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통상임금 문제 물꼬를 트다
한국지엠, 통상임금 문제 물꼬를 트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4.09.0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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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 재확인
연장근로 줄어 인상효과 상쇄 … 찬성률 낮아
[기획] 통상임금 어떻게 풀까? ①

▲ 임·단협 조인식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지난 8월 19일 오후, 한국지엠 노사는 부평공장에서 조인식을 열고 ‘2014년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세르지오 호샤 한국지엠 사장과 정종환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장, 강두순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각각 노사를 대표해 서명을 교환함으로써 이 협약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게 됐다.

한국지엠 노사의 2014년 임·단협 체결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된 ‘통상임금’에 대한 합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8일 대법원에서 갑을오토텍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내려진 이후,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사업장 중 노조가 있는 사업장으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낸 사업장은 손가락에 꼽힌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국지엠 노사다.

한국지엠,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 포함

한국지엠 노사는 지난 4월 23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올해 임·단협 교섭을 진행해 3개월여에 걸친 교섭 끝에 지난 7월 28일 23차 교섭에서 잠정합의안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잠정합의안에는 “회사는 법에 따른 수당을 산정함에 있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 단, 구체적인 수당 계산 방법은 관계법령에 따른다. 그 시행일자는 2014. 3. 1로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또 단체협약 제74조(법정휴가) 제1항 근속연차휴가 사호에 규정된 “적치한 휴가를 퇴직 또는 해고 전에 사용하지 않으면 통상임금 150%를 대체 지급한다”는 내용을 “적치한 휴가를 퇴직 또는 해고 전에 사용하지 않으면 기존 단체협약에 따른 통상임금의 150%에 새로운 통상임금 적용에 따른 인상분에 대한 차액을 가산하여 지급한다”고 갱신키로 했다. 기존에는 휴가대체수당을 계산함에 있어 정기상여금을 포함하지 않은 기존의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했지만, 이제는 정기상여금을 포함하는 새로운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한 휴가대체수당을 계산해서 기존 휴가대체수당과의 차액을 추가로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지엠지부는 이 같은 합의에 따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평균 통상시급이 기존의 9,805원에서 16,459원으로 6,654원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한국지엠에서는 매 짝수 달과 5월에 각각 기본급의 100%씩 연 700%의 정기상여금이 지급돼 왔다. 단체협약에 명시된 바에 따라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연장근로수당이나 연차수당, 퇴직금이 오르는 효과를 보게 됐다. 연장근로수당이 68% 인상되는 것 외에도 연차수당 7.1%, 퇴직금 9.7%의 인상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정기상여금 외에도 한국지엠 노사는 사무직 조합원에게 적용되는 업적급 및 조사연구/조직관리 수당, 감독자들에게 적용되는 공장/직장 근로보조비 및 직무수당, 관청등록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했다.

한국지엠 노사의 잠정합의안에는 이 밖에도 기본급 63,000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 격려금 650만 원 및 성과급 400만 원 지급 등 임금협약 합의안과 장기근속자 선물, 학자금지원 확대, 경조금 지원 확대, 귀성여비 인상, 배우자 종합검진비용 지원 등 단체협약 합의안, 고용안정 및 미래발전전망을 위한 생산물량 확보, 사회연대기금 10억 원 출연, 승진연한 축소,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 특별요구 및 별도요구 합의안이 포함됐다.

이 같은 잠정합의안은 7월 30일과 31일 이틀간 진행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투표자 수 대비 54.7%(조합원 수 대비 51.1%)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어 8월 19일 열린 조인식에서 노사 대표가 합의안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지엠 노사의 올해 임·단협은 모두 마무리됐다.

▲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다른 기업 앞서 합의하기는 부담

한국지엠 노사가 이 같은 합의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난해 12월 18일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을 내렸다. 과거 3년치에 해당하는 소급분을 청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의칙에 따라 회사의 경영상황 등을 따져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붙기는 했지만, 어쨌든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는 사실은 대법원 판결로 명확해진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개별 사업장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신의칙에 따라 과거 3년치 소급분을 청구할 수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는 것은 기업에게는 인건비 상승을 의미한다.

연장근로를 하지 않으면 통상임금 범위 확대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자동차업계와 같이 교대제 근무를 하는 사업장이나 부득이하게 심야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 사업장에서는 연장근로를 하지 않아도 법정수당인 심야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하므로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가 인건비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나아가 기존에 연장근로가 일상적으로 진행되던 사업장의 경우 사업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과 동일하게 연장근로를 하거나 새로운 인력을 투입해야 하므로 인건비 상승은 불가피하다. 설비투자를 통해 사업 규모를 유지할 수도 있으나, 이 경우에도 인건비 대신 설비투자에 따른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야 하므로 기업에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통상임금의 범위가 확대되면 과거 3년치의 소급분을 지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기업들이 추가적인 비용 부담을 피하기는 어렵게 됐다. 이런 이유로 인해 기업들은 정기상여금을 비롯한 각종 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면밀히 검토했고, 대법원이 제시한 통상임금의 요건인 정기성·일률성·고정성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하지 않는 경우에는 해당 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각종 수당을 계산하기로 노사가 합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동종업계, 나아가 산업 전반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통상임금 문제를 ‘앞장서서’ 합의하는 데 대한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른 기업에 비해 먼저 처리할 경우 ‘모난 돌이 정 맞는’ 형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올해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기업들은 다른 기업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사업장들에서는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렇지 않은 사업장들에서는 다른 사업장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노조의 입장에서도 통상임금 문제를 쉽사리 합의하지 못하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인해 조합원들은 정기상여금이 ‘당연히’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 회사가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쉽게 합의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회사와 교섭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야 할 노조 입장에서는 ‘잘 해야 본전’인 상황이다. 만에 하나 교섭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합의를 한다면 ‘어용’, ‘무능’이라는 딱지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 2014 임·단투 승리 전진대회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부담 있어도 법적 결정 준수해야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지엠 노사가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합의를 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법적 결정을 준수한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에서 명확해진 바와 같이 지급주기가 1개월을 넘는다고 하더라도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는 점에 대해 거부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물론 재직자에게만 한정된다든지 중도퇴직자에게 일할 계산되지 않는다면 고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여지는 있으나, 그와 같은 사례 역시 법적인 다툼을 벌여볼 수 있는 조건은 된다. 더구나 한국지엠의 경우에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요건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난 5월 29일 내려진 한국지엠의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도,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그동안 하급심에서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개인연금보험료, 휴가비, 귀성여비, 선물비에 대해서는 재직자에게만 지급됐다는 이유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한국지엠 통상임금 사건에 대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낸 것은 신의칙 적용 여부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사실 신의칙은 지난해 12월 18일의 대법원 판결에서 처음으로 제시된 것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 내려진 2심 판결에서 신의칙 적용 여부를 따질 이유는 없었다.

따라서 하급심의 법리 적용에 위법함이 없는지를 살피는 대법원의 판결에서 지난해 12월 18일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신의칙 적용에 대한 문제를 들어 파기환송을 결정하리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은 이 경우에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는 점을 인정한 데에는 위법함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서울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결정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과거 3년치의 소급분을 지급할지 여부는 파기환송심에서의 판결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은 있으나,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점은 뒤집힐 수 없는 기정사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와 같았으므로 회사 입장에서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에 대해 또다시 소송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결론이 바뀔 가능성도 낮을 뿐만 아니라 소송을 제기하는 실익도 없었다. 어차피 지급해야 할 부분이라면 소송이 끝나는 시점에서 지연이자나 소송비용 등을 부담하는 것은 불필요한 경비에 해당할 뿐이었다. 과거 3년치 소급분에 대한 신의칙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지난해 12월 18일 대법원 판결 이전에 대한 부분이지, 그 이후에 지급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신의칙을 주장할 수도 없는 부분이었다.

▲ 확대간부 성실교섭 촉구 결의대회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낮은 찬성률, 수시로 바뀐 조합원 심리 탓

이런 이유로 한국지엠 노사는 올해 임·단협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대한 한국지엠지부 조합원들의 반응은 어떨까?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를 통해 그 반응을 볼 수 있다.

지난 7월 30, 31일 이틀간 진행된 조합원 찬반투표에는 14,016명의 조합원 중 13,093명이 참가해 93.4%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그 중 7,161명의 조합원이 찬성해 찬성률은 투표자 수 대비 54.7%, 재적인원 대비 51.1%를 기록했다. 각 지회별 투표자 수 대비 찬성률을 보면 부평이 45.7%로 찬성률이 가장 낮았고, 사무지회가 69%로 가장 높았다. 사무지회에 이어 군산 63.8%, 정비 56.4%, 창원 48.6%의 찬성률을 각각 기록했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찬성률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조합원들의 찬성률이 이처럼 낮게 나왔을까?

한편에서는 이번 통상임금 관련 합의의 효과에 대한 조합원들의 인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대함에 따라 임금이 인상되려면 결국 연장근로를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지엠에서는 현재 주간연속2교대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더라도 과거 주야맞교대 당시 상시적으로 진행되던 연장근로에 비해 연장근로가 훨씬 줄어들었다. 나아가 밤샘근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심야근로수당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결국 연장근로 자체가 줄어들어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에 따른 임금 인상 효과가 어느 정도 상쇄되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찬성률이 낮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조합원들의 통상임금 자체에 대한 인식이 시시때때로 바뀌었다는 점도 들 수 있다. 지난 2013년에 한국지엠은 통상임금 소송에 따른 추가 임금 지급을 위한 준비금으로 8천여억 원을 적립한 바 있다. 조합원들로서는 통상임금이 당연히 확대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12월 18일 내려진 대법원 판결에서 신의칙을 제시함에 따라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심리가 퍼져갔다. 게다가 대법원 판결에서는 고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올해 임·단협을 진행했고, 회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는 제시안을 낸 이후, 조합원들은 다시 당연히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연히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그 적용시점이 올해 1월 1일이 아닌 4월 1일이라는 점은 불만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밖에 한국지엠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미래발전전망에 대한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을 만한 합의안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부족했다는 점도 낮은 찬성률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조합원들도 이번 임·단협 결과가 상당한 성과를 냈다는 점은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회사의 경영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 임금 동결을 예상했던 터라 63,000원의 임금 인상을 이끌어낸 점은 성과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조합원들의 평가는 매년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집행부를 제외한 현장 의견그룹들이 부결운동을 했던 데 비해, 올해는 단 두 곳의 의견그룹에서만 부결 홍보물을 낸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한 의견그룹이 낸 부결 홍보물에 대해 조합원들은 “너희들이 집행할 때는 얼마나 성과를 냈느냐?”고 핀잔을 준 것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는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한국지엠 노사는 올해 임·단협을 통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고 합의했다. 이 같은 합의가 다른 사업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