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감리 부문 유일 공공기관, 반드시 존속돼야
건설감리 부문 유일 공공기관, 반드시 존속돼야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07.1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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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행궁동에 예술 심으며 시작한 이웃과의 삶
[인터뷰] 허진영 한국건설관리공사노조 위원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세월호 사고 이후 재난, 안전 관리 부문에서 정부의 무능력한 모습은 전 국민을 경악시켰다. 2013년 노량진 수몰사고(7명 사망), 방화대교 남단 교량 상판 붕괴사고(2명 사망), 부산 남북항대교 접속도로 철골구조물 붕괴사고(4명 사망), 2014년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사고(10명 사망) 등, 건설 현장에서도 부실 감리로 인한 부실시공으로 대형 건설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감리 부문의 유일한 공공기관인 한국건설관리공사의 민영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08년 MB정부 시절의 이른바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이미 5차례 매각이 추진됐지만 모두 무산된 바 있다.

정권은 바뀌어도 정책은 죽지 않아~

“이미 다섯 차례의 매각 절차가 모두 유찰됐던 것을 보아도 민영화의 명분이나 실리 양쪽 다 없다는 게 드러난 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정권에서 추진한 ‘선진화 방안’은 계속 진행형입니다.”

허진영 한국건설관리공사노조 위원장은 매각 공고를 앞두고 있는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건설업 경기가 바닥세인 가운데, 전국의 650여 개 건설감리 업체 중 5위권에 드는 감리회사도 매물로 나왔다가 팔리지 않아 파산 절차에 들어가는 실정이다. 규모나 기능 면에서 이보다 떨어지는 공사 매각의 경우, 자금 운용과 같은 수상한 목적을 가진 업체들 외에 마땅한 선수가 나서지 않는 게 당연하단 얘기다.

지난 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대형 건설사고를 겪으며 정부는 전면책임 감리제도를 도입했다. 그에 따라 당시 건설교통부 산하 도로공사, 주택공사, 수자원공사, 토지공사에 4개 건설감리공단이 설립됐다. 1999년에는 4개 공단이 통합해 한국건설관리공사가 설립됐다. 통합 공사는 도로공사가 42.5%의 최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2008년 여름 발표된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공사의 민영화가 추진됐다. 2011년 2월 1차 매각공고를 시작으로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민영화가 추진됐지만 모두 유찰됐다. 정부는 최대주주인 한국도로공사의 지분 매각 의지가 부족하거나,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이를 한국자산관리공사로 위임했지만, 2013년 5월 재차 진행된 매각도 역시 유찰됐다.

“통합 공사가 출범할 1999년 당시만 해도 직원이 1,200명이었습니다. 지금은 350여 명이에요. 공사는 정부 예산을 한 푼도 받지 않는 공공기관입니다. 그동안 수의계약으로 받던 감리 물량도 끊어버렸지요. 민간기업과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정 방법이 없으면 급여를 삭감하거나 구조조정을 해 오면서 지금까지 버텨온 거지요.”

개별 공사마다 인력이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건설업 특유의 모습은 감리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민간 업체의 감리사들은 대부분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 계약직들이다. 이 현장의 공사가 끝나면 나가야 하는 거다. 적절한 시기에 곧바로 다른 공사 현장에서 일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기약 없이 마냥 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장의 조합원들이 그나마 프라이드를 갖고 있었던 것은 공공기관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 같은. 조건이나 처우는 열악하지만 언제 다시 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할 때보단 낫다는 거지요. 감리 직군들이 느끼는 고용불안은 어느 정도냐 하면, 완공 3~4개월을 앞두고는 다른 일할 데를 알아봐야 하기 때문에 현장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 거예요.”

매각은 매각대로, 제약은 제약대로

매각은 매각대로 진행되면서 조직의 구성원들은 고용불안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받게 되는 여러 가지 제약들은 그대로 가해진다. 이래저래 모순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허 위원장은 “속된 말로 이혼서류에 도장까지 찍어 놓은 상태에서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다고 잔소리를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기획재정부의 공무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공사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 충분히 이해한다고 합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재난, 안전 관리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점도 고민하고 있고요. 하지만 2008년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민영화 대상 기관으로 선정된 부분이 아직 철회되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없는데 이미 저질러진 정책이 철회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는 답을 들으면 답답할 노릇이죠.”

박근혜 정부 들어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이 추진되면서 한국건설관리공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도로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수자원공사는 부채관리 중점 대상기관으로 선정됐다. 정부는 부채 감축을 위한 자구책의 한 가지로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지분을 조속히 매각하도록 채근하고 있다. 부채관리나 방만경영 등 딱히 정상화 방안에 걸릴 게 없는 공사의 경우, 현 정부와 지난 정부의 공공부문 정책 모두가 채찍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기재부가 주도하고 있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통해 공사의 행보가 제한되고 있다는 점도 뼈아프다. 허 위원장은 민간 감리 업체와 비교했을 때 설계 부문이 대단히 취약한 공사의 경우 경쟁력이 대단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사업 역량을 확장해 설계 기능을 강화하자니 기재부의 통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와중에 내년 6월까지 공사는 경북 김천시로 이전하기로 돼 있다. 이와 별개로 6월 말 한국자산관리공사는 2차 매각공고를 준비 중에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민영화를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일관성 없는 정책 추진과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충돌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허진영 위원장은 “우선 공사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 뒤 민영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당초 공공 건설감리기관을 설립했던 취지대로 책임감리가 이뤄지기에는 건설 현장의 환경이 아직 취약하다는 것이다. 공사의 설립 당시 이러한 본래 목적이 법제화되지 못했던 점이 그래서 더욱 뼈아프다. 향후 건설관리공사는 민간 업체들이 뛰어들기 꺼리는 저가 SOC사업 등의 책임감리 업무를 부여하는 등 그야말로 공적인 업무 영역에서 기능해야 한다고 허 위원장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