 자기 책임 면하려고 공무원들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면 안 된다. 그건 불행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