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 ‘사람’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 승인 2006.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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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광주’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 제작하는

기획시대 이수남 프로듀서




“저희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돌아가신 아버지를 지금 생각한다고 해서 누가 저에게 ‘왜 지금 아버지가 생각나느냐’고 묻지 않잖아요. 저한테는 5·18도 그런 느낌이에요. 왜 지금 5·18이냐고 묻는 것이 더 이상해요.

 

개인적으로 살면서 결정적인 판단을 할 때가 많잖아요. 선택이나 타협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자기 길을 가야할 때도 있을 것이고. 제 개인적으로 그런 경우에 5·18을 비롯한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은 저한테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것 같아요.”

 

기획 준비 기간만 2년 6개월. 몇 차례의 제작방향 및 시나리오 변경. 총 제작비 100억 원 투입 예정. 2006년 6월 크랭크인.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를 다룰 영화 <화려한 휴가>가 관객들을 만나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했다. 기획시대가 준비 중인 영화 <화려한 휴가>는 ‘시민군’의 존재를 그려낼 예정이다.


<화려한 휴가>의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기획시대 이수남(38) 제작이사를 만나 영화 속에서 그려질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을 들어봤다.

 

100년이 흘러도 5·18은 ‘5·18’
“왜 하필 지금 5·18이냐?”
5·18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동안 이수남 프로듀서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지금에 와서 5·18을 다루면 안 되냐?”고 반문하는 이 프로듀서는 오히려 그런 질문들을 받으면서 ‘왜 지금 5·18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결론은 5·18은 20년 전에도 그랬고, 100년 후에도 ‘5·18’이라는 거다.


사람들은 5·18을 두고 정치적, 학문적으로 다양하게 의미를 부여하지만 ‘5·18’이란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그 속에는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화려한 휴가>는 그 사람들을 이야기 하고 싶다는 설명이다.


이 프로듀서는 그들의 삶에서 ‘희망’을 보았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5·18의 기본정신이라고 그는 말한다. 본인들이 ‘개죽음’을 당하리란 사실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 있었던 것은 죽음이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그들의 모습에서 때로는 역사의 진보 내지는 다른 것을 위해서 나를 헌신할 수도 있다는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었고, 그 정신이야말로 존중받아야 할 최고의 가치라는 것이다.

 

시민군이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 <화려한 휴가>는 ‘시민군’의 존재를 다룬다. 그러나 항쟁지도부 등 특정인물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들불야학의 윤상원 열사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다. 하지만 윤 열사의 아버지 윤석동 옹은 “광주는 상원이만의 것이 아니고 광주시민 모두의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결국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했다.


“지금의 5·18은 정작 제일 중요한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 그 시민군이란 존재에 대한 관심은 없어요. 그들이 있기 때문에 전두환은 처벌이 끝난 것이 아니에요. 그들이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이 있기 때문에….”


평화롭고 평범한 일상을 살던 시민들이 어느 날 느닷없이 몰아닥친 계엄군의 진압과 학살이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들의 웃음과 가족, 평화를 잃어가는 과정과 또 그런 것들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이 프로듀서가 말하고 싶은 바다.

 

혼란 상황에서도 공동체적인 우정과 사랑이 존재했고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헌신적인 의지, 가족을 뺏앗아 간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 등.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질 수 있는, 광주의 가장 평범했던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들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들이 결국 5·18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이 프로듀서가 말하고 싶은 것은 5·18이 아니다.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않느냐고 말한다. 1980년 5월이나 지금이나.

 

상업적인 영화로 대중과의 소통
5·18에 대한 해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5·18’이란 단어 하나에 격앙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5·18을 다룬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부담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영화의 주요 타깃층이 10대와 20대에요. 그들은 5·18이란 보통명사는 알아도 깊이 있는 내용은 모르는 세대죠. 그래서 어렵게 풀지 말자고 생각했죠. 우리가 익숙하다고, 우리가 아는 사실이라고 해서 그들도 안다고 생각하지 말자고.”


이 프로듀서는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7000원을 지불하는 문화행위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5·18이란 역사적 사실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 그래서 예술영화가 아닌 상업영화를 만들게 됐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상업영화로 대중들에게 5·18 시민군의 존재를 알리고자 한다.


“대학교 때 마당극을 했어요. 매번 똑같은 사람이 와서 반 이상은 다 아는 사람들이더라고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아는 사람들이 매번 오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영화나 광고를 통해서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이 궁금해졌죠.”


이제 이 프로듀서는 10여 년간 영화판에서 배운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5·18을 이야기하려 한다. 사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조용히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이 프로듀서는 <화려한 휴가>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재미’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