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디우스의 매듭, 누가 끊을까?
고르디우스의 매듭, 누가 끊을까?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4.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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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진 기대감, 노사 모두 발목 잡아
기업 부담 줄이고 노동자 소득 늘릴 방안 마련해야
[기획] 통상임금 어떻게 풀까? ③

고대 소아시아의 중서부에 위치해 있던 프리기아 왕국의 수도 고르디움에는 고르디우스의 전차가 있었다. 그 전차에는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매듭이 달려 있었다. 프리기아에는 ‘아시아를 정복하는 사람만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프리기아 지역을 지나가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왕은 그 전설을 듣고는 칼로 매듭을 끊어버렸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통상임금 문제는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마찬가지로 풀기 어려운 문제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알렉산드로스 왕처럼 매듭을 끊어낼 수 있는 대담한 방법이 필요하다.

▲ 지난 7월 16일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계열사 노조들의 결의대회 ⓒ 참여와혁신 포토DB
불씨 키운 대법원 판결

지난해 12월 18일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통상임금과 관련한 가장 큰 논란은 1임금지급기(1개월)를 넘겨 지급되는 임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느냐는 것이었다. 정기상여금이 그와 같은 대표적인 임금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이 1개월을 넘겨 지급되더라도 정기적으로 지급된다면 통상임금에 해당된다고 판결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됐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에는 새로운 논란의 불씨가 될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 그 요건으로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들었는데, 그 중 고정성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면 많은 임금 항목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게 됐다. 실제로 그동안 통상임금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으로 법원에서도 인정해 왔던 체력단련비 등 많은 항목이 대법원 판결 이후 통상임금에서 제외될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문제는 이미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합의를 한 한국지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비록 올해 임·단협에서 한국지엠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물꼬를 트기는 했으나, 체력단련비를 비롯한 각종 약정 수당(단체협약에서 지급하기로 약정한 수당)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 같은 고정성 요건은 기업들에게 통상임금 이슈를 피해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실제로 몇몇 기업들은 ‘재직자에게만 지급한다’거나 ‘일정한 근무일수를 채워야만 지급한다’는 조항을 추가함으로써 상여금이 고정성을 충족할 수 없도록 상여금 지급방식을 변경하고 있다. 이렇게 할 경우, 상여금을 지급해야 하는 시점에 재직하고 있어야 한다거나 일정한 근무일수를 채워야 한다는 추가적인 요건의 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여금을 지급해야 하는지를 미리 확정할 수 없게 된다. ‘고정성’은 지급일을 기준으로 그 임금항목의 지급여부와 지급 액수가 미리 확정돼 있을 것을 뜻하기 때문에, 이 같은 추가적인 요건을 달성해야만 지급하는 임금항목은 고정성을 결여하고 있으므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 성남의 한 사업장에서는 그동안 연 800%를 지급하던 상여금의 명칭을 바꿔 8개의 복리후생수당을 신설했다. 이와 함께 그동안 퇴직자에게도 일할 지급하던 것을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도록 바꿨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에서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기로 정해진 복리후생비는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것에서 착안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한 것이다.

▲ 한국지엠지부 확대간부 성실교섭 촉구 결의대회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발레오전장, 언론에서는 띄웠지만

이 같은 방법으로 통상임금에서 상여금을 제외한 사업장 가운데 임·단협 타결 이후 문제가 되고 있는 사업장도 있다. 경주에 위치한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가 그곳이다.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의 사례는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의 하나로 각종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에는 복수노조가 결성돼 있다. 당초 이 사업장에는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가 활동하고 있었으나, 지난 2010년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은 후 금속노조에서 탈퇴한 기업별노조인 발레오전장노조를 설립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금은 승인이 취소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정황이 발견돼 논란이 일었다. 이어 금속노조가 제기한 조직형태 변경 무효 확인소송에서 발레오전장노조가 패소하자 핵심 임원들을 중심으로 지난 2012년 12월 발레오경주노조를 새로 설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다수노조인 발레오경주노조가 올해 임·단협을 회사에 위임했고, 회사는 기존 700%의 상여금 중 500%를 성과연동형 상여금으로 전환했다. 나머지 200%도 명절상여금으로 변경했다. 기존에는 600%의 상여금을 두 달에 한 번씩 지급했고, 100%는 명절에 지급했다.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한다면 명절상여금은 제외하더라도 두 달에 한 번씩 지급하던 600%의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했다. 그런데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할 600%의 상여금이 통째로 제외된 것이다. 새로 변경된 성과연동형 상여금도 최고 금액과 최저 금액의 차이가 연간 1,700만 원에 달해,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대폭적인 임금 삭감이나 다름 없는 결과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발레오경주노조 조합원인 두 명의 노동자가 “정기상여금을 성과상여금으로 바꾼 단체협약을 다시 체결하라”며 조합원들의 서명을 받았다. 이 서명에는 발레오경주노조 조합원 400여 명 중 250여 명이 참여해 과반수를 넘겼다. 하지만 발레오경주노조는 조합원들의 이 같은 재협상 요구를 거부했다. 이미 개정된 단협이 7월 1일부로 시행 중이라는 이유였다.

또 발레오경주노조의 임·단협 위임에 따라 상여금이 통째로 통상임금에서 제외되자 발레오경주노조 조합원 100여 명은 노조에서 탈퇴해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에 재가입하는 등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발레오만도지회는 발레오경주노조가 체결한 단협에 대해 법원에 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 한국지엠지부 확대간부 성실교섭 촉구 결의대회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방관하는 정부, 지침 하나 내놓고 끝?

통상임금과 관련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올해 초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되, 임금인상은 최소화하거나 동결하는 방식으로 결정한 바 있다. 일부 제조업 사업장들이 이 같은 모델을 따르고 있다.

또 노사간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임·단협은 통상임금 이슈를 제외한 채 타결하고, 통상임금에 대해서는 별도의 노사협의기구를 만들어 논의를 지속하기로 한 사업장들도 있다. 그보다 더 많은 사업장에서는 대우조선해양처럼 통상임금 이슈를 빼고 임·단협을 타결한 뒤 동종업계의 교섭 결과를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통상임금 문제에 관해서는 노사간의 교섭에서 끝내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또다시 법원으로 문제를 끌고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올해 임·단협에서는 이처럼 통상임금 이슈가 최대의 쟁점이지만, 뚜렷한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임·단협 타결의 속도도 늦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임금결정현황 조사에 의하면 지난 5월 말 현재 임금교섭 타결률은 10.7%다. 고용노동부가 1998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5월 말 이래 쌍용자동차, 한국지엠 등에서 통상임금과 관련한 합의안을 도출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올해 임·단협을 타결한 사업장보다는 타결하지 못한 사업장이 더 많다. 올해 임·단협의 핵심 이슈가 통상임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이 더딘 임·단협 속도는 통상임금 이슈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통상임금의 범위가 확대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의 증가가 불가피하다. 더구나 정년연장 등의 이슈가 더해져 기업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물론 통상임금만 놓고 본다면, 기업들이 그동안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각종 수당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임금인상 요인을 상쇄해 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책임을 기업들에게만 묻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노조 역시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각종 수당을 신설하는 데 동의해왔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정부는 정부대로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통해 기업과 노조에 왜곡된 결정을 하도록 신호를 보낸 셈이다.

더욱이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로 노동자들은 통상임금과 관련해 “당연히 받아야 하고 받을 수 있는 임금”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신의칙 적용의 문제가 있기는 하나 이는 과거 소급분에 대한 것일 뿐, 정기상여금을 비롯한 각종 고정적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확정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임·단협에 임하는 노조의 입장에서는 통상임금 문제와 관련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것은 기본이고, 거기에 더해 얼마나 더 많은 부분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 되는 셈이다.

경영계로서도 부담은 있다. 이미 대법원에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했는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자니 비용 부담이 크고, 이를 제외하자니 법적 결정을 거부하는 억지라고 비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노동자들의 높아진 기대감은 노사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노사간의 쟁점을 중재해야 할 정부가 통상임금과 관련한 ‘노사지도지침’ 한 권만 내놓은 채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손 놓고 있는 점은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노사간 합의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고, 결국 법원에 그 해법을 구하는 현재의 양태로 보면 정부의 이 같은 방관은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내수 진작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외치고 있는 지금, 통상임금 이슈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을 포기한 채 방관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내건 경제 활성화 목표에도 역행한다. 기업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노동자들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