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는 네가 사라
맥주는 네가 사라
  • 홍민아 기자
  • 승인 2014.09.0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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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아mahong@laborplus.co.kr

2008년도에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적이 있다. 워킹홀리데이란 만 18~30세의 청년들이 협정국에서 1년 동안 체류하며 관광, 취업, 어학연수 등을 병행할 수 있게 해 주는 비자이다. 학교 선배의 추천으로 급하게 준비해서 호주로 떠났는데 나의 주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었다.

호주를 선택한 이유는 시급이 높고 일자리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호주의 유럽이라고 불리는 멜버른이 나의 첫 번째 방문도시였는데 당시의 나는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가게에 취직해서 여행경비를 저축하겠다는 근거 없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내 영어발음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또는 못하는 척 했고, 시내에서 내 이력서를 받아 주는 곳은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뿐이었다. 그나마도 부족한 영어실력에 가게 취직은 물 건너 가버렸고, 내가 첫 취직을 한 곳은 한국에서 가족이민을 온 한 여자사장이 운영하고 있는 아파트 클리닝이었다. 9달러 시급에 하루 6시간, 주5일 근무를 했다. 당시 환율이 1달러에 950원 전후였으니 한 시간에 약 8,500원을 받았다. 타국에서 혈혈단신, 어쩔 수 없이 3개월 동안을 일했다. 생전 처음해 보는 일이고 하루 근로시간도 짧은 편이고 버는 돈으로 궁핍한 유학생활을 하지 않아도 됐었기에 3개월 동안 여유롭게 멜버른을 즐기며 보냈다.

다음 도시는 휴양지로 유명한 케언즈 옆에 위치한 포트더글라스라는 소도시였다. 이곳에서는 호주 현지인이 운영하는 가게로 취직을 했다. 청소 경력을 인정받아 첫 번째로 이력서를 낸 곳에 취직을 할 수 있었다. 호주에서 쌓은 경력이 클리닝이었으니 여기서도 클리닝을 했다. 하지만 시급은 15달러를 받았다.

멜버른에서 일 할 때보다 훨씬 널널하게 하는 편이었는데 주인이 한국인은 일을 잘해서 좋다며 시급을 올려줬다. 호주는 주급으로 보수를 지급하는데 일을 더 잘하면 기간에 상관없이 올려주겠다고 했다. 청소도 하고, 체크 인-아웃, 예약담당 등의 일을 하면서 그곳에서 약 3개월을 일했는데 그만둘 때의 시급은 20달러였다. 한 시간에 1만9,000원을 아르바이트 비로 받은 셈이다. 그리고 2달 동안 호주를 여행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내가 당시 호주에서 받은 돈들은 현지인이나 다른 사람들이 번 돈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살면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편한 점은 없었다. 그 나라에서 평생 사는 것이 아니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느낀점은 적정수준의 소득이 보장된다면 스트레스 받을 일이 훨씬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붕수리 일을 하던 한 호주인이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시급이 100달러인데 너무 돈을 적게 준다. 몸을 쓰는 일이 힘든 만큼 돈을 더 줘야 하는 거 아냐?” 그 사람 앞에서 차마 내 시급을 이야기 할 수는 없었지만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 힘든 만큼 더 줘야 하는 게 맞지. ‘일을 한다’의 가치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맥주는 니가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