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어떤 ‘패’를 꺼내들까
노사정, 어떤 ‘패’를 꺼내들까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4.09.0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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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린 노정 채널, 무엇을 담을 것인가 ① 노사정, 다시 마주 앉다
사회적 대화 재개 위해선 정부의 ‘보따리’ 중요
노동계가 제시할 전략적 비전과 아젠다도 관심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이 8월 23일 ‘얼음물벼락’을 맞았다.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해 시작돼 전세계적으로 유명인들의 동참이 이어지고 있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동참한 것이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먼저 물벼락을 맞은 사람이 다음 차례의 세 사람을 지목하는 방식이다.

김동만 위원장을 지목한 사람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였다. 김무성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그리고 김동만 위원장을 지목했다. 박지원 의원에 대해서는 “찬물 뒤집어쓰고 정신 차려서 당내 강경파를 잘 좀 설득해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김기춘 비서실장에게는 “김 비서실장은 너무 경직돼있다. 찬물 맞고 좀 유연해지라”고 말했다. 행간에서 충분히 ‘가시’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김동만 위원장에 대해서는 “노사정위원회를 떠났던 한국노총이 위원회에 다시 복귀하는 큰 결단을 내렸다”면서 “여기엔 존경의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달라진 노정관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 모습이다.

여기에 대해 김동만 위원장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내놨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취지는 존중하고 지지한다고 밝혔다. “루게릭병을 포함해 삼성 백혈병 환자, 산재노동자와 같은 병마에 시달리는 수많은 환자들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길 기원”한다고 했다. 다만 “목숨을 건 단식을 진행해 온 유민아빠, 김영오님이 결국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후송됐다”며 “많은 유족 분들이 힘들어 하시는 때라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김동만 위원장은 참여했다. “노동계와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참여의 변이었다. 그리고 김동만 위원장은 다음 차례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지목했다.

지목한 세 사람이 의미심장하다. 모두들 노사정위원회 본위원회 멤버들이다. 김무성 대표가 김동만 위원장을 지목하면서 전한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김동만 위원장은 아이스 버킷 참여에 앞서 노사정위원회에도 참여했기 때문이다.

▲ 노사정위원회가 8개월 만에 정상화 됐다. 본위원회에서 노사정 대표자들이 손을 맞잡고 섰다. ⓒ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 물꼬를 트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제85차 본위원회가 8월 19일 열렸다. 지난해 12월 23일,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 불참 선언을 한 이후 8개월 만이다. 본위원회로만 보자면 노무현 대통령 이후 10년 만에 대통령이 노사정위원회를 방문해 화제가 되었던 2013년 9월 27일 제84차 본위원회 이후 11개월 만이다.

공식적인 노정 대화 채널이 완전히 닫히게 된 것은 지난해 말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를 이유로 경찰이 민주노총에 병력을 투입한 것에서 비롯됐다. 당시 한국노총 문진국 위원장은 “노정 관계를 대화가 아닌 공권력으로 해결하는 정부에 대해 노동자들은 어떠한 기대도 할 수 없다”고 항의하면서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

민주노총 ‘침탈’이라는 정부의 ‘무리수’가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기는 했지만 노정 대화 단절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노동계가 소외되어 왔다는 인식이 팽배한 가운데 공권력 투입을 계기로 폭발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노정 관계 냉기류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 것은 지난 7월 29일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가 열리면서 감지됐다. 시작은 상견례 명목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혼선을 거듭하던 개각 문제가 마무리되면서 노정 대화의 정부측 파트너격인 기획재정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이 모두 바뀌었다. 지난해 9월의 노사정위원회 제84차 본위원회 당시에는 현오석 기재부 장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그리고 문진국 한국노총 위원장의 라인업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최경환 장관, 이기권 장관, 그리고 김동만 위원장이 마주 앉았다.

이날 간담회에서 김대환 위원장은 “2기 내각이 출범하자마자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가 열린 것은 노동시장 개혁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사정 파트너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경제주체들이 느끼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최경환 장관은 “노사정 대화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 했다”면서 “비정규직 등 문제와 관련해 노사정위에서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김동만 위원장은 최 장관에게 ILO의 임금보고서(2012-2013)와 장하준 교수의 책 ‘경제학 강의’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수출대기업 중심의 규제완화 등 낙수효과 정책은 실패로 귀결되었다”면서 “방금 장관께 전달한 ILO 보고서에서처럼 소득 및 가계와 내수중심의 확장정책으로의 전환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 만남을 통해서 한국노총의 복귀를 통한 노사정위원회 정상화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노정 모두에게 채널이 필요했던 시점사실 노정 대화 채널의 복구는 노동계와 정부 모두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정부로서는 세월호 참사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2기 내각을 출범시켰고, 이후 정책 과제 수행을 위해서도 노사정 대화의 물꼬를 틀 필요가 있었다.

최경환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소득주도형 경제성장론’을 제기했다. 그간 한국경제의 제일과제로 여겨져 왔던 수출주도형 성장정책과는 방향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내수 진작을 경제회복의 방법론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기업의 투자와 배당, 임금 분배 등을 제시한 것이다. 국민들의 체감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각종 악재를 경험한 박근혜 정부로서는 돌파구가 필요했고 이른바 ‘최경환노믹스’를 계기로 노동계에 화해의 손짓을 보인 셈이다.

노동계로서도 노정 대화 채널을 언제까지고 닫아 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장 공공부문 현안이 발등의 불이다.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를 내세우면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자 노동계는 양대노총 공공부문 공대위를 결성해 ‘결사항전’의 뜻을 내비치며 9월 3일 총파업 일정을 잡아놓은 상태다.

정부는 지난 6월 공공부문 경영실적 평가결과를 발표하면서 “지금도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일부 노조가 상급단체에 교섭권을 위임해 연대 투쟁을 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여론을 계속 조성하고 있다”며 책임을 노동계에 돌렸다.

물론 당시 발언의 당사자인 현오석 장관이 물러나고 최경환 장관 체제가 출범했지만, 이 사례에서도 보듯 공공부문의 특성상 노정 간의 교섭을 통해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계로서도 노정 대화 채널의 복원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양대노총 공대위 대표자회의에서도 한국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복귀 문제가 논의됐다. 당초 민주노총은 반대했지만 8월 7일 대표자회의에서는 한국노총의 복귀를 반대하지는 않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민주노총에서도 노정 교섭을 통해 문제 해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한 셈이다.

김동만 위원장은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에서 노사정위원회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공공부문 회의체 구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대해 최경환 장관이 화답하면서 8개월 만의 노사정위원회 정상화가 성사됐다.

공공부문 문제는 ‘뜨거운 감자’

하지만 앞으로의 노사정 대화가 그리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당장 노사정위원회 본위원회를 앞두고도 미묘한 힘겨루기가 있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본위원회 안건을 보내오자 한국노총이 발끈했다. 노사정위원회에서는 크게 세 가지 문제를 제시했다. 우선 공공부문 혁신위원회와 산업안전 혁신위원회를 구성하고, 임금·근로시간 특별위원회를 노동시장 구조개혁 특별위원회로 변경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 한국노총 이정식 사무처장은 “공공부문을 논의할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공공부문을 혁신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은 노사정 대화 재개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공공부문 혁신위원회는 공공부문 발전위원회로 명칭을 바꿨고, 노동시장 구조개혁 특별위원회도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별위원회로 이름이 확정됐다. 그간 정부가 주도해 왔던 ‘혁신’과 ‘개혁’에 대한 노동계의 불신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공공부문 문제는 노정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노사정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한국노총이 공공부문 문제에 너무 목을 매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면서 “이럴 경우 향후 활동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관측했다.

반면 한국노총 내부에서는 공공부문이 노사정위원회 복귀의 명분으로만 쓰이고 정작 들러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노사정위원회 복귀 문제를 다루기 위해 8월 13일 열린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노사정위원회 정상화의 첫 발을 내딛기는 했지만 본위원회 직후에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공공부문 발전위원회에 참여하는 정부 관계자를 어느 급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노사정위원회에서는 국장급으로 한다는 것이고, 한국노총은 최소한 차관급은 나와야 한다고 맞섰다. 만만치 않은 난항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 한국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결정한 중앙집행위원회 ⓒ 한국노총
실패의 반복? 새로운 성공?

어쨌거나 노사정위원회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노사정 대화의 형식적 재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해법 모색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노정 대화의 통로가 모두 막히기 직전에 열린, 그리고 대통령이 참석했던 지난해 9월 본위원회 당시 노사정위원회는 ‘고용률 70%라 쓰고 사회적 대화라 읽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 과제인 ‘고용률 70% 달성’을 끌고 와서 노사정위원회의 틀 속에서 풀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노사정위원회를 명실상부한 사회적 대화기구로 자리매김 시키겠다는 뜻이다.

쉽지 않아 보이기는 하지만 노사정이 어떤 패를 꺼낼지 지켜볼 일이다. 자신들의 주장만 관철시키겠다고 나선다면 이전과 같은 실패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정부의 카드가 특히 주목된다. 적어도 ‘사회적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가 원하는 바가 ‘사회적 대타협’까지라면 제대로 된 보따리를 풀어낼 필요가 있다.

아울러 노동계가 노사정위원회 복귀 이후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적 아젠다를 형성해 나갈지도 관심을 쏠린다. 이제, 새로운 출발의 총성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