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현장? 발로 뛰며 조합원과 호흡
말로만 현장? 발로 뛰며 조합원과 호흡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10.0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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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상대역 뛰어넘어 현실 바꿔낼 노조 역량 길러야
상황 진단, 대안 마련…현장에 답이 있다
[인터뷰 1] 강정구 순천향대서울병원노조 위원장

‘주차 관리하는 노동조합 위원장’, 지난 8월부터 강정구 순천향대 서울병원노조 위원장은 병원 주차장에서 경광봉을 들고 차량 관리 일을 하고 있다. 비좁은 주차 공간 때문에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짜증이 치솟고 이는 고스란히 현장에서 일을 하는 조합원들에게 피해로 돌아가는 현실을 좌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피케팅이나 1인 시위, 점거 농성 등의 구태의연한 투쟁 방식이 아닌, 위원장의 주차 봉사, 현장에서는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

ⓒ 순천향대 서울병원 노조
주차 봉사는 어떤 이유로 시작하게 된 건가?

“우선 누구나 보면 알겠지만 병원 주차장이 너무 협소하다는 게 문제다. 공간을 찾으려고 병원 안에서 30분씩 뱅뱅 돌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남로터리에서 병원까지 한창 러시아워에다가 병원 진료 피크타임이 겹치면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 15분에서 20분이면 될 걸 말이다.

예전 같으면 머리띠부터 두르고 투쟁에 들어갔어야 할 텐데, 이제는 좀 방식이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일단 현장의 상황이 어떤지 정확하게 체감할 겸,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고민해 보기 위해 주차요원으로 일을 하게 됐다. 아무래도 병원 측은 오히려 이런 부분에 대해 더 불편해 하는 거 같다. 이 문제에 대해선 병원도 인식하고 있으며, 총장 역시 주차장 부지 확보를 위해 예산 편성을 지시하기도 했다.”

단순히 공간을 확보하면 되는 문제인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현재 병원 외래 병동 전체를 리모델링했는데, 거기에 드는 예산이 300억 원이었다. 그런데 100억 원의 예산으로 부지를 매입하면 6대 공간이 확보된다고 하더라.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차량의 회전을 더 빠르게 돌리기 위해 몇 가지 보완할 부분이 있다. 원무과에서도 무인 접수 시스템을 도입해서 대기 시간을 단축한다든지, 아니면 아침 일찍 한가한 시각에 진료를 좀 더 빨리 시작하여 환자들이 집중되는 걸 분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병원이란 조직은 아주 보수적이다. 때로는 기득권이나 권위를 내려놓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현안이나 조합원들의 동향에 대한 접근 역시 현장성을 중시하나?

“그렇다. 현장 중심이라고 하여 너무 무리하게 모든 일을 같이 하려는 게 아니라, 곁에 서서 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거 같다. 물론 처음에는 다들 아주 어색해 한다. 대체 노조 위원장이 왜 나와서 자기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지 갸우뚱한 거다. 다른 일정이 있기 때문에 매일 똑같이 나올 수는 없지만, 지금도 새벽 다섯 시면 병원에 나와서 병동을 돌고 문제점을 파악해 본다.

현장의 상황을 노동조합이 주시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견제 효과가 높다. 주차 문제와 같은 경우도 비슷한 사례일 텐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매우 신속하게 대처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노조가 주차관리 일을 지켜보고 난 이후에 교통 흐름이 개선되고 환자 수도 늘었다. 병원도 노조도, 또 고객인 환자들도 다 좋자고 하는 일이니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조합원들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나? 노조가 특히 주력하는 점은?

“노동강도에 대한 부분이 조합원들에게 관심사이고, 병원 전체의 인력 문제에서도 제일 중요한 거 같다. 예를 들어 이브닝 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은 오후 두시 반부터 밤 10시 반까지 일한다. 늦은 시각이니 병원에서는 퇴근을 위해 택시 카드를 발급한다. 그런데 퇴근 후 인수인계까지 삼사십 분 정도 소요되는 정도라면 모르겠는데, 평균 카드 사용 시간을 살펴보면 새벽 한시 반까지 내역이 기록된다.

교대제 사업장의 어려움이야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런 게 일상적인 상황이라면 너무 심하다. 그렇다고 초과근무를 한 것에 대해 정당한 몫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초과 수당이 많이 발생하면 해당 팀의 상급자는 병원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의사 못지않게 규율이 심한 간호사들의 조직 문화에서 상급자의 눈치를 안 보고 따박따박 일한 몫을 챙겨가는 것은 수월치 않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좀 편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으니, 젊고 유능한 간호사들은 미국이나 유럽 등 외국행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외국에선 오더를 내릴 권한을 갖고 있다든지, 인턴이나 레지던트를 교육하는 걸 간호 직종에서 맡아 하는 등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권한이 주어진다. 기왕이면 더 만족스런 일을 찾아 가는 거다.

이처럼 고급인력의 유출은 아주 큰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계약직 간호사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대학 병원에서 근무했다는 경력만 갖고 2년 마다 자리를 옮기는 것도 문제이다. 처우를 개선하는 것과 함께, 적어도 이들의 고용이 지속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은 병원 전체를 위한 중요한 일이다.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용자를 상대로 견제와 감시 역할을 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노조가 회사의 경영과 비전을 주도해서 이끌어나갈 필요가 있다고도 본다. 마냥 사용자의 상대역으로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상황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병원에서 주차관리나 청소, 식당 운영 등의 업무는 외주화 됐다. 조합원들로부터 주차 문제에 신경을 쓰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나?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무관한 일이니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결국 이러한 업무도 다 병원의 일이다. 환자들로부터 병원이 평가되고 이미지가 각인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병원이 저평가되고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결국 그 피해가 조합원들에게도 미친다.

더 나아가 상대적으로 약자인 노동자 계급이 서로 연대하지 못한다면 노동조합이 굳이 이름을 내걸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하물며 병원 안에서 한 솥밥을 먹는 노동자끼리 현안을 나누지 못한다면 말할 필요도 없다.”