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일 대로 꼬인 통상임금, 현장에선 눈치만
꼬일 대로 꼬인 통상임금, 현장에선 눈치만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4.09.0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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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상여금 포함 놓고 사업장마다 논란 가중
개별 사업장에선 통상임금 손 놓고 추이 관망 중
[기획] 통상임금 어떻게 풀까? ②

한국지엠 노사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고 합의하면서 올해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한국지엠 외에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낸 사업장들도 있다. 하지만 아직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여전히 통상임금 문제로 인해 임·단협이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 통상임금 문제는 어디까지 와 있는지 살펴본다.

▲ 지난 7월 16일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계열사 노조 조합원들이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본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쌍용차, 완성차업계 최초로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 포함

완성차업체 중 가장 먼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한 곳은 쌍용자동차다. 쌍용자동차 노사는 지난 7월 23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고 기본급 46,106원을 인상(호봉승급분 포함)하는 것을 골자로 한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찬반투표 결과 3,476명의 조합원 중 1,733명이 찬성(찬성률 52.3%)해 잠정합의안이 가결됐다.

이로써 쌍용자동차 노사는 완성차업체 중 가장 먼저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하기로 했다. 쌍용자동차는 연간 기본급의 800%를 정기상여금으로 지급해왔다. 또 쌍용자동차는 이 같은 통상임금 확대 방안을 임금협약 만료일인 올해 3월 19일자로 소급해 적용하기로 했다.

이 밖에 쌍용자동차는 각종 고정수당과 복리후생비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현재 진행 중인 대표소송 결과에 따르기로 했다. 또 임금은 호봉승급분 16,106원을 포함해 46,106원을 인상하기로 해, 호봉승급분을 제외하고 85,000원을 인상하기로 한 지난해 임금협약에 비해 인상률이 대폭 낮아졌다. 기본급 외에 각종 수당은 동결하기로 했으며, 생산목표 달성 장려금은 1인당 200만 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이처럼 임금인상률이 낮아지고 각종 수당이 동결된 것은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비용 부담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쌍용자동차 노사는 현재 현대·기아자동차와 한국지엠에서 실시하고 있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오는 2016년 1월부터 시행키로 했다. 시범운영은 2015년 3~4월 중 실시된다. 그동안 쌍용자동차노조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인건비 인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주간연속2교대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쌍용자동차 노사가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시기로 잡은 2016년은 충분한 물량이 확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시점이다.

금속노조 사업장 중에서는 타타대우상용차 노사가 지난 7월 29일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하기로 합의했다. 타타대우상용차 노사는 생산직에 적용되는 연 800%의 정기상여금과 사무직에 적용되는 연 800%의 업적연봉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했다.

확대된 통상임금은 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연·월차수당 등 법정수당을 계산할 때 적용된다. 또 하기휴가비 등 기존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지급되던 항목 중 법정수당이 아닌 것은 현재와 동일하게 기존의 통상임금을 적용해 계산하기로 했다.

타타대우상용차 노사는 또 확대된 통상임금을 올해 4월 1일부로 소급 적용하기로 했으며, 소급분은 올해 연말까지 지급하기로 했다. 이 밖에 현재 통상임금 여부에 대한 소송이 진행 되고 있는 각종 수당은 소송이 종료된 후에 소송 결과에 따라 올해 4월 1일부로 소급 적용하되, 소급분은 소송이 종료된 다음 달 급여에 포함해 지급하기로 했다.

이 밖에 기본급 50,000원을 인상(호봉승급분 제외)하고, 성과금은 기존 통상임금의 200% + 2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다만 성과금은 타결일을 기준으로 재직 중인 직원에 한해서 지급하기로 했다.

정식품, 파업 끝에 통상임금에 상여금 포함

현대자동차에 자동차 공기조절장치를 납품하는 한라비스테온공조도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한 사업장이다. 한라비스테온공조와 금속노조 한라비스테온공조지회는 지난 7월 30일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이끌어냈다. 잠정합의안에는 상여금 750% 중 600%를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나머지 150%는 ‘재직자 한정’ 요건을 달아 설과 여름휴가, 추석 때 각각 50%씩 지급하는 상여금으로 전환했다. 재직자 한정이므로 통상임금 요건 중 고정성을 충족하지 않아 통상임금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한라비스테온공조 노사는 이와 함께 근로시간을 하루 30분 단축하기로 했다. 지난해 완성차업체들의 주간연속2교대제에 맞춰 8.5+8.5 형태의 주간연속2교대제를 실시하던 한라비스테온공조는 오는 2016년부터 근로시간을 30분씩 단축해 8+8형태로 전환하기로 했다. 또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보전을 위해 월 25만 원의 보전수당도 신설했다.

이 밖에 한라비스테온공조 노사는 기존의 시급제를 월급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장시간근로를 부추기는 주범으로 지목돼 온 시급제를 개선함으로써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도 안정적인 임금체계를 마련키로 한 것이다. 또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되 별도의 조건을 달지 않기로 했으며, 기본급은 4.6%를 인상하기로 했다. 별도의 성과금과 격려금 지급에도 합의했다.

두유 제조업체인 정식품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한 사업장이다. 정식품 노사는 지난 6월 20일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대하고 정년을 1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정식품 노사는 정기상여금 700% 중 설과 추석에 각각 50%씩 지급하는 명절상여금 100%를 제외한 600%를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적용 시점은 7월 1일이다. 다만 과거 3년치 소급분은 타결금 400만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 회사의 과거 3년치 소급분은 1인당 평균 1,500만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식품 노사는 이 외에 정년을 현행 57세에서 58세로 1년 연장하기로 했다.

정식품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의견 차이를 보인 끝에 지난 6월 2일자로 파업에 들어간 바 있다. 파업에도 해결될 실마리를 찾지 못하자 정식품노조는 지난 6월 18일자로 옥쇄파업에 들어갔다. 통상임금 문제를 놓고 파업에 들어간 것은 정식품노조가 처음이었다. 결국 6월 20일자로 잠정합의안을 이끌어낸 후 정식품노조는 파업을 풀고 6월 21일자로 업무에 복귀했다.

▲ 지난 7월 16일 열린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하지 않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 항의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대우조선, 통상임금 뺀 노사 합의

이처럼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하기로 한 사업장이 있는 반면,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노사간 입장 차이로 임·단협이 난항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현대·기아자동차다.

현대·기아자동차지부는 올해 임(단)협에서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를 요구안으로 내걸었으나, 회사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는 월 15일 이상 근무한 직원에게만 상여금을 일할 계산한다는 사내규칙을 들어, 통상임금의 요건 중 고정성을 충족하지 않기 때문에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규칙은 현대자동차에만 고유한 것이다.

반면 현대자동차지부는 회사의 이 같은 주장이 억지라며 지난 7월 22일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본사 앞에서 그룹사 노조들과 함께 상경투쟁을 벌인 데 이어, 지난 8월 22일에는 1조와 2조가 각각 2시간씩 부분파업을 벌였다.

기아자동차의 경우 현대자동차와는 달리 월 15일 이상 근무자에게만 상여금을 일할 지급한다는 규정은 없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와 그룹사로 묶여 있다는 특성을 감안하면 현대자동차에서 통상임금과 관련한 합의가 나오지 않는 한 독자적인 합의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기아자동차뿐만 아니라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사 모두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금속노조 중앙교섭에서도 통상임금 문제는 풀리지 않는 숙제다. 금속노조와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는 지난 8월 19일 12차 중앙교섭을 진행했지만, 통상임금에 대한 결정은 하지 못한 상태다. 금속노조는 대법원 판결에서도 확인됐다시피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므로 이를 중앙교섭에서 확정하자고 요구하고 있지만,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는 개별 사업장마다 사정이 다르므로 개별 사업장 노사간의 교섭에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특이한 곳은 대우조선해양 노사다. 대우조선해양 노사는 지난 7월 31일 기본급 42,000원 인상 등을 내용으로 하는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으나, 통상임금에 대한 부분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다른 조선업체의 교섭 결과를 보고 재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대우조선노조는 연 800%의 상여금과 설·추석 명절상여금, 여름휴가비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회사는 재직자에게만 상여금을 지급하므로 고정성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 노사 외에도 많은 사업장에서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결론을 유보한 채, 동종업계의 교섭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현대자동차 노사의 교섭 결과는 다른 많은 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비록 현대자동차 노사의 올해 임금협상이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난항을 겪고 있지만, 타결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동종업계인 한국지엠과 쌍용자동차가 이미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합의한 상태라는 것이 이유다.

이와 같이 올해 임·단협에서 통상임금 문제는 노사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미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합의를 한 사업장도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업장에서는 동종업계의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추이를 관망하고 있는 많은 사업장들에서는 특히 현대자동차의 교섭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올해도 여전히 현대자동차 노사는 통상임금 문제와 관련한 노사간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