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우리은행 냉장고에 넣는 묘수는?
‘공룡’ 우리은행 냉장고에 넣는 묘수는?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05.0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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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수량 경쟁입찰, 우리은행 민영화 방식의 새 제안
정부 입장은 아직 불투명…노조는 숨고르기
[분석 2] 우리은행 매각

ⓒ 금융노조
IMF 외환위기 이후 부실 금융기관에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투입된다. 구 한빛은행에는 출자·출연금 7조9,058억 원, 평화은행에 8,316억 원, 경남은행에 3,528억 원, 광주은행에 4,418억 원, 하나로종금에 3조2,343억 원 등 모두 12조7,663억 원에 달한다. 금융당국은 2000년 말 ‘제2단계 은행 구조조정 추진 방향’을 발표하면서 5개 금융기관을 정부 주도로 금융지주회사에 편입한다. 현 우리금융지주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세 차례 매각 실패가 오히려 관심거리

2001년 지주회사 설립 당시에는 우리금융지주의 지분 100%를 예금보험공사(예보)가 가지고 있었다. 이후 2010년까지 국내 공모와 4차례에 걸친 블록세일로 일부 지분을 매각하고, 현재는 56.97%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2014년 2월말 기준으로 4억5,900만 주, 약 5.5조 원의 규모다.

예보가 보유한 잔여 지분의 매각은 그 뒤에도 계속 시도된다. 2010년과 2011년, 2012년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매각이 추진되지만 실패한다. 우리금융 민영화와 관련해 특히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오히려 실패한 세 차례의 시도이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2013년 9월 기준으로 시장점유율이 약 18.7%에 달하는 공룡 은행의 재매각이라는 점에서 각 이해당사자들의 정치적 관계가 얽혀 있다. 지역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지방은행 역시 매각 대상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분산매각 방식인지 아니면 이른바 ‘메가뱅크’ 논란을 불러일으킨 일괄매각 방식인지와 같은 매각 방안에 대한 논란도 뜨거웠지만, 세 차례의 민영화 시도가 불발로 돌아간 이면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깊숙이 작용했음을 각 이해당사자들도 시인하고 있다.

내외의 가변적인 환경은 차치하고서라도, 근본적으로 우리금융 민영화 이슈는 법에 명시된 기본 원칙에 입각해 추진돼야 한다. 문제는 이 3대 기본 원칙의 내용이 상호 충돌하는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에 혼선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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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원칙, 서로가 서로를 가로막다

금융지주회사법 부칙 제6조 제1항에는 “2000년 11월 24일 이후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예금보험공사가 금융지주회사를 지배하는 주주가 되는 경우 예금보험공사는 공적자금 회수의 극대화, 해당 금융지주회사의 빠른 민영화 및 국내 금융산업의 바람직한 발전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보유주식을 처분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른바 우리금융 민영화 3대 원칙이라고 불리는 ▲ 조기 민영화 ▲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 국내 금융산업 발전 등의 서로 상충되는 내용은 해당 부칙이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되는 가운데 등장하게 된다.

2000년 10월에 제정된 금융지주회사법 부칙 제6조는 “금융지주회사법 시행 후 정부가 금융지주회사를 지배하는 주주가 되는 경우 정부는 그 보유주식을 단계적으로 3년 이내에 처분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3년 내 매각하지 못할 경우 다음 1년 이내에 잔여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고도 돼 있다.

2005년 1월에 개정된 같은 법 부칙 제6조에선 정부가 보유주식을 단계적으로 처분해 5년 이내에 지배주주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민영화 시한을 좀 더 연장시키고 있다. 당시 개정법에서도 1년 이내로 기한을 연장해 사실상 6년의 시간을 벌어 놓았다.

하지만 2008년 3월에 법이 다시 개정된다. 여전히 시한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금융 민영화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목일 텐데, 아예 기간의 정함을 두지 않고 앞서 언급한 3대 원칙에 입각해 매각을 추진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조기 민영화를 위해 부적합한 대상에게 은행 지분을 매각하자니, 공적자금회수 극대화에 문제가 생길 뿐더러, 국내 금융산업에 저해를 끼칠 수 있다. 그렇다고 공적자금회수나 금융산업 발전에만 신경을 쓰면서 맞춤한 대상이 나올 때까지 마냥 민영화를 늦출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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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은행 민영화는 일반 공기업이나 비은행 금융기관의 경우보다 매각 방안이나 절차를 설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중론이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산업연구실장은 “은행은 한 국가의 지급결제 및 금융,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핵심 채널이기 때문에 국가기간산업 인수자에 준하는 엄격한 적격성 심사를 인수 희망자를 대상으로 실시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적격 인수자 선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김 실장은 “은행은 일반 금융거래자를 대상으로 보편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여론의 향배가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쟁입찰의 요건도 지켜야 한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시장의 여건이 법에 명시된 요건을 충족할 만큼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금융 민영화는 번번이 실패했다”며 “금융위원회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법으로 정한 매각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책임과 비난 때문에 우리은행을 매각하는 데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주체가 진즉 ‘매각 불능’을 선언했다면 법 개정에 대한 논의라도 진행됐을 것이란 의미다.

희망수량 경쟁입찰, 정부 새 방안 될까?

금융위원회는 지난 해 6월 우리금융 민영화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지주회사 일괄매각 대신 자회사 분리 매각 방식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지방은행과 비은행 자회사의 매각이 우선 진행됐는데, 광주은행과 경남은행은 JB금융지주(전북은행)와 BS금융지주(부산은행)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이다.

우리파이낸셜은 KB금융지주, 우리자산운용은 키움증권과 계약이 체결됐으며, 우리투자증권, 우리아비바생명, 우리금융저축은행은 NH농협을, 우리에프앤아이는 대신증권을 각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에 반해 민영화 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논외로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수월했던 자회사 민영화 과정에 비해 우리은행의 민영화는 과연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우리금융 민영화 추진 방안에는 ‘우리은행’을 어떻게 매각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런 가운데 지난 3월 26일 한국금융연구원이 주최한 ‘바람직한 우리은행 민영화 방안’ 토론회에서 발제와 토론을 맡았던 전문가들은 그간의 민영화 실패 사례와 현 시장여건 등을 감안할 때 우리은행의 ‘일괄매각’은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산업연구실장은 “이론적으로는 금융업에 대한 사명감과 경영능력이 검증된 국내외 과점적 투자자들에게 우리은행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이 우리은행과 국내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나, 제반 여건상 성공적인 민영화 달성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세계 50대 은행이나 국내 4대 은행 금융지주의 소유구조를 살펴봤을 때, 단독주주가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배 지분(50% 또는 30% 이상)을 소유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우량투자자에게 분산 매각해 5~10개의 과점적 대주주 그룹을 형성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양상은 결과적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우리은행 매각을 위해 금융당국이 인위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기엔 제약이 따른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산업 수익성 저하 등 최근의 불확실한 시장여건에서 다수의 과점적 투자자를 확보하는 게 불투명한 현실이다.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우리금융 민영화 이슈를 살펴볼 때 ‘매각방식’과 함께 고려되어야 할 부분은 ‘입찰방식’에 대한 내용이다. 김 실장은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은행 매각 방식의 장단점을 아우를 수 있는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을 새로운 방안으로 제시했다. 희망수량 경쟁입찰은 1인이 소화할 수 없는 특정 물건이 가분성이 있는 경우 분할하여 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식이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을 민영화하기 위해선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의 규정에 따라야 한다. 그간 우리금융 민영화 시도에서는 일반 경쟁입찰 방식을 고수했기 때문에 실패의 요인이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은행을 사들일 시장의 수요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에서도 단가의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소 단위당 높은 가격을 제시한 이부터 제시한 단가에 제시한 물량을 매입하는 방식이다. 특히 입찰 참가자의 희망 물량의 총합이 전체 매각 물량에 못 미치더라도 희망 물량까지만 매각이 가능하다.

이는 전략적 투자자, 재무적 투자자 등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투자자들을 동시에 수용하면서, 경쟁 속에 입찰을 진행하기 때문에 이른바 민영화 원칙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다.
MOU굴레도 벗고, 독자생존도 해야 하고…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숨을 고르고 있다. 특히 그간 여러 차례 진행된 민영화 시도를 통해 ‘독자생존 민영화’라는 노동조합의 입장이 잘 알려져 있고, 집행부가 교체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큰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 관계자는 “다른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보호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입장은 여전하다”며 “최근 서울시금고 유치를 재계약한 사례만 보더라도, 우리은행은 115년 역사의 전통으로 충분히 독자생존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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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우리은행의 민영화가 마냥 미뤄지는 것은 은행 구성원들에게 큰 부담이다. 특히 예금보험공사와 체결된 MOU를 통해 은행의 대소사가 제약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구성원들의 피로감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우리은행지부 관계자는 “2013년 임금협상을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는데, 한 해의 수익이 MOU보다 못 미치는 경우 사실상 구성원들에게 성과배분이 돌아가지 못하는 구조”라며 “하다못해 은행 광고를 내는 것과 같은 영업활동에서부터 직원들의 임금과 복지, 은행의 사회적 활동에 이르기까지 MOU의 제약 때문에 위축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말했듯 금융당국은 ‘우리은행’ 민영화에 대한 계획을 아직 확정짓지 못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올해 상반기 중 우리은행 매각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이달 말 예정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회의에서도 우리은행 민영화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방은행의 경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실사까지 완료됐음에도 ‘완전 매각’의 발목을 잡고 있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급속히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우리은행의 매각 절차도 급물살을 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반면 6월 지방선거 등 정치적 이슈를 앞두고 있는 와중에, 과연 우리은행 매각과 같은 ‘빅 매물’의 처리가 가능할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2012년 말 기준 1만5천여 명의 우리은행 임직원들의 이목이 우리은행 민영화에 쏠려 있다.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민영화 시도가 무산된 만큼, 이번에는 3대 원칙을 충족하는 민영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