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색채를 만들다
나만의 색채를 만들다
  • 홍민아 기자
  • 승인 2014.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 유일하게 나를 표현하는 통로지만
모든 스트레스의 만병통치약이 될 순 없어
[일.탈_ 나만의 힐링을 공개한다] (8) 태블릿으로 그리는 그림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gmail.com

스트레스는 현대인에겐 피해가기 어려운 일상의 동반자가 되어 가고 있다. 직장에서, 혹은 인간관계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취미를 하나 선택해서 그것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꽤 규모 있는 카지노의 딜러로 근무하고 있는 신정석 씨를 만나고 나서는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취미를 가진다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좀더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딜러도 그냥 직장인이죠”

신정석 씨가 ‘딜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에는 타서비스 직종과 비교하여 꽤 괜찮은 수준의 보수와 ‘딜러’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이 작용했다. 그리고 약 8개월의 시간 동안 구직생활을 하며 많이 지쳤던 시기였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더욱더 최선을 다했다. 서류합격에 이어 1차 면접의 합격, 2차 합숙면접을 통과하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3차 임원면접까지 통과하면서 ‘딜러’라는 직업에 첫 발을 내딛었다.

카지노는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연중무휴로 운영되기 때문에 morning-day-night time으로 근무 시간표가 이뤄진다. 3교대제이기 때문에 night time 근무는 누구에게나 필수인데 처음 야간근무를 경험하면서 신체리듬이 깨진다는 느낌이 뭔지 알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회사에서 헬스장 제공이나 주기적인 건강검진을 실시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컨디션을 관리하지 않으면 야간 근무를 버텨 내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신정석 씨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카지노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스케줄이 일본이나 중국의 명절이나 휴일에 맞춰져 있다. 중국의 중추절이라는 명절을 처음 알게 된 것도 그 시기 물밀듯 밀려들어온 손님들로 인해서였다.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gmail.com

“그런 날은 남는 테이블이 없어서 손님들이 게임을 못 하는 경우도 많다.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는데 젊은 일본인이었다. 친구들이랑 놀러 온 것 같았다. 돈을 계속 잃었는데 계속 웃으면서 게임을 하더라. 그냥 게임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돈을 잃다가 식사하러 간다고 자리를 뜨면서 팁을 줬다. 손님이 팁을 주는 경우는 나와의 게임이 즐거웠다는 의미인데 그럴 때는 기분도 좋고 보람을 느낀다. 10년이 넘은 단골손님들도 만나는데 고상한 사모님처럼 보이는 분들이 있다. 게임 매너도 좋고, 그분들이랑 게임하면서 카지노의 전통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겜블러인데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까.”

매너 좋은 손님들을 만나면 이렇게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계속 돈을 잃는 손님들을 만나다 보면 욕을 듣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억지에 웃는 얼굴로 대응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은 편이다. 그러나 딜러 역시 하나의 직업이고 조직생활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단순반복적인 업무에서 오는 매너리즘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작은 위안을 가져다주는 것이 일본유학 시절 때부터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었다. 처음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일본 유학생활에서의 외로움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는 시간

“한 프랑스 남자애랑 친구였다. 그 친구는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으면 그림을 그려서 마음을 표현했다. 그 때가 마침 일본인 여자친구랑 헤어졌을 때였다. 유학 생활에서 답답한 마음에 슬픈 생각도 들더라. 그래서 나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는데, 프랑스 친구가 하는 말이 스케치북 하나에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이것만큼 돈 안 들고 간편한 취미가 없다고. 그렇게 시작했다.”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gmail.com

처음에는 사진을 보고 따라 그렸는데 구도를 잡을 줄 몰라서 사진이나 컴퓨터 화면에 자를 대고 일일이 점을 찍어서 눈, 코, 입의 위치를 잡아가면 힘들게 그림을 완성했다.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였다. 3교대제로 근무하다 보니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기도 애매했고, 일하는 시간 외에는 할 게 없었다. 시간 떼우기용으로 구매했다는 태블릿 기기는 모니터 화면에 전자 펜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계이다. 주로 웹툰 작가들이 사용하는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끼워서 30만 원대에서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gmail.com

“붓이나 펜, 연필 등의 도구를 살 필요가 없고, 수만 가지 색깔이 프로그램에 내장되어 있다. 실제로 물감을 사서 그린다면 그 수만 가지 색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할거다. 나는 주로 사람들 얼굴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쓸쓸하거나 슬픈 느낌이 묻어난다. 그런 분위기는 나 개인의 느낌이나 정서가 반영된 거다. 내가 그렇게 그리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그려진다. 사람마다 다 글씨체가 제각각인 것처럼 그림도 그렇다. 어떻게 질감을 나타내고 어떤 색을 쓰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림을 통해서 나를 표현한다. 그럴 때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그런데 요새는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것이 조직생활을 함에 있어서 걱정되는 점도 있다. 왜냐하면 직원들이 많고 회사가 클수록 조직사회는 경직될 수밖에 없다. 개성을 표현하는 점에 있어서는 제한적이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이 오롯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는 시간인데, 그 시간이 지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게 되면 나를 숨기고 조직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역할 체인지를 하고 적응하는 게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오히려 그림을 안 그리게 된다. 속이 풀린 상태에서 다시 회사로 가서 일에 치이다 보면 스트레스를 또 받게 된다. 내가 본질적으로 받고 있는 스트레스는 그대로 있는 거니까.”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gmail.com

신정석 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문제의 근원이 해소되지 않는 한 취미나 나만의 힐링 방식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회사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그 안에서 해결하기 어렵기에, 많은 사람들이 취미를 찾아 헤매는 사회가 되고 있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취미생활이 필요하겠지만, 문제가 발생한 장소에서 해결방법을 찾을 수는 없는지 고민해 볼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요즘, 그림 그리기가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다는 신정석 씨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그림이라는 취미가 없었다면 어땠을 것 같나요?”

“그냥 영화보고 음악을 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나를 드러내야 속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림이 유일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통로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