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인원 산출 두고 노사 엇박자
적정인원 산출 두고 노사 엇박자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09.0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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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우정직 정원 확충 VS 사, 전환배치
그간 도외시된 비정규직 처우개선도 수면 위로
[분석 1] 우편집중국 인력구조 문제

ⓒ 전국우정노조
전국에서 모여든 수많은 우편물들은 받는 이들에게 가기 전에 권역별로 전국 24개 우편집중국을 거친다. 버스회사라면 터미널의 역할, 택배회사라면 물류창고의 역할을 하는 것이 우편집중국이다.

우편집중국에서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우편물을 구분·분류하는 과정에서 이를 운반하거나 관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비록 우편물 분류 설비가 자동화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우정직 전환배치, 향후 아웃소싱까지?

우편집중국에는 정규직인 우정직과 무기계약직, 기간제, 시간제 우정실무원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우정직과 실무원들 간에 직무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바삐 돌아가는 집중국 현장에서 가용 인원이 넉넉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일을 구분하기 애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최근 노무법인 하이에이치알에 의뢰해 우편집중국 인력구조에 대해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이유는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때문이다. 비정규직 차별 시정과 관련해 징벌적 배상 제도와 효력 확장 제도가 도입되면서 우정사업본부의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현재 전국 24개 우편집중국에는 5,300여 명이 일하고 있는데, 이 중 기간제, 시간제 우정실무원은 3,500여 명이다. 이들은 동종, 유사한 업무를 하고 있는 우정직과 처우가 다르다. 정규직은 공무원 호봉을 적용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각종 수당이나 가산금, 보조비 등도 차이가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와 같은 차별 논란을 배제하고자 우편집중국의 인력구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그러나 우정노조(위원장 김명환)는 우정사업본부가 이와 같은 연구 용역을 추진하고 향후 이를 바탕으로 우편집중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우정직의 강제적인 전환배치를 추진하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포석은 향후 우편집중국 업무의 전면 아웃소싱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보고 있다. 기간제와 시간제, 즉 비정규직 우정실무원의 처우개선이 아닌 구조조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의미다.

ⓒ 전국우정노조
정원은 부족하고, 남은 이들은 늙어가고

우정노조는 이에 대응해 한국노동연구원(원장 이인재)과 지난 5월 ‘우편집중국 인력구조 개편방안에 따른 실태조사’ 연구 용역을 체결했다. 우정노조는 지난해에도 노동연구원과 ‘우정종사원 장시간근로 개선과 일생활균형 방안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한 바 있다. 해당 결과물을 근거로 우정노조는 공무원 정원을 감축하려는 정부에 맞서 오히려 집배원 인력을 증원하도록 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번 연구는 6월부터 12개 우편집중국을 직접 방문해 우정직 및 우정실무원들과의 심층 인터뷰, 우편집중국 현장에서 실제 업무의 수행 방식, 우정직과 실무원 간 업무 중첩 여부, 차별적인 처우의 존재 여부 등에 대해 면밀히 조사를 진행했다.

우선 현실적으로 24개 우편집중국의 개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력구조를 재편하려고 하는 우정사업본부의 계획에 무리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우정사업본부가 계획하고 있는 우편집중국별 직무분리 방안에서 이른바 ‘적정인원’이라고 산정된 숫자는 실질적인 현장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연구원 연구 용역팀은 각 집중국의 규모를 구분하는 기준을 통상, 특수 및 소포의 단순 총합으로 필요 인력을 산정한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농수산물과 같은 고중량의 소포물이 많이 모이는 우편집중국의 경우, 이를 처리하는 데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우정직 공무원들이 중심인 우정노조의 입장에선 다른 무엇보다 조합원인 우정직들의 전환배치에 대해서 큰 우려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연구 용역 팀의 적정 인원 기준에 따르면 많은 집중국에서 현재 인원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 판국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직무를 구분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우정사업본부의 계획대로 현장의 모든 정규직 우정직 공무원들을 관리업무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서울, 부천, 고양 우편집중국 등 물량이 많거나 대형, 고중량 우편물을 많이 취급하는 곳에서는 그만큼 소요 인원이 늘어난다. 또한 대형 우편집중국에서는 복층 구조로 업무가 진행되는데, 이에 따라 추가로 필요한 인원이 생긴다. 부산이나 제주 우편집중국과 같이 거리 상 문제로 인해 시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곳에서는, 그만큼 더 빠르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당연히 인원을 늘려야 한다.

위의 표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적정 인원에 비해 현원이 매우 부족한 집중국이 많다. 그나마 과원이 발생하고 있는 우편집중국에서도 몇 가지 직무를 한 사람이 도맡아 처리하는 지역이 많으며, 대부분 우편집중국에서 우정직들의 평균 연령이 50대인 점을 감안하면 인력 부족의 문제는 현장에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적정 인원 산출, 노사 기준은 제각각

기간제법 일부개정안 시행이 눈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우편집중국에서 현재 혼재되어 있는 우정직과 우정실무원 사이의 직무분리의 필요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법 개정의 본래 취지에 걸맞은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우정노조와 노동연구원의 연구 용역 팀에서는 공무원인 우정직의 정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목하고 있다. 개국 당시와 비교해 보자면 우편집중국의 우정직 정원은 1/2에서 많게는 1/3까지 감소해 왔다. 공무원 정원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우편집중국의 일이 줄어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만큼은 우정실무원들이 자리 잡았다.

우정사업본부는 전체 우편 물량이 감소 추세에 있고, 우편집중국의 분류 설비가 자동화된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기계 작업이 어려운 수작업 물량이 많으며, 일반 우편물에 비해 책임과 권한이 요구되는 소포나 국제우편물의 물량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편집중국에서 근무하는 우정직의 평균 연령이 50대라는 점도 육체적, 물리적 힘이 필요한 집중국의 업무 특성 상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단순히 인원이 부족한 것이 우편집중국 인력 문제의 끝은 아니다. 2013년 12월부터 시행된 개정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공무원의 직종개편이 추진됐다. 일반직, 기능직, 특정직, 정무직, 별정직, 계약직 등 6개로 나뉘던 공무원 직종이 일반직, 특정직, 정무직, 별정직으로 통합, 간소화됐다. 우정직은 일반직으로 통합됐다.

하지만 우정직들에게는 업무 상 필요한 직위가 부여되지 않았다. 현장의 일터에서는 지휘 감독이나 업무지시, 위계질서 유지 등을 위해 비공식적으로 팀장이나 조장, 기장, 주임, 반장, 실무장 등 다양한 명칭의 직위를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공식 직위에 따라서 늘어나는 책임이나 업무량을 보상해 줄만한 인센티브는 전무하다.

연구 용역 팀은 향후 집중국 소통팀장, 실장, 과장 등과 같은 현장의 상황에 적합한 체계적인 직위를 부여하는 부분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에 따르는 적절한 인센티브도 필요하다. 소통업무 총괄, 복무 및 작업관리, 우편물 정상연결, 현장개선활동 등과 같은 관리직 업무는 현실적으로 보아도 순환보직이 아니라 장기간 집중국 업무에 종사해 온 이들이 전담하는 것이 업무 효율성 차원에서도 매우 유리하다는 의미다.

ⓒ 전국우정노조
실무원 처우개선, 비용 때문에 방치?

우편집중국에서 일하는 우편실무원들의 일급이나 시급은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식대나 교통비 등 보편적인 수당에서도 배제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 우편실무원들은 5년을 일하든, 10년을 일하든 같은 임금을 받는다. 우정직들뿐만 아니라 우편실무원들도 다수가 한 사업장에서 장기근속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향후 우편실무원 처우 개선과 관련해 ▲ 시급의 인상 ▲ 장기근속수당의 신설 ▲ 직무수당의 신설 등의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부분이다.

물론 우정사업본부는 수익성 악화, 부채 등의 이유로 즉각적인 처우 개선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공무원만 3만여 명, 별정우체국, 청원경찰, 무기계약직까지 포함한 정규직 4만여 명의 공룡 조직인 우정사업본부가 3천여 명의 우정실무원 처우 개선이 비용 문제 때문에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엄살이 아닐까.

더욱이 공무원 인원 중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집배 업무 등을 수행하는 우정직은 2만여 명, 나머지 1만 명은 행정직이다.

김명환 우정노조 위원장은 “다른 어떤 조직보다도 현업 중심의 조직이어야 할 우정사업본부의 공무원 인원이 이렇게 기형적인 실정”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지난해 우정사업본부의 우편사업 특별회계의 전체 지출액 3조5,671억 원 중 종사원의 인건비를 포함해 우정사업 행정지원을 위해 지출된 내역은 1조6,491억 원이다. 우정사업본부가 자체적으로 조사해 보니 비정규직 우정실무원들은 유사 업무를 하는 정규직과 비교해 405억 원의 금전적 차별을 받았다.

비정규직인 우정실무원의 차별적인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이 이번 기간제법 일부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우편집중국 인력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 본질일 것이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가 일률적으로 추진하려고 하는 인력재배치 계획에는 이와 같은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차별 시정에 대한 압박과 그에 따르는 불이익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에 가까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