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상생협력’ 뒤에선 ‘발목잡기’
앞에선 ‘상생협력’ 뒤에선 ‘발목잡기’
  • 승인 2006.05.3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중소기업 상생의 길은 없나_③ 대기업 반칙 백태


거짓 계약부터 기술 빼가기까지

 

정부가 대·중소기업 협력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중소기업 육성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넓어지면서 대기업들도 속속 ‘상생경영’을 표방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주요 대기업들이 그룹차원에서 ‘상생경영’을 경영모토로 선언하고 계열사에도 이를 전파하고 있다. 삼성의 ‘상생과 나눔의 경영’, 현대자동차의 ‘상생투명경영’, LG의 ‘정도경영’, SK의 ‘행복동반자 경영’에 이르기까지 대기업들이 앞다퉈 중소기업들과의 협력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 보면 실질적인 협력이 이뤄지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10대 대기업 중 그룹사 차원에서 협력업체와의 협력을 위한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있는 곳은 두 곳뿐으로, 절반 이상의 대기업들이 전담부서마저 없는 상황이다.


정작 문제는 ‘상생’을 표방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기업들에서조차 불공정거래 시비와 이로 인한 중소기업들의 도산이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거래로 접수되는 사건이 1년에 1600건을 훨씬 넘어서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건 서류는 ‘혐의불충분’ 도장이 찍혀 소송 제기자의 손으로 돌아가거나 몇 년이 지나도록 먼지만 쌓인 채 결론을 보지 못하고 있다.

 

case1. 대기업 S사와 네트워크운영업체 A사
어려울 때 분사했다가 커지니까 견제
종합 네트워크 솔루션업체인 A사는 대기업인 S사의 네트워크운영 부문이었다가 1999년 기업구조조정계획에 따라 분사된 업체다. 당시 분사대상 직원들은 분사계획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하다가 “분사 후에도 S사의 네트워크 사업부문 위탁은 물론 5년 후 코스닥 등록을 목표로 지원 및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제안함에 따라 27명의 분사인력이 퇴직금을 투자해 사원주주회사로 A사를 설립했다.


S사와 A사의 초기 2년간 위탁업무 계약 이행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A사는 S사의 네트워크 부문 운영 외의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2002년 말에는 직원수 300명, 매출액 208억원, 순이익 12억원 규모의 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A사는 분사 당시의 계획에 따라 코스닥 등록을 추진해 2002년 3월 주주총회를 통해 이를 공표했다. 그러자 S사의 태도가 돌변했다. 기존에 1년 단위로 갱신하던 계약을 1개월 단위로 연장하면서 위탁계약 체결을 미루기 시작한 것. 급기야 같은 해 8월에 S사는 구조조정본부의 독과점 방지 지시를 이유로 A사에 기업 분할을 요구했다.


A사는 “코스닥 등록 절차까지 밟고 있는 우량기업을 강제 분해시켜 직접 지배하겠다는 의도”라며 반발했다. 그러자 S사는 분사 당시 A사에게 떼어준 특정 업무를 다시 A사에서 떼어내 전담회사를 신설키로 했다며 필요 인력과 관련 자산 이관을 요구했다. A사가 이를 거절하자 S사는 2003년 3월에 공문을 통해 해당 업무에 대한 위탁 계약을 종료한다고 통보하고 S사의 전략기획실장을 대표이사로 해 신설회사를 설립했다.


새 회사를 설립하면서 S사는 A사의 기술 담당 상무를 회유해 A사의 핵심인력들이 새로 설립된 회사로 이직하도록 종용했고 A사는 사내 직원들의 동요 수습과 업무위탁계약 유지를 위해 어쩔 없이 해당 인력과 업무를 S사가 새로 설립한 회사에 양도했다. 핵심 사업을 넘겨주게 된 A사는 연매출 48억원 (영업이익 15억원)의 영업기반을 한꺼번에 잃었고 사업 양도 이후 2년간 매출액은 총 -140억원, 세전이익은 총 -2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A사는 2005년 S사를 대상으로 ‘영업양수도 무효 확인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해당임원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고소했다. 또, 공정거래위원회에 ‘기타 거래의 거절, 인력의 부당유인·채용, 경영간섭, 부당자산지원’등 S사의 불공정거래행위를 신고했다. 하지만 공정위에서 돌아온 답변은 ‘혐의불충분’이었고 A사는 법정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망연자실하고 있는 상태다.

 

case2. H사와 중장비업체 J사 사례

추가계약 빌미로 단가인하 요구, 추가계약 커녕 계약금도 못 받아
화물열차, 중장비 등에 부속되는 부품이나 시설을 생산했던 J산업은 1990년대 후반 다른 중소기업들이 IMF 외환위기로 휘청거릴 때도 적자 한 번 내본 적 없는 우량 중소기업이었다. 그러나 1999년 대기업인 H사와 오스트리아에 수출할 화물열차에 부착될 리프팅 장치 제조에 대한 하도급 계약을 맺은 후 1년 만에 최종부도를 맞았다.


H사는 계약 체결 전 하도급 가격을 시가보다 아래로 낮춰달라고 요구했고, J사가 난색을 표하자 계약서에 “추가로 발주한다”는 조항을 삽입해 계약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추가 발주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J사는 이로 인해 10억원 상당의 손해를 보며 납품을 해야 했다.


납품 이후 H사가 제공한 도면에 하자가 있어서 제품을 다시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H사는 “도면하자로 인해 든 추가 비용은 나중에 정산해 주겠다”며 재제작을 요구했다.


J사는 H사의 말을 믿고 36억원의 추가 비용을 들여 다시 제품을 제작해 납품했다. 하지만 J사는 H사로부터 추가 제작비용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 원래 계약대금이었던 29억원도 제때 지급되지 않아 J사는 2000년에 끝내 최종 부도를 내고 말았다.


J사의 사장은 H사에 대해 민·형사상 고소는 물론, 공정거래위원회에도 신고하지 않았다. 30여 년의 중소기업 사장 생활동안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몸소 체험했기 때문. 이 회사 이모 사장은 “대기업과의 소송을 담당해 주겠다는 변호사도 찾을 수 없을뿐더러 설령 변호사가 나타난다고 해도 이길 리가 만무하다”며 “대기업의 양심을 믿고 계속해서 대금 지급을 호소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case3. 대기업 K사와 전화기제조업체 T사 사례
핵심 아이디어 다 빼가고 다른 업체와 계약 체결

전화기제조업체 T사는 국내 최초로 유선문자메시지 전화기를 개발, 지난 2002년에는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수출 인큐베이팅 대상업체’로 선정되기도 한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이다.


통신대기업인 K사는 지난 2002년 새로운 서비스 개시를 위해 T사에 전화기 4만대 제작 준비를 지시했고 이에 따라 T사는 1차로 2만대 생산에 들어갔다. 하지만 K사의 예상과 달리 제품의 판매 실적이 저조해 800대 가량만 판매가 됐고 T사는 나머지 1만9200대(약 21억원 규모)의 재고를 떠안았다. T사가 K사에 재고 소진을 요구하자 K사는 사은품 용도로 1300대를 계약했지만 610대만 구매하고 나머지 690대에 대해서는 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미 재고로 인한 손해를 떠안은 T사는 K사의 새제품 출시 제안에 따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T사가 K사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두 회사가 같이 워크숍을 진행하는 등 T사의 핵심 아이디어는 이미 K사에 넘어간 상태.


이런 상황에서 K사가 새제품 제작을 맡을 업체를 공개입찰하면서 T사에도 참여를 요청했지만 결과는 T사의 탈락이었다. 결국 T사는 핵심 아이디어는 모두 제공한 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됐다. T사가 제공한 아이디어로 K사가 출시한 제품은 현재 K사의 간판 제품으로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이에 따라 T사는 지난해 5월 K사를 불공정거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고 중소기업청장과 정보통신부 장관 앞으로 민원을 제출하는 등 관계 기관이라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1년이 지난 현재까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심의중’ 문패를 단 채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중소기업과의 특허분쟁, 지쳐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라!
이처럼 규모와 자금력을 이용한 대기업들의 교묘한 횡포는 중소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최근 늘고 있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의 특허권 분쟁에 있어서 대형 로펌이나 법률 전담팀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과 달리 변호사 하나 구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은 일방적으로 당하기 일쑤다. 심지어 일부 대기업에서는 이런 중소기업들의 허점을 이용해서 특허권 분쟁을 일부러 길게 끌고 허점 발견을 위한 ‘전략’을 연구하기도 한다. 지난해 3월 국내 유수의 대기업인 L사는 그룹사 특허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특허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이 세미나의 내용은 공공연하게 중소기업의 허점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채워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박스참조>


특히 이 그룹은 ‘정도경영’을 모토로 삼고 전경련의 중소기업지원센터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외형상으로는 중소기업과의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그 진의를 더욱 의심스럽게 한다.


대기업과의 불공정한 거래에서 피해를 입었다는 중소기업인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그래도 대한민국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믿으며’ 각종 소송에 나서고 있었고 또 다른 부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성서에나 있는 일’이라며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문제는 최근 들어 후자의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 대기업을 고소한 일로 검찰에 불려갔다가 “당신 미쳤어? 이건 검사 10명이 매달려도 기소 못 해!”라는 검사의 일갈을 듣고 왔다는 한 중소기업 사장의 말처럼, 이들은 ‘대기업의 양심’에도 ‘대한민국의 법’에도 기대지 못한 채 거리로 밀려나고 있다.     

 

                                  

 

L그룹 <특허전략 세미나(2005년 3월 30일)>
특허담당 K부장의 공개강좌 내용

 

“중소기업 또는 개인발명가들이 많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찾아온다. 이 때 그 기술이 좋다는 내색을 하지 말라.”
쪾“중소기업과 특허 분쟁이 발생하면 즉시 특허권리 무효 심판 청구를 해 놓고 시간 끌기 작전으로 몰고 가면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도중에 포기하든가 특허기술을 헐값에 넘기게 될 것이다.”


“특허분쟁 때 특허청구 범위를 꼼꼼히 살펴보면 허점이 보일 것이다. 세상에 허점이 없는 특허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허점을 노려라.”
쪾“시간을 끌면서 의견서를 많이 제출하도록 하는 것도 작전이며 제출된 의견서에서도 허점이 보일 것이다.”


“특허청 심사관들이 심사할 때 한건, 한건 보지 않는다. 5건씩 펼쳐 놓고 대충 넘긴다. 심사관들이 거절을 몇 건 했느냐에 따라서 인사고과가 올라간다.”

 

강연 발췌록 제공 : 대중소기업상생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