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인가, 역량 향상인가
퇴출인가, 역량 향상인가
  • 박상재 기자
  • 승인 2014.06.0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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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프로그램 통한 인력감축에만 급급해
교육 프로그램은 찾아보기도 힘들어
[분석 5] 저성과자 재교육 프로그램

ⓒ 참여와혁신 포토DB
전반적인 경기 침체와 그로 인한 구조조정이 닥칠 때면 함께 나오는 것이 있다. 바로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당사자들은 ‘퇴출’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저성과 관리 프로그램이 ‘퇴출’프로그램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이고, 본디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의 구성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은 여러모로 가능하겠지만, 전반적으로 알려진 분류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퇴출접근법, 둘째는 육성접근법이다. 퇴출접근법에는 정리해고 및 권고사직을 통해 비효율적인 인원을 즉시 퇴출하는 ‘Lay Off’ 방식이 있고, 재취업정보를 제공하면서 장기적으로 퇴직을 권장하는 ‘전직지원’ 방식이 있다.

그리고 육성접근법은 경력개선프로그램을 활용해 역량을 개발 기회를 제공하는 ‘경력 개선’방식이 있고, 계약직 전환이나 새로운 직급을 부여하여 자발적인 퇴직이나 적극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고용조건 변화‘방식이 있다.

여기서 ‘퇴출’프로그램이라 말하는 방식은 'Lay Off'방식과 ‘고용조건 변화’ 방식, 이 둘을 혼합한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 위에 언급한 네 가지의 방식 중 두 가지를 선호하는 이유는 Lay Off가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효과를 낼 수 있고, 고용조건 변화는 근로기준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자발적 퇴사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 시행이 결국 인원 감축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경수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대외협력국장은 “경영진이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감축하는 것이 높은 역량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분위기에서, 산업 전반적으로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인력 감축을 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름은 바뀌지만 목적은 같아

그렇다면 실제 이러한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이 각 회사에서 어떻게 운용되고 있을까. 논란이 된 회사 중 하나로 KT를 들 수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이해관 KT새노조 대변인은 “KT는 지분 매각을 거친 이후로 계속해서 퇴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며 “처음에 생긴 것은 ‘상품판매전담팀’이었지만 반발이 심해, 이를 해체하고 만든 것이 CP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이 또한 문제가 발생하자, 다시 생긴 것이 CFT인데, 사실상 이 셋은 모두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분류하자면 CP(C-Player), ‘상품판매전담팀’, 그리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CFT(Cross Function Team)는 모두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 중 ‘고용조건 변화’ 방식과 ‘Lay Off’ 방식이 결합된 모습을 보인다.
CP프로그램은 전 직원을 크게 A, B, C Player로 나누고, 그 중 C-Player가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의 대상이 된다. KT의 경우 C-Player를 퇴출 대상으로 삼았고, 이들을 비연고지로 전출해 자발적 퇴직을 유도했다.

KT새노조는 기자회견을 통해 청주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갑자기 발령을 받아 8년간 전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가족과 떨어져 지냈고, 그 결과 우울증으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요양 인정을 받을 정도로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는 등 비연고지 전출이 사실상 퇴출 프로그램임을 밝혔다.

그리고 법원도 이러한 프로그램이 불법적이라는 판결을 내놓았지만, 최근 KT는 다시 CFT 부서를 신설하고, 직원들을 모았다가 이곳을 통해 직원들을 비연고지로 재분배하며 퇴출 프로그램 운영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KT새노조 측은 CFT로 발령받은 직원들이 명예퇴직을 거부한 사람들로만 구성돼있고, 업무 내용을 물어봐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 등 사실상 퇴출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회사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끊임없는 ‘퇴출 프로그램’ 논란

금융권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이희원 IBK투자증권지부 사무국장은 “회사가 2011년부터 두 차례의 퇴출 프로그램을 시행하려고 했지만, 관련 자료가 유출돼 노조가 문제제기를 하자 이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IBK투자증권에서 비공개로 실시한 프로그램은 실적이 저조한 직원들에게 ‘주의 촉구’, ‘경고장’, ‘영업개선 명령서’ 순으로 압박을 가하고, 일정 기준에 미달할 경우, ‘대기명령’ 또는 ‘비연고지 발령’을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2차로 실시하려다 저지당한 ‘Asset Gathering 전담 PB’ 프로그램은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오전 8시 30분부터 당일 영업계획을 수립하고, 오후 5시까지 직접 고객을 찾아가 개인계좌를 개설하게 하는 ‘아웃도어 세일즈’ 업무를 맡기는 방식이다.

이러한 업무 방식은 모바일 상품이 발달하고, 인터넷 거래가 활발해지며 직접 대면 영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직원에게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고 강제적인 외근을 통해 이를 달성하도록 압박하는 방식이다. 심리적 압박을 가해 결국 퇴출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이에 대해 “일부 직원의 실수”라며 해당 직원을 3개월 감봉 처리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IBK투자증권은 이미 이러한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이 공개되기 전에도 ‘전략영업팀’이라는 부서를 신설한 적이 있었다.

이희원 사무국장도 일방적으로 해당 부서로 이동을 명령받고 실무를 경험했지만 사실상 ‘정리해고팀’이었다고 밝혔다. 업무 내용에 교육 활동은 없었고, 영업만을 전담했다. 그리고 목표 실적을 제시하고 이를 달성할 때까지 외근만 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현재 ‘전략영업팀’은 폐지됐지만 이에 대해 이희원 사무국장은 “이와 같은 ‘정리해고팀’은 언제든지 생겨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외에도 과거 2011년 SK투자증권에서는 ‘부진자클럽’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노조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고, 대신증권에선 회사의 ‘전략적 성과 관리 프로그램’을 발표했지만, 노조에서는 ‘상시 퇴출 프로그램’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등 저성과자를 둘러싼 관리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 KT새노조
불투명한 저성과자 측정 기준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의 운용 방식과 함께 문제되는 것이 ‘저성과자’를 분류하는 기준이 불투명하고 모호하다는 것이다.

김경수 국장은 “저성과자는 상대적으로 매기는 것이다 보니 1등과 꼴지의 차이가 미미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저성과자 관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성과들을 수치화하는 과정에서 작은 차이에도 등급이 나뉘고, 직원들은 그 미묘한 차이가 크게는 임금 삭감으로도 이어지며 큰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평가 기준이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회사가 이를 일방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회사와 직원 간의 불신은 점차 깊어진다는 것도 문제다.

KT새노조에서는 회사가 ‘개인별 선호도 조사’를 통해 각 지사의 직원들이 노동조합과 얼마나 친밀하고, 경영진이 통제할 수 있는지 등 개인적인 성향을 파악해 이를 악용하려 했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이는 업무와는 무관한 개인적 성향을 이용해 노조탄압을 시행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게 했다.
저성과자로 분류되는 기준이 단순히 영업을 통한 수익으로만 구성된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이해관 대변인은 “KT의 경우, 예를 들어 유지보수 담당 부서의 경우 전 지역으로 연결되는 회선을 관리하는데, 주어진 설계 도면대로 설치만 하는 업무인 만큼 능력에 따른 업무 성과를 구분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이 외에는 특별히 성과가 차이 날 만한 업무가 없으니 회사는 영업적인 측면에서 이들을 평가하려하고, 유지보수 부서 직원들이 핸드폰을 얼마나 팔 수 있는지 신경 쓰게 되는 상황도 있었다”고 밝혔다.

IBK투자증권의 경우도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프로그램의 경우 BEP 달성률(월급여 2.85배로 산정된 손익분기점 달성률)이 70% 미만인 직원을 대상으로 했고, KT의 CP프로그램, 대신증권의 ‘전략적 성과 관리 프로그램’ 모두 영업 실적이 부족한 사람을 대상으로 더 높은 성과를 가져오도록 요구했다.

업황을 고려하지 않은 목표 설정

이 과정에서 영업 실적을 무리하게 산정하고, 목표로 제시하는 것도 문제이다. 산업 전반적인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경영상의 어려움을 직원들에게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대외협력국장은 “저성과자라는 건 영업 실적이 실질적인 기준으로 설정됐지만, 전반적인 업황을 고려하지 않고 회사에서 기준을 정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저성과자로 분류된다”며 “현재 증권 업종은 정부의 증권회사 설립 기준 완화로 경쟁이 심화되고,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더불어 수수료 인하 등 출혈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회사가 이런 것들을 고려해 기준을 재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통신산업도 마찬가지다. 이해관 대변인은 “통신시장은 이미 가입자가 포화된 상태로, 회사들끼리 가입자를 뺏고 뺏기는 상황인데 이 상황에서 직원들이 영업 실적을 올리려면 불법적인 보조금을 얹어 줄 뿐”이라며 악순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산정한 무리한 실적 목표가 불법거래를 강요할 정도로 강한 압박을 하고, 이는 자발적 퇴사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인식개선이 우선돼야

LG전자에서는 최근 4월 연구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저성과자 역량향상 프로그램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포함된 직원들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고, 대상자 100명 중 일부는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결국 이것이 퇴출 프로그램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데 대한 직원들의 인식이 보이는 부분이다.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회사에서 ‘저성과자’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관리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문제에 앞서서, ‘저성과자’ 대상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인격적인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대외협력국장은 신한금융에서 진행하는 저성과자 재교육 프로그램을 예로 들며 “전국에 있는 교육 대상자들이 서울 본사로만 몰리면서 ‘저성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모멸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 KT새노조
또한 평가 기준이 상명하달식으로만 이뤄지면서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이에 대해 직원들이 납득하기 어려워한다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 한국GM사무지회의 경우, 임금 체계 개편과 더불어 평가 받는 당사자들이 평가 심사자를 다시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평가를 통한 성과 책정은 직원 전반적으로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불투명한 제도에 대한 불만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이 대부분 경영 악화 상황에서 단발적으로 시행되고, 단기간의 가시적 효과를 위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만 이용되고 있는 점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앞서 밝혔듯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은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직원들의 역량 향상을 노리는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역량 향상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은 중장기적인 계획을 통해 회사의 경영 상황과는 무관하게 진행돼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듯, 경영 악화 상황에서 진행되는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은 급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평가 기준이나 교육 프로그램이 무리한 실적만을 요구하는 방향으로만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이미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창조컨설팅과 같은 노무법인을 통한 일회성 구조조정 프로그램만 양산시킬 뿐이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이 희망퇴직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한 상황이다.

경영 악화로 고용 불안을 겪고 있는 직원에게 갑작스런 제도의 출현은 불안감을 가중시키며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경영 상황과 무관하게 이뤄지는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실질적인 업무 숙련도를 높이는 교육을 통해 직원들도 만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