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나 ‘실패’에 익숙한가?
우리는 얼마나 ‘실패’에 익숙한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09.0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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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jhpark@laborplus.co.kr

심판의 호각이 울린다. 킥오프! 이제 막 경기는 시작됐다. 그런데 영 조짐이 심상치 않다. 공을 돌리는 선수들의 움직임이 불안하기 그지없다. 아니나 다를까 전반전 이른 시간부터 실점이다. 응원석에선 한숨이 터져 나온다. 아, 오늘 진짜 안 풀리네.

크든 작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실패는 누구나 겪는다. 어떤 종류의 실패든 입맛은 쓰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좌절감에 빠지기도 한다. 암울한 감정은 전염병처럼 빠르게 번진다. 만사에 정나미가 떨어진다. 격려를 보내는 동료의 모습도 짜증스럽다.

지난해 K리그 클래식 9라운드 서울FC과 강원FC 간의 경기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시즌 개막 후 무승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이던 강원FC는 그 어느 팀보다 첫 승이 간절했다. 서울FC는 전반전에만 두 골을 실점하며 끌려 간다. 더욱이 두 번째 실점은 베테랑 수비수였던 ‘아디’의 자책골이었다. 서울FC 서포터즈석은 장마전선이 드리운 듯 무겁게 가라앉는다.

모처럼 주말을 맞아 상암 경기장을 찾았던 필자도 하프타임 휴식시간에 몇 번이나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만큼 짜증이 나는 경기였으니까. 월요일부터 금요일 사이 일에서의 실패, 일상에서의 실패, 온갖 자질구레한 실패에 시달리며 너덜너덜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자 축구 경기장을 찾았는데, 도대체 왜 이런 비참한 기분을 맛봐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으면서.

우울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성공을 다져 나가는 과정보다 실패를 다스려가는 과정에 익숙해져야지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승리나 성공의 달콤함에 비하면 패배나 실패는 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에게도 별로 솔직하지 못해서, 실패를 어떻게 성공의 디딤돌로 삼았는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러면 실패도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 되니까 그럴듯하지 않나.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일지 아닐지, 우리네 현실에선 막장 드라마 혈연관계보다 더 복잡하게 꼬여 있다.

실패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먼저 아닐까? 속이 쓰려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당당히 손바닥을 내미는 것,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웠던 태도가 아닐까? 머리가 굵은 어른들은 아이들만큼 솔직하지 못하다. 선장은 제일 먼저 도망가고, 여야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그 와중에 튀어보자고 한 마디 거들었다가 불똥이 튄 인사들은 변명만 늘어놓는다. 대한민국의 행정부 수반서부터 길거리 소시민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는 ‘쿨’한 모습은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익숙해지기란 그런 것 같다. 논리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래야 하니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인정하는 거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인정하는 게 아니라, 실패했으니까 실패했다고 말하자. 그래야지 험난한 세상 마음 덜 아프게 살 수 있을 테고, 각박한 세상 좀 더 여유 있는 사람들 많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