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품’과 ‘인턴’ 그리고 ‘노조원’
‘사치품’과 ‘인턴’ 그리고 ‘노조원’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4.09.02 09:43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해 벌이고 있는 행태는 ‘대학살’이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입니다. 어린이와 여성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이를 영화 관람하듯 구경하는 모습은 경악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명천지에 이런 정신 나간 일이 너무나 태연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놀라게 됩니다. 인터넷 여론의 비판은 있지만 이스라엘은 별 개의치 않는다는 듯 행동합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요?

혹시 <이스라엘 프로젝트의 2009년 글로벌 언어 사전>이라는 보고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스라엘 프로젝트>라는 단체가 미국 공화당 여론 전문가이자 정치 전략가인 프랭크 런츠 박사에게 의뢰해 만든 112쪽 짜리 대외비 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는 이스라엘이 어떤 ‘프레임’으로 미국을 위시한 대외홍보 전략을 짤 것인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을 설명할 때 ‘이스라엘은 국경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을 미국인들이 좋아한다는 거지요. 이 때 국경이 어떤 국경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 ‘대량 이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라고도 합니다. 역시나 미국인들은 이 단어를 싫어하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동조할 것이라는 겁니다.

어떤 프레임을 짜느냐는 것은 정치에서도, 홍보에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전대미문의 대통령 해외 순방 수행 중 성추문을 일으켰던 윤창중 씨는 시종일관 피해 여성을 ‘가이드’라고 칭했습니다. ‘인턴’이라고 부를 때보다 ‘죄질’이 가벼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 것입니다. ‘Luxury Goods’는 번역하자면 ‘사치품’이 가장 적확합니다. 그런데 ‘명품’이라는 엉뚱한 번역으로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40일이 넘게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김영오씨에 대해 일부에서 금속노조 조합원이라는 점을 문제 삼고 나섰습니다. 이혼했다는 것도 공격의 빌미가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김씨는 비정규직으로 오랜 기간 일하다 지난해 정규직이 되면서 유니온샵 규정에 따라 조합원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둘째 딸과의 모습을 보면 이혼 후에도 아이들과 살갑게 지내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노조원이자 이혼남이라는 ‘낙인 찍기’는 꽤 효과적인 듯 보입니다. 가난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가 정규직이 되면서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된, 이혼 경력이 있는 사람은 ‘아버지’의 자격이 없는 겁니까?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생떼 같은 딸을 잃어도 분노해서는 안 되는 겁니까?

문제가 생겼을 때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내 편’에 유리한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고, 어떻게 덮어버릴 것인지부터 고민하는 사회는 결국 그 문제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요즘입니다.

9월부터 <참여와혁신> 기자들의 출입처가 대폭 교체됩니다. 새로운 얼굴이 새로운 곳에 보이거든 반갑게 맞아주십시오. <참여와혁신> 기자들은 독자들과 함께 세상을 보는 삐뚤어지지 않은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계속 달려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