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과 지역이 대안이다
업종과 지역이 대안이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4.09.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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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린 노정 채널, 무엇을 담을 것인가 ③ 어디로 가야 하나
이제는 노사정위가 ‘블랙홀’이란 오명 벗을 때
경제·사회·노동 의제들 해법 모색 중심 운영 필요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했다. 명분과 실리를 둘러싼 저울질이나 정치적 셈법에 의한 왈가왈부는 이 시점에 어울리지 않는다. 복귀라는 선택을 한 이상, 앞으로 노사정위원회라는 틀을 활용해서 무엇을 이룰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8개월 만의 노정 대화 채널 복구는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방위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정부로서는 한국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복귀에 맞춘 나름의 ‘선물’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지형 속에서 노동계가 노사정위원회 복귀 선물로 ‘민원 해결’을 요청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사관계나 노동정책과 관련한 노동계의 요구안을 관철시킬 수 있다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의제 확대에는 이견 없어

그렇다면 지금 노동계가 노사정위원회의 ‘앞날’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일까?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지역’과 ‘업종’이라는 두 날개로 노사정위원회를 움직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해서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법’ 개정을 위한 여야 의원의 발의안이 제출돼 있는 상태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안과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안이 그것이다. 두 노동계 출신 의원의 안을 보면 의제와 참여 주체를 확대하자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우선 참여 주체에 대해서는 김성태 의원안에서는 위원장이 추천하는 노사 대표 각 2인씩을 추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김경협 의원안도 두 명씩 추가하는데 노는 청년과 비정규직 대표, 사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표로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의제와 관련해서는 김성태 의원안에서는 기존의 의제별·업종별 위원회를 두되 활동기간을 짧게 여러 차례로 끊어가자는 것이고, 김경협 의원안에서는 의제별 위원회와 업종별 위원회로 분리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정문주 정책본부장은 “의제를 확대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고 전제하고 “다만 참여 주체 확대는 대표성에 대한 논의가 좀더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본부장은 “조만간 노사정위법에 대한 한국노총안이 정리되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체로 상설위원회나 특별위원회를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치권이나 노동계가 큰 이견은 없는 편이다. 의제별 위원회와 업종별 위원회를 나눌 경우 통상임금, 근로시간단축, 소득주도형 성장, 지역 거버넌스 등의 사안이 의제별 위원회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위원회들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사정소위에서 나온 자문위원 가이드라인을 기본으로 논의를 진행시킬 것으로 보인다. 업종위원회와 의제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될 듯업종별 위원회의 경우 산별을 중심으로 공공, 제조, 금융, 운수, IT 등 여러 형태의 위원회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업종별 위원회는 각 업종별로 첨예한 현안들이 있기 때문에 노사 주체들의 관심도 높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공공부문의 경우는 정부의 ‘정상화 방안’을 놓고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우선 진행되고 있는 조치들을 잠시 유보하고 공공부문 특별위원회의 틀 속에서 논의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공연맹 이인상 위원장은 “공공은 그 특성상 공익위원 중심으로 운영되기보다는 노정 간에 직접 풀어내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특히 정부가 노동조합을 파트너가 아닌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인식부터 바꿔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제조부문은 원하청 불공정 거래 등의 의제가 있어 이미 자동차부품업종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 위원회에 참여한 바 있는 금속노련 김만재 위원장은 “현안별로 국토부나 기재부, 산자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 핵심주체들이 나서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면서 “그런데 원하청 불공정 거래 문제를 다루면서 산자부나 공정위가 들어오지 않는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비판했다. 사안에 따라 정부 관련부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역 문제는 현재 각 지역별로 노사민정 협의회가 구성되어 있어 노사정위원회와 어떻게 역할을 나눌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천지역 의장 시절부터 오랜 기간 지역 노사민정 모델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던 한국노총 김준영 전략획본부장은 “지역 거버넌스 위원회 문제는 수요자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와 공급자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김 본부장은 “각 지역마다 관심과 눈높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역 노사가 원하는 거버넌스 성장의 프로세스를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지역은 포항의 철강이나 울산의 석유화학 등과 같이 지역 중점 산업과 연계하는 방식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고 또 일부에서는 시도되기도 했다. 부천처럼 지역산업 맞춤형 일자리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노사정위원회는 물론이고 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노사 모두가 지역에서 문제를 풀겠다는 접근법을 가지고 구체적 실행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행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합의 필요

이제 노사정위원회가 업종과 지역이라는 현장밀착형 위원회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간 지적되었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정문주 본부장의 “그동안 노사정위원회는 블랙홀로 불렸다. 거기(노사정위)만 들어가면 논의나 입법이 멈춰버린다는 비판이 있었다”는 평가는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노사정위원회 박영삼 기획위원은 “노동계가 연대적 관점에서 불참하는 전략을 펼칠 것이 아니라 참여 전략으로 적극적 개입을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면서 노사정위원회 내부의 회의체 활성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강조했다.

김준영 본부장은 “어떻게 구성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실효성 있게 운영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연구진과 실무진 중심의 소위원회에서 상세한 논의를 진행한 후 이를 의제별 위원회와 업종별 위원회로 올라가도록 하고, 본위원회에서는 정무적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선언적 합의에 집착하기보다는 이행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당 사안의 핵심 주체들이 모두 참여해서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실효성 있는 해결 방안을 찾아나가는 방식의 운영을 통해 노사정위원회가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