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린 것도, 먹을 것도 없는 ‘상생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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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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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소기업 상생의 길은 없나_②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출범2년 성적표


계약 성사 실적조차 집계 안 된 박람회… 불공정거래 조정 건수는 2건 그쳐

 

정부가 대·중소기업 협력을 위해 설치한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이사장·윤종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운영 2년이 되도록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단 구성원에서부터 사업과 예산 모두가 대기업 중심이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


현재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협력을 위해 마련된 기구는 형식상 반민반관의 성격을 갖고 있는 대·중소기업협력재단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운영하고 있는 중소기업지원센터(센터소장·박종선)다. 이 중 전경련 산하의 중소기업지원센터는 전경련과 일부 대기업의 출연으로 운영되고 있어 구성원이나 사업의 내용이 대기업 중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이하 재단)은 사정이 좀 다르다. 2004년 12월 ‘중소기업의 사업영역보호 및 기업간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올해 2월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으로 개정)에 의해 설립된 재단은 산자부 법령에 의해 설치되었을 뿐 아니라 현재 예산도 100% 중소기업청에서 지원받고 있다. 정부 예산은 2004년과 2005년에 각각 20억원이 지원됐으며 올해 예산도 20억원이 반영되어 있는 상태. 재단 출범 당시 150억원의 기금 출연을 약속했던 대기업들은 2006년 5월 현재까지 전혀 기금을 출연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외형상 ‘반민반관’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사실상 중소기업청 소속 기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기업 입맛대로 참가업체 선정하는 ‘상생박람회’
재단 설립 당시 김성진 중소기업청장은 “대·중소기업 간 실질적 협력을 유도하고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윈윈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며 “중소기업 입장에서 대·중소기업 간 협력을 촉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에 의해 재단이 설립된 만큼 큰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단 출범 2년 동안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진행된 사업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미미하다.


재단의 주요사업은 △대·중소기업 간 기술·인력·판로 등 협력사업 알선 △우수 협력모델 발굴·홍보 등을 통한 협력분위기 확산 △협력 활성화 및 거래 공정화를 위한 조사 및 분쟁조정 지원 △정부, 경제단체, 대·중소기업 간 협력 네트워크 구축 등이다.


이 중 우수 협력모델 발굴과 협력 네트워크 구축의 실적은 거의 없고, ‘대·중소기업 간 기술·인력·판로 등 협력사업 알선’을 목적으로 실시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박람회’만이 2년째 꾸준하게 이어지는 사업이다.


그러나 박람회마저도 대기업 중심이라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2005년 11월 개최된 ‘제 1회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박람회’에는 유통업체를 비롯한 46개 대기업과 1천여 개의 중소기업이 참여했다.


하지만 박람회를 통해 실제 거래가 성사된 사례는 재단측마저 집계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단 기술협력팀 관계자는 “대기업에 비해 워낙 많은 중소기업이 참여했고, 예약을 통해 이뤄진 거래와 현장에서 이뤄진 거래 등이 혼재해 있어서 아직도 정확한 실적을 집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 2회 박람회(6월 7일~8일)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박람회 실적조차 집계되지 않은 것은 사업의 실효성을 의심케 한다는 지적도 많다.
지난해에 박람회에 참여했던 소프트웨어 공급업체 A사 김모 사장은 “박람회 참가 기간 중 몇 곳에서 형식적인 연락이 오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계약으로 이어진 것은 한 건도 없고 오히려 이런저런 문의와 요구사항 때문에 예산과 시간만 낭비한 셈이 됐다”고 말했다. 이 기업은 올해 열리는 박람회에는 지원 신청을 하지 않았다.


정밀기기제작업체 B사의 윤모 사장은 “꾸준한 판로 개척을 위해 참여했지만 한 번의 상품 구매만 있었을 뿐 이후의 실적은 전혀 없는 상황”이라면서 “상생박람회는 대표적인 보여주기식 행사”라고 꼬집었다. 윤 사장 역시 올해에는 박람회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올해는 아예 참여기업을 대기업이 선정한 기업으로만 한정했다.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영역과 분야를 선정해 발표하고 중소기업들이 여기에 맞춰 지원을 하면 또 다시 대기업이 참가업체를 심사해서 걸러내는 방식이다.
재단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수요를 바탕으로 해야 실질적인 구매가 이뤄질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지만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상생박람회가 대기업 위주의 시혜성 행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불공정거래? “딴 데 가서 알아봐”
재단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협력 활성화 및 거래 공정화를 위한 조사 및 분쟁조정 지원’ 실적은 더욱 심각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납품단가 인하, 특허 분쟁 등의 불공정거래 행위는 현장의 중소기업인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대·중소기업 간 협력의 걸림돌이다. 이들 사이에서 발생한 불공정거래의 분쟁 조정은 재단 설치 전에는 중소기업청에서 맡아하던 업무였다가 2005년 7월부터 재단 내에 ‘분쟁조정협의회’를 설치해 업무를 이관했다. 하지만 2005년 중소기업청 국정감사 자료에 나타난 분쟁 조정 실적은 공정위 조사가 3건, 사전합의를 통한 고발 취하가 2건, 협의회 조정 중인 사건 2건에 불과하다. <표참조>


매년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거래 행위로 고발되는 사건의 건수가 1600건 이상임을 감안하면 분쟁조정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지표다.
중소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설치된 재단이 대기업 중심의 사업을 벌이고 불공정거래 행위 등 중소기업인들의 실질적 고충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재단의 출발부터가 중소기업 중심이 아니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현재 재단 이사진의 구성을 보면 중소기업대표 2인, 대기업 임원 2인, 정부부처 4인, 경제단체(경제5단체+여성경제인협회) 임원 6인, 중소기업연구원 1인으로 중소기업 경영인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창구는 턱없이 부족한 것.


‘상생’과 ‘협력’을 위해서는 양 당사자가 동등한 입장에 서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안 그래도 약자인 중소기업인들의 목소리는 오간 데 없이 대기업 위주로 진행되는 협력 사업이 알찬 ‘상생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